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을 읽고'
책 표지 뒷면에는
<'도깨비보다 무섭다는 왕이 있었다. 가늘고 길게 살고픈 궁녀도 있었다. 이상스레 서로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다가섰다. 그래도 다가서지 않았다. 어렵고 애매한 한 발자국씩을 나누며 습관처럼 제자리를 지켰다.
알쏭달쏭한 시절은 기쁨과 배신으로 어지러이 물들어 이지러지고, 이별과 재회는 어색한 질투와 상실감을 동반하였다. 잊은 척은 할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무너진 감정의 둑은 운명을 뒤흔들 홍수가 되었다.
"내 천성을 거스르면서까지 너를 마음에 두었다, 그래서 너여야만 한다."(2권 333쪽)
하지만 선뜻 붙잡지 못할 붉은 옷소매가 달콤할 수만은 없고, 오히려 그 끝동은 오래도록 별러온 양 새침하게 밀고 당길 따름이었다.'>
1,2권의 줄거리가 아주 절묘하다. 퍼뜩 서평의 제목이 떠올랐다. '너여야만 하는 사랑'
왕이 동궁 시절 덕임에게 묻는다, 덕임은 그에게 향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152쪽에서
"… 너는 내 사람이 되고 싶으냐?"
"소인은 그저 스스로의 사람으로 살고 싶사옵니다."
몇 줄 아래
<"너는 내 사람이다."
"오직 내 명에 의해서만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몹시도 일방적인 소유욕에 직면한 순간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피가 머리로 몰리고 정신이 아뜩했다. 실체 없는 어떤 것이 옭아매는 강렬한 느낌. 그 기묘한 감각에 질식하는 양 덕임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궁과 궁녀는 서로 사랑했다. 덕임은 동궁을 향한 사랑을 드러낼 수 없는 신분이다. 그녀도 동궁을 연모했다. 힘을 가진 동궁이 일방적으로 옭아매었을지언정 덕임의 사랑을 확인하며 허락을 받아냈던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 나라의 왕은 궁녀가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왕은 궁녀가 감히 밀어낼 수도 당길 수도 없는 지존인 것이다.
<"정녕 신첩을 아끼셨사옵니까?"
"그렇다니까."
"하면 다음 생에선 알은 체도 마소서."
그녀는 또다시 그의 애정을 무참히 밀어냈다.>
덕임의 남자였던 왕은
<'사내로 보라 열심히 치댈 때는 언제고 막상 저 필요한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게 임금의 탈을 써버린다. 그녀에게는 궁녀이면서 계집일 것을 요구하며, 그 자신은 오직 지엄한 지존일 것만을 고집한다.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 이기심을 당연하게 여긴다.
받을 줄만 알 뿐 보답할 줄은 모른다. 임금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한 사람의 사내는 될 수 없다. 지아비는 될 수 있을지언정 연인은 될 수 없다.
홍 덕로는 죽이고 싶지 않다는 왕의 말에
"…궁녀는 죽어도 되옵니까? 왕실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궁녀들은 죽어도 되옵니까?">
그런 지존이었고, 오로지 자신만의 덕임이며 사랑할 것을 요구하였다. 왕이라는 특수한 신분과 가족사에서 그런 남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크다.
다시 임종 장면으로 돌아와서 덕임은 평범한 여자이길 원했다.
<"사소한 소망이 꽤 있었사옵니다. 나 하나만 최우선으로 여기는 지아비를 만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어미라는 말을 가르치고, 거리낌 없이 아이 이름을 부르고, 외숙부들로부터 말 타는 법도 배우게 하고
…, 하지만 전하 곁에서는 하나도 이룰 수 없었나이다. ~ 임금이신 게 좋다고 하셨으니 그저 좋은 임금으로 사소서. 신첩은 평범한 계집으로 살겠나이다. 진실로 신첩을 아끼신다면, 다음 생에선 알아보시더라도 모른 척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소서."
"끝까지 이를 테냐? 넌 정녕 내게 조금도 마음을 주지 않았어?">
그래도 왕은 덕임에게 묻는다. '전하를 은애 했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라 했던가. 왕은 덕임의 입에서 천 번 아니 만 번이라도 더 듣고 싶었던 말일 게다.
"정녕 내키지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달아났을 것이옵니다."
그렇게 덕임은 임금 곁을 떠났다.
