프랑켄슈타인이 인사 올립니다

by 정 혜

3-Day 38 당신은 프랑켄슈타인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려줘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원작자 메리 셀리에게 써보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작가님 글의 주인공인 저가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어서 가장 먼저 고맙다는 인사부터 올립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괴물'이란 새 생명으로 탄생한 저로서는 더 할 수 없는 영광이지요. 그러나 작품에서는 영광이란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잔인한 괴물이지요. 작가님은 어떻게 저 같은 인물을 글로 표현하여 발표하겠다는 기발한 생각을 다 하셨어요?


그런데 작가님,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하는 말 입니다만 왜 하필 죽음을 지연하거나 생명을 창조 또는 영생을 탐구하는 엉뚱한 인간형을 착안하셨어요? 새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죽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영안실의 시체, 무덤을 파헤치거나 도살장 등에서 뼈와 살을 수집 하는 괴기한 행동을 일삼았지요. 그렇게 하나씩, 한 조각씩 이어 붙여서 제조한 생명력이 없는 창조물에게 강력하고 엄청난 전기자극을 주어서 생명을 불어넣는데 성공을 했어요. 그런데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사고입니까?


주인공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었는데 어찌어찌하여서 괴물인 저의 이름이 되어버렸더군요. 작가님의 창조물인 저는 처음부터 막무가내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어요.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만든 후 후회하면서 도망을 다녔어요. 그때 저는 주인공의 동생을 죽였으며, 아내도 죽였고 또한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공이 저의 아내를 만들어 달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이지요. 저 프랑켄슈타인은 주인공과 서로 쫓고 쫓다가 결국 북극에서 만났고, 병마와 싸우며 지쳐서 죽은 주인공의 시신을 보고 "왜 죽었어!"라며 분노합니다. 주인공은 죽었으니 당연히 대꾸를 하지 않더군요. 그러니 더 약이 올라서 펄 펄 뛸 수밖에 없었어요.


저 프랑켄슈타인이 작가님의 글을 분석해보니 선과 악이 대립하도록 하여 영화를 극대화시켰어요. 영화는 선보다 악, 괴물이 증오심으로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럼 주인공은 그 괴물을 향한 복수심으로 눈이 더 멀어지게 됩니다. 애초 작가님은 주인공이 죽음을 통제하려거나 시체와 뼈를 모아서 인체를 만드는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설정하였지요. 이 말은 정상적인 안목을 지닌 인간일 수 없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창조물을 해괴망측한 인물로 만들어서 극이 꼬이도록 했습니다. 저의 인생은 선을 지향하는 삶이 아니라 악의 화신으로 그린 것이 굉장히 섭섭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구, 번뇌, 갈등, 욕심, 시기, 질투 등 이런 것들을 은유(隱 ) 하신 것이라고 유추해봤습니다. 아, 작가님의 삶이 순탄하지 못해서 그런 가정을 해봤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작가님 정도면 이미 붓다의 중도 사상이나 윤회를 아셨을 것 같거든요. 이왕이면 중도적인 프랑켄슈타인으로 묘사를 했더라면, 창조물도 여러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서 관련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지 않았을까 말씀드려 봅니다.


괴물이라는 표현부터 어패가 있습니다. 저 창조 인간이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진심으로 괴물을 대하는 노인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노인은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지만 그의 가족은 저를 죽이려고 했지요. 그때부터 악의 화신으로 서서히 변모하게 되는 것을 보면,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또 자신이 인정받는 것을 확인하며 사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해 주었어요.


저 프랑켄슈타인은 아내를 만들어 준다는 주인공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불신감이 증폭되었지요. 어쩌면 세상사의 만연한 이야기들을 작가님께서 은유적으로 풍자 하신 것이지요. 말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밥 먹듯 하지만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었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위반하는 일이라고요. 거짓말하고, 도둑질에 그것도 부족하여 사음에다 술까지 먹고 온갖 나쁜 일은 다 하면서 하지 않은 척하는 인간들의 군상을 그린 것이지요?


작가님은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인간 창조물을 만들었어요. 그것은 천기누설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주인공이 누설을 해버렸으니 북극에서 만났을 땐 주인공의 주검만 마주할 수 있었지요. 창조물을 만든 장본인을 만나면 "왜 끝까지 책임도 못 질 나를 만들어서 악의 구렁텅이로 몰았느냐고!" 그간 쌓였던 악한 감정들을 쏟아부을 주인공이 없어서 저도 허탈했어요. 주인공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쫓아왔는데 어이가 없어서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리더군요. 그래서 저 자신을 불태워서 흔적을 없애며 영화는 막이 내립니다.


작가님, 나중에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그런 글은 쓰지 말아 주세요. 요즘 대한민국에는 자신을 지옥으로 보내는 행위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런 책을 읽고서 흉내를 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를 밝고, 맑은 저 하늘처럼 투명하고 청청한 삶을 사는 인간으로 그려주세요. 그러면 책이 팔리지 않겠지요?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그러고 싶어요. 어둡고 침침한 지하에서 나와 환하게 웃으며 나누는 삶이 되고 싶답니다.


현재 저는 대한민국에서 저를 초청하여 강연하러 왔습니다. 다 작가님 덕분이지요. 이곳의 일정이 마치는 대로 바로 작가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때 만나서 또 회포를 풀어요.


아, 대한민국이라는 곳도 작가님이 살던 그때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도 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없는 사람은 등골이 빠지고, 있는 사람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탄소연료만 태우네요.



20201123_160948.jpg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해가 져서 아파트 숲 속에 드리워진 어두운 겨울 노을이다.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구, 번뇌, 갈등, 욕심, 시기, 질투 등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아래 사진: 늦가을 하늘에 이른 달이 떠오르고 있는 억새 군락지.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72170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