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코로나19, 니 먼데 1

by 정 혜

2020년 1월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코로나 19가 연일 대서특필 되었다. 난 좀 무디고, 부정적인 것들은 나와 나의 가족에게 다가오지 못한다는 강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딸은 공무원이면서 상당히 예민한 감성을 지녔다. 그래서 이 역병을 굉장히 두려워하며 2월 중순에는 나에게 7일 간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이미 22년이나 유지하던 스포츠 댄스도 2월 초 농협에서 센터 사용을 잠정 중단하였던 때다. 그런데 나는 12월부터 잔병이 끊이지 않아서 병원에 다니던 중이었고, 또 일주일 두 번씩 퇴행성관절염으로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탕으로 가서 때를 밀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시에 못하게 되었다.


손자는 재채기를 꼭 연달아 두 번씩 했다. 그 재채기 하는 간격이 잦아졌다. 지난 2월 20일 목요일 아침, 내가 출근하는 사위에게 "자네 밤에 기침을 간간히 하더라. 나도 병원에 들려서 감기가 의심되면 신천동 집으로 갈 것이다. 자네도 병원에 들린 뒤 사돈한테 가서 기침 나을 때까지 아기 옆에 오지 말게"라고 냉정하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사위도 나처럼 면역력이 약한지 감기가 연례 행사처럼 수시로 들이닥쳤다.


나는 12월부터 코감기와 몸살이 끊어질 듯 이어지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두 달이나 지났다. 은근히 손자가 나 때문에 감기 옮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사위 또한 사흘들이 목감기라며 병원문이 닳도록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니 내 말에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나와 동감' 이라면서 퇴근하는 대로 사돈에게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 격리 조치한 세월이 무려 일주일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머시기'라는 것과 무관하였다. 목에 힘을 주고 딸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랬는데 손자의 재채기가 잦아지니 예사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 판단되었다. 사실 내가 며칠 전부터 소아과에 가자고 해도 딸이 "찝찝하다"면서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놈의 역병 때문에 딸의 "찝찝하다"는 말이 정말 얄밉게 들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 사안이 사안인만큼 딸도 슬며시 꼬리를 내리는 눈치라 "내일 병원문 열 때 들어가서 진단 받아보자. 아마 이른 시각이라 많은 사람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빨리 다녀올 수 있을 거야"


딸은 밤잠 설치며 손자를 관찰했는 것 같다. 소아과에 가겠다며 행동을 서둘렀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각자 향방을 정했다. 딸은 내게 이비인후과에 들려 신천동 집에서 2주간 푹 쉬라고 했다. 손자는 소아과에 다녀온 뒤 사돈에게 맡기기로, 사위는 금요일 이사할 아파트 소독 및 청소를 하고, 딸은 현재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마무리하기로.


딸이 오전에 병원으로 떠난 뒤 정수기 분리하러 기사가 왔다. 나는 생각도 없이 그와 '장가가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사과 반쪽을 기사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때 맞추어서 딸과 사위가 할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딸은 기사가 떠난 뒤 외부인과 많은 말을 하였으며, 오래 머물게 했다고 얼마나 나무라는지 뭐라고 변명도 못하였다. 완전히 고양이 앞에 쥐처럼 몸을 사려야만 했다. 그리고는 나의 집으로 태워다 주는 차 안에서 딸 방송국이 개설되었다. 아나운서의 일방적인 방송은 나의 주관과는 다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헤어진 오후에는 7일 간의 두문불출에서 해방되었다. 나 혼자 신천동에서 범어 4거리까지 걸었다. 이 자유로운 기분, 완전한 나만의 시간이 무척 소중히 느껴졌다. 목에 스치는 칼바람도 신선했다. 매섭게 찬 공기가 코에서부터 뇌까지 상쾌하게 만들었다. 남의 눈치가 보여서 마스크를 벗고 싶어도 벗을 수 없어 아쉽기 짝이 없었다.


병원 풍경이 아주 웃겼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오로지 증상만 나에게 묻고 빨리 귀가하란다. 약 처방은 무려 15일, 병원에는 자주 오지 말라고 하면서. 또 병원마다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불과 1분이 되지 않았으며, 돈 계산도 마찬가지였다. 속전속결로 얼른 병원문을 닫고 떠나라는 거였다. 문제는 일층 약국이었다. 20분도 더 밀렸다. 나는 하릴없이 약국의 풍경을 관찰했다. 나와 같이 이비인후과에서 대기했던 어떤 남정네는 아예 바깥에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나는 배짱 좋게 보란 듯 약사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16차선이 보이는 대로로 나왔다.


범어 4거리에는 흑매가 보였다. 얼마 전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 분의 등장'으로 나들이를 못한 사이에 식재된 것 같았다. 아무튼 꽃이 거의 지고 있는 상태였지만 갓 피어난 늦둥이 하나를 점 찍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매향은 여전히 나의 후각을 은근히 자극했다. 코로나 19가 정말로 유행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16차선은 빈틈이 없었고, 차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지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태평스럽게 망중한 즐겼다.


빨리 이 소란이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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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범어 4거리 한 켠에 피기 시작한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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