2권, 병든 왕이 덕임의 유품을 대하게 된다. 434쪽에서
<문득 왕은 함에서 채 쏟아지지 못하고 남은 물건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별것 아니었다. 가진 것이 없던 사람이었다. 생전에 쓰던 붓과 책, 염주 따위가 나왔다. 흉하게 썩어 바싹 마른 것도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생일에 큰애가 준 꽃반지였다. 왕의 손끝이 닿자마자 부스럭 먼지로 무너져 내렸다.>
여기서 무상(無常), 말 그대로 '항상 하는 것이 없다', '영원한 것은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애를 끓이며 번뇌하는 것을 묘사하였다. 이어서
<그리고 제일 아래에 옷 한 벌이 있었다. 옷소매 끝동을 자줏빛으로 붉게 물들인 궁녀의 의복이었다. 궁녀를 홍수('붉을 홍紅, 소매 수袖를 써서' 붉은 옷소매)라고 일컫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바로 그 사람이 죽기 직전에 찾은 옷이었다. 왜 마지막에 이 옷을 찾았을까. 헤어질 땐 경황이 없어서 묻지 못했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떠나고 싶었던 걸까. 임금의 품에 안긴 것을 후회하였던 걸까. 왕은 생각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을 기억하고 싶었던 거라고.> 435쪽에는
<그녀는 딸이었고 누이였고 첩이었다. 남들에 의해 그리 정의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궁녀였다. 고달픈 삶이었다. 멸시당하는 삶이기도 했다. 그래도 집안이 궁핍할지언정 적당한 혼처 물색하여 고만고만 살면 될 팔자를 마다하고 스스로 취한 길이었다. 다른 사람에 의해 정해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왕은 그런 여자이기에 그녀를 사랑했다. 실로 사랑이었다. 들끓는 소년 시절마저 지나간 뜬금없는 때에, 생각지도 못했던 상대로부터 얻은 감정이었다. 자신의 천성을 거슬렀다. 부정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평생의 습관과도 같은 금욕으로도 밀어내지 못했다. 잊은 척은 할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었다. 그래,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 내가 너를 은애 하였다."
"그래서 네가 그립다.">
그래서 '너여야만 하는 사랑'이라고 서평 제목으로 정하였다. 1권 날개 뒷 표지에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제왕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 기록'이라는 짧은 문장이 있다. 그 사랑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의 표현에 첨부하자면 '궁녀가 선택한 삶은 현재 이 순간을 충실히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애절했지만 진지한 사랑이었으므로 푹 빠져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고 사려된다.
강 미강 작가는 '작가 후기'에서 열일곱 살이던 2007년에 시작하여 2015년 6월에 마무리하였다고 적었다. 그리고 많은 사료를 참고자료로 활용했다고도 하였다. 어린 나이에 이런 대작을 쓸 정도였다면 그녀의 실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며 앞으로 더 좋은 글과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는 기대가 크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1,2권에서'납득하다'라는 단어가 꽤 자주 나온다. '납득하다'는 일본어투 용어다. 일부러 '이해하다'로 바꾸어서 읽어도 무방하였다. 순화 용어라는 것이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거나 업으로 삼는 분들은 순화 용어를 썼으면 좋겠다. 순화 용어는 "일본어투 용어나 무분별하게 들어와 남용되는 외국어, 어려운 한자어, 잘못 표기된 외래어, 욕설 및 비방 등의 비속어 등을 순화하여 한국인이 쓰기 쉽고 듣기 쉬운 "바르고 고운 토박이 말"로 다듬어 써야 한다고 위키 백과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위의 표지 글 중에서 하나 더 꼬집자면 ,
"~잊은 척은 할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었다.~"
이 문장을 "잊은 척할 수 있어도 잊을 수 없었다." 오히려 문장이 더 깔끔하다. 이러한 문장이 많았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1권 320쪽에서 왕은
<"지조는 군자와 부인 모두에게 요하는 미덕이다. 신민을 정숙하게 이끌 책임이 있는 군왕이 정욕에 이끌려서야 체면이 서겠느냐. 사내가 첩을 거느리는 게 흠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용납할 수 없는 방종이다. … 절대 안 될 일이야."
