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셔니즘

by 데이비드 볼저

by 봄봄


도서관에서는 북큐레이션을 통해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추천해 준다. 백화점에서는 디저트를 큐레이션해주고, 회사에서는 사무실 간식을 큐레이션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골프웨어 큐레이션, 아웃도어 큐레이션, 가전 큐레이션……우리가 사는 세상은 큐레이션으로 가득하다. 특정한 주제로 SNS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큐레이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채널에 반응할 한정된 대상의 취향을 분석하거나 예측해 맞춤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큐레이션된 서비스가 너무 많으니 그중에서 나에게 딱 맞는 것을 고르는 게 일이 된다. 이제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골라주는 큐레이션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큐레이셔니즘>은 이처럼 미술계뿐 아니라 온 분야에 큐레이터와 큐레이팅이 난무한 세태를 꼬집는다. 저자는 ‘큐레이터’의 어원이 중세 수도원에서 나왔다고 알려준다. ‘돌보다(Cura)’라는 뜻과 ‘진지한 호기심(Curiosity)’이란 뜻이 합쳐진 것으로, ‘진지한 호기심을 가지고 돌보다’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오히려 선택과 편집과 추천에 가깝다.


미술계에서 비평가의 권력이 맥을 못 추고 존재감이 희미해지면서 1990년대에 새로운 권력자로 떠오른 직종이 바로 큐레이터였다. 전 세계 대도시를 순회하는 블록버스터 전시와 웬만한 크기의 도시라면 경쟁적으로 추진한 비엔날레 전시가 유행하면서 스타 큐레이터의 위상과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미술관의 관람객수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미술관은 사활을 걸고 인기 있는 큐레이터를 초청해 전시를 만들어 대중의 관심과 후원을 구걸하고 전 세계에서 오는 여행자들을 맞이했다. 현재에도 이런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처럼 스타 큐레이터가 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러한 환상을 심어주는 미술교육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큐레이터의 수요는 한정되어 있는데 큐레이터가 되고자 하는 전공자를 양산하는 현재의 미술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큐레이터란 실무를 통해 일을 배우고 경력을 쌓아야 하는데, 대학교의 돈벌이수단으로 전락한 큐레이터 관련 학과에서는 실무 경험 없이 학교를 졸업한 후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미술계로 내던져지는 졸업생만 배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젊은이들이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Do what you love: DWYL)’라는 속임수 아래 무급으로 일하게 되는 현실을 개탄한다. 하지만 DWYL에 빠진 건 20대에 학부와 대학원까지 쭉 미술사나 큐레이터학이나 예술사를 공부한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30대의 멀쩡한 회사원이었던 나도 거기에 빠져 미술을 공부했다.


저자는 미술계를 넘어 일상에도 큐레이팅이 난무해 난장판 같아진 현상을 지적한 후, 말을 그만하고 침묵 속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밴드 ‘새비지스(Savages)’의 데뷔앨범 재킷에 쓰인 시를 옮겨 놓았다. 이 시는 저자를 대신해 책의 결론을 말하며 끝을 맺는다.



세상은 조용했다. 이제는 너무 말이 많다. 그리고 잡음은 언제나 산만하게 만들 뿐이다. 그것은 많아지고, 커지고, 당신의 주의를 빼앗는다. 편의를 위해서 그리고 당신에 관해 말하기를 잊어버리라고. 우리는 자극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산다. 집중하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다. 산만한 사람은 언제든 보인다. 당신은 아부를 원한다. 그게 있는 곳을 항상 찾는다. 당신은 모든 것의 일부이고 싶고, 모든 것이 당신의 일부이기를 바란다. 당신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당신의 척추 위에서 얼굴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하지만 말이야 세상이 입을 닫는다면 잠시 뿐 일지라도 아마도 우리는 듣기 시작하겠지. 먼 곳의 리듬, 화난 젊은 선율, 그리고 우리를 진정시키겠지. 아마도 모든 것을 해체한 후 우리는 생각해야 하겠지. 모든 걸 함께 되돌려 놓기를. 자신을 침묵시키기를.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큐레이션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타인의 취향과 선택에 저항하며 나다움을 찾아가는 기쁨을 누려보고 싶어 진다. 큐레이터가 큐레이션한 선택지에서 나의 취향을 찾지 말고, 그 선택지 너머의 다양한 시선을 직접 마주하고 내 취향을 연마하는 수고를 일부러 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