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출판에서 책을 받고, 표지 사진을 찍고도 '낯선 세계를 용기 있게 여행하는 법'이란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쉽게 술, 술 책장을 넘기는 글이기를 바랐다. 외래어 찾느라고 허둥대지 않기를 내심 원했다. 근래 대부분이 외래어를 남발하며 대화를 이어가고, 글을 쓰는 것이 대세라고 익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들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외래어를 우리말의 가치를 높이면서 문맥의 흐름도 원활하게 번역하여 적확한 표현을 했으면 좋겠다. 적확하다는 말이 어색하다면 문맥에 맞추어서 알맞은 문장으로 다듬으면 될 것 아닌가. 한 때의 흐름이라고 치부하기엔 많이 아쉽다. 작가들이 앞장서서 한글의 효용성과 우수성을 알리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큰 사람이다.
나의 두뇌는 외우는 것이 무척 어렵다.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다. 영어 회화도 외우는 부분에서 손을 들고 말았다. 약 십여 년 전 재도전하였다가 슬그머니 놓아버렸다. 나이 70, 80을 넘겨도 무슨 공부든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이유는 자식들이 부모의 태도를 안 보는 듯하여도 은연중 보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근래는 손자가 태어나면서 할머니를 보고 배우라며 천자문을 외웠다. 잠을 재울 때 업고 하나 씩 암기했다. 손자가 돌이 지나자 외울 여가와 외워지지 않고 화석화되어서 서서히 멀어졌다. 때가 되면 다시 외우리라 끈을 놓지 않은 채.
21개월 뒤 손녀가 내 곁에 왔다. 710 여 자에서 멈춘 천자문을 다시 붙잡았다. 뇌에서 잠자고 있던 한자들이 암기의 속도를 더해주었다. 결국 30 여 개월 만에 머릿속에 다 집어넣었지만 끄집어내면 막혀서 나오지 않았다. 손전화기에 저장하여 생각이 나지 않을 땐 즉시 참고하였다. 며칠 잊고 있다가 되새기면 머뭇거려져서 짜증이 앞선다. 입에서 익숙해지려는 현재, 빨리어(語)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 삼 년 전부터 조금씩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빨리어가 어느 정도 이해되면 '니까야 삼장(三藏)'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 희망 사항이다. 빨리어에 도전장을 던지면 천 개의 한자는 공중분해될 것이므로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처지다.
작가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는 말' 7쪽에서 "외국어 학습은 책 속의 지식을 단순히 뇌 안으로 가져오는 작업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과정이라는 걸요. 언어는 나와 세계를 관계 맺어 줍니다." 천자문을 뇌 안에 넣는 작업이었지 살아가며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51쪽 '자신이 만들어가고 싶은 세계를 만들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그 안에서 기쁘게 여행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성공인 셈이다.' 나의 의도와 조금 다르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세계이며, 그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면 소기의 성과는 거둔 셈인 것이다.
작가는 특수한 가정환경에서 체득된 이중언어, 정체성을 모두 경험하였다. 그리고 이주여성, 다문화가족이나 가정을 비정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깨우쳐주었다. 28쪽 "좁게 그어진 '우리'의 선 안에서만 살면 편할지도 모른다. '우리'와 다른 이들을 '그들'이라는 딱지를 붙여 구분해 놓고 다른 위치에 몰아넣으면 '그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아니, 보인다 해도 불쌍한 사람, 동정을 베풀어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 동정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볼 때, 생각이 좁아지는 건 나였지 상대가 아니었다. 선을 긋다 보면 좁아지는 건 나의 세계일 뿐이다."
33쪽 '최근의 연구 결과는 어릴수록 외국어 학습에 유리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에 노출된다 해도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걸 보장하지 못하며, 아이보다 성인이 제2언어를 초기에 습득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제2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보다는 그 언어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능숙도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Ortega,2019).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면 삶을 꾸려 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 그러면서 '자아가 말랑말랑해야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자존심을 세우면 자신이 고립될 뿐이다.'
작가는 중요한 말을 독자들에게 하고 있다. 어리면 어릴수록 제2언어 습득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언어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능숙도에 더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에 놀랐다. 작가는 언어뿐만 아니라 타문화에 대한 관용과 존중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내 자리를 떠나서 또다른 시선으로 문화를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라고 다국적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며 학생과 교수가 서로의 문화에 충격을 받는다고 했다.
79쪽 "예전에는 제2언어를 배우는 성인 학습자의 언어를 '중간언어(interlanguage)라고 불렀다. 제1언어와 제2언어 둘 다 아닌, 학습자의 언어라는 뜻이다." 80쪽 '제2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그 문화에서 나고 자란 원어민과 똑같이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그 언어와 문화를 직접 바라보기 위함이다. 나다운 고유함이 가장 소중하다.'
작가는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나쁘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미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과 관점을 제시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긍정적인 사고를 끊임없이 유도하는 작가이다. 외국어에 주눅들은 나에게 '할 수 있겠다'는 어눌한 자신감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184쪽 '아무 말 대잔치로 만드는 수업'은 작가가 이상으로 삼는 교사 상에 대해 말한다. '"우리 모두 처음이니 서로 도와가면서 한 학기 잘 꾸려가 봐요" 같은 태도를 지켰다. 내가 실수한 건 바로 사과했고, 잘못된 게 있다면 다음 시간에 바로 시정했다.' 이런 교사가 교사다운 교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번째 학기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붙어버려서 교사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학생들과 선을 긋고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같은 태도로 수업을 했고, 당연히 결과는 대실패였다.'라고 시행착오를 토로하였다.
김 미소 작가는 응용언어학 박사이다. 일본 다마가와 대학에서 '공통어로서의 영어 센터' 전임교원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학술 영작문, 문법, 세계의 영어 등을 가르쳤다. 현재는 일본 대학생들이 자신의 삶 속에 영어를 녹일 수 있도록 함께 배우고 연습하고 대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 미국, 일본 세 나라의 문화와 언어 사이에서 항상 길을 잃고 헤매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생각거리를 줍고 곱씹게 된다. 이 생각들이 논문과 글이 되고, 수업 방식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되었다. 앞으로도 언어, 문화, 사회, 관계가 교차하는 곳에서 길 찾기를 이어가고 싶다.'라고.
뒤 표지에는 '세상의 모든 길 잃은 학습자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조언'이라며 이 책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또 김 겨울 작가와 김 성우 응용언어학자의 요점만 적은 평이 간결하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의 구태의연한 외국어 배우기 이론이나 방법보다 한 발 앞서는 책이라고 느꼈다. 빨리어를 조속히 배우려는 의지는 없을지라도 자극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만들어가고 싶은 세계를 만들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그 안에서 기쁘게 여행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성공인 셈이다.' 용기를 내서 도전장 내밀 날이 곧 오려니. 나야 세월의 뒤안길을 걷는 사람이라 책의 활용도가 낮지만, 젊은 층들은 한 번씩 읽고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