390쪽에는
<"녹을 먹는 자들은 그래선 안 돼. 신분이 높을수록 모범이 되어야 한다. 힘들여 노동하지도 않는 주제에 가벼운 흥미를 좇아 체통을 잃다니, 추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이런 이상적인 지도자와 관료들이 절대적으로 시급히 필요하다. 사실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권력다툼이나 현재 정치계의 이전투구나 무엇이 다른가. 책의 배경과 현대가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져서 놀랍다. 독서를 하면서 나라가 화평하고, 공명정대한 세상이 되기를 은근히 발원했다. 정조대왕 같은 지도자가 하루 속히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이 글의 주인공 왕은 정조대왕이다. 정조의 가족 내력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다 안다고 생각한다. 지금 책으로 대하는 우리들은 정조의 어린 시절 겪었던 참담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추측만 할 따름이다. 요즘 어느 티브이에는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신청한 부모에게 자식을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 그것을 조언해준다. 이런 방송도 없던 전제군주 시절의 정조는 뛰어난 인물이자 군주였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였으며,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했던 분이다. 왕 또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음에도 폭넓은 독서와 질 높은 교육과 도덕적인 자기 관리는 자존감 높은 군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단지 덕임에게 오로지 나만 사랑해달는 유아적인 발상은 한낱 남자에 불과하였지만.
1권 161쪽
<"~ 암만 기다려도 궁녀들 붉은 소매 끝자락일랑 보이질 않더라.~">
이 부분에서 책 제목이 이해되었다. 저고리 소매 끝동만으로 '궁녀'를 상징하는 표현이 아주 적절했으며, '옷소매 붉은 끝동'은 눈에 뜨이는 순간 정다운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궁녀에 관한 편견과 오해를 풀었다. 숙종의 후궁이었던 '장 희빈'이나 특히 영조의 '문 숙의', 인조의 '조 귀인' 등은 티브이 연속극으로 영화로 곧잘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영화와 연속극 등이 무식한 나를 편견과 오해만 안겨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독서하지 않은 내 탓이 제일 크다.
표지의 꽃은 능소화가 아니다. 단지 붉은 소매를 상징하는 꽃으로 그린 듯했다. 능소화 꽃빛이 궁녀가 입었던 옷소매 붉은 끝동과 비슷하다고 미루어 짐작해봤다. 1권의 꽃 색은 능소화 빛이었다면, 2권의 보랏빛 꽃은 모란이 연상되었다. 1권 날개 앞표지에는 생머리에 옷 바탕이 분홍이며 깃과 고름, 소매 끝동과 곁마기가 자줏빛인 삼회장저고리를 입은 덕임과 동궁의 사진을 곁들였다. 사진이 꽃 그림보다 제목의 의미를 넌지시 드러냈다고 서평을 쓰면서 깨달았다.]
여름날의 능소화는 암술을 길게 꽃받침에 남긴 채 꽃잎만 통째로 떨어져 나간다. 마치 '한 나라의 왕은
궁녀가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왕은 궁녀가 감히 밀어낼 수도 당길 수도 없는 지존인
것'을 암시하려고 그랬나 싶기도 하다.
2권 412쪽, 왕대비는
"교전비는 궁중에도 있었는데 왕비가 가례 때 친정에서 데리고 들어온 계집종을, 본방 나인(本房內人)이란 이름으로 왕비 곁에 가까이 두었다."
"그러나 빨래와 다듬이, 다림질을 도맡은 세답방(洗踏房)의 나인들하고야 그 일의 고단함이 비교될 수 없을 텐데, 세답방에서는 평상시에도 늘 그렇지만, 만일 국혼이나 진연 같은 큰 경사가 있을 때면 비단과 명주 다듬이가 몇십 필씩 되어, 일이 끝날 때까지 잠을 못 이루며 이곳 처소 나인들은 손바닥이 부르텄다 한다."
궁녀의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삶이 아니었다는 것, 궁녀의 사회 역시 철저히 신분과 서열이 질서정연하게 나뉘어서 다양한 생을 살았다는 것을 '혼불'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면서 오늘이 어제 되고, 내일은 오늘이다. 여전히 가부장제는 존속하고, 신분과 서열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개인 스스로 이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면, 전체는 개인의 집합체이므로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믿는 사람이다.
사진: 정 혜.
위: 2권의 책 표지이다.
아래: 능소화는 수술이 그림처럼 검지 않다. 수술은 꽃잎 색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옷소매가 능소화 빛깔도 아니다. 뒷날개 사진에는 옷소매가 붉은 자주 빛이며 글 중에서도 그리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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