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사적으로’ 감상하는 고수의 에세이다. 이 책의 원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이다. 전 세계의 진귀한 예술품을 모아놓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묘사하는데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저자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으니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은 업무의 일환이라 공적이지만, 그가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와 미술품에 대한 느낌은 전적으로 사적이다.
미술계 종사자 중에서도 10년간 메트로폴리탄 전시품을 하루 종일 보며 지낸 사람과 대적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실 경비원이 아니면 작품을 하루 종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술관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미술을 좋아한다면 참 괜찮아 보인다. 영화 <뮤지엄 아워스>가 떠오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빈미술사박물관의 경비원인데, 미술작품 보는 것을 좋아해서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의 감상은 사적인 경험과 인생에 대한 숙고로 이어진다.
그림을 보다가 페르메이르가 포착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는 깜짝 놀랐다. 가끔 친숙한 환경 그 자체에 장대함과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가 바로 그 느낌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형 톰의 병실에서 끊임없이 들었던 느낌이었고, 쥐 죽은 듯 고요한 메트의 아침이면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느낌이기도 했다.
인상파의 인기 화가인 모네의 그림을 보면서 저자는 평온한 일상을 온전히 느끼는 충만함을 경험한다.
모네의 그림은 우리가 이해하는 모든 것의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들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산들바람이 중요해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가 중요해지고, 그렇게 그 순간의 완전함, 심지어 거룩함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할 때면 가슴에 가냘프지만 확실한 떨림을 느낀다. 이와 비슷한 느낌이 모네가 붓을 집어 드는 영감이 되었으리라 상상한다. 그리고 지금 이 그림을 통해 모네가 느꼈을 전율이 내게 전해져 온다.
저자가 경비원이 된 이유는 가슴 아프다. 사이좋았던 형이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겨우 20대 중반이었던 저자는 이 사건을 받아들이고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전처럼 일상을 이어 나갈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서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택한다. 관람객이 거의 찾지 않는 조용한 전시실에서 하루 종일 서서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지만, 사람들이 물밀듯 들이닥치는 인기 있는 전시실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비를 봐야 한다. 단순하지만 노련미가 필요한 일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주말 저녁에는 일을 마친 동료들과 근처 술집에서 한 주의 피로를 풀고 잡담을 나눈다.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은 은퇴 후 재취업을 한 중년이거나 이민 온 가장이거나 다른 직업을 갖기 전에 생계를 위해 잠시 일하는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술자리에서는 못 펼친 꿈이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장래에 대한 얘기가 무르익는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 흐른다면 딱 맞아떨어질 분위기이다.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고대 이집트 유물, 북송시대 그림, 중세 종교회화, 르네상스시대 그림과 조각, 근현대 미술품까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방대한 전시품을 마음껏 감상한다. 예술품을 만든 창작자의 인생을 공부하고 고뇌를 헤아린다. 작품이라는 물질이 아니라 예술가라는 사람에 집중한다.
맨 마지막 장에서는 거대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품을 관람하는 방법에 대해 짤막하게 조언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트입니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 같을 수도 있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매트에서 애정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느 것인지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저자는 말한다. 삶은 우리를 놔두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는 삶, 변화 없는 인생은 불가능하다. 좋은 변화면 좋겠지만 나쁜 변화도 있다. 그럼 우리는 변화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이런저런 수고를 하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지네브 세디라(Zineb Sedira)의 작품이 떠오른다. ‘No matter what, dance, dance, dance to the tempo of life!’라고 쓰인 작품이다. 전구 불빛에 둘러 싸인 글귀는 인생의 박자에 맞춰 계속 움직이라고 다그친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삶은 우리를 계속 움직이고 변화하게 만든다.
이 책은 어른의 성장기이다. 10년간 미술품을 보며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가꾸어 나간 사람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자신이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다 보니 다시 새로운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