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겸
아주 더운 여름이었다. 나는 그 해 여름방학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다. 도시와 도시의 이동 중에 잠시 들린 밀라노에서 할 일은 딱 하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직관하는 것. 건물 안은 어둑하고 낡아 보였고, 한쪽 벽면에 그림이 있었다. 미술책에 실렸던 <최후의 만찬> 도판은 색깔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전반적으로 칙칙한 갈색톤이었다. 도판만으로는 도대체 왜 이 그림이 그렇게 유명하고 중요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소박한 공간에 걸린 원본은 색감이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갈색이 아니라 노랑, 파랑, 이런 원색이 보였다. 당시는 작품 앞에 서 있는 비계가 그림의 일부를 가린 상태이고 몇 명이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작품 전체를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처음 본 복원 현장이었다.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를 읽으면서 밀라노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은 ‘미술품복원가’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진 저자가 자신의 일에 대해 쓴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 관련 일을 하거나 미술품 컬렉터가 아닌 한, 일상에서 미술품복원가를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미술계의 직업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책은 저자가 친절하고 자세하게 얘기해 주는 식으로 전개되어서, 기초 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힌다. 저자가 보존과 복원을 공부하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서 기억에 남는 복원작업과 오래된 예술품을 대하는 자세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저자의 복원작업은 예술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작한 지 일백 년이 된 피아노와 1987년 민주화항쟁의 대표적인 인물인 이한열의 타이거 운동화를 비롯해, 보존하고 복원해야 할 중요한 물품이라면 저자의 작업 범위에 들어간다.
저자는 복원가를 의사에 비유한다. 아픈 예술품을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해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복원은 작품이 태어났을 때와 같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젊음을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해서 편안하게 늙어가게 하는 것에 가깝다. 나이가 들면 주름도 있고 흰머리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만들어진 지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이 흐른 예술품은 세월의 흔적이 있어야 오히려 멋스럽다. 복원은 그런 시간의 두께를 담는 것이다.
그런데 유물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시간과 노력과 자본을 들여 복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 삶에서 유물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로 쓴 역사는 사실과 정보를 기록한 것이지만, 예술작품은 과거 우리 ‘마음의 기록’인 것이다. 그래서 유물을 마주하는 일은 과거 누군가의 마음을 만나는 일이다. (중략) 현재의 나는 수백 년, 수천 년을 지내온 유물을 통해 과거 선조부터 태어날 후세까지의 삶에 관여하는 영원성과 시간을 구체적으로 체험한다.”
저자는 복원을 할 때 작품을 만든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작자가 고인이거나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의도를 알 수 없을 때는 그동안의 연구활동을 토대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감상자들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복원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복원활동은 고도의 상상력과 유연함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결국 조형예술작품의 무엇을, 어떻게 남겨야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작가의 의도와 작품을 구성하는 물질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 사회 안에서의 해석 가능성 등이 모두 검토된 후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보존복원 행위의 목적은 작품이나 유물에 있다기보다는 그들의 소유자, 연구자, 감상자 등 물질적, 정신적으로 연관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이 시대의 보존복원 활동은 규정된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이고 개방적으로,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와의 교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저자는 집에 있는 그림이나 도자기도 정기적으로 액자에서 빼서 숨 쉬게 해 주고 먼지를 털어 청소를 해주고 우리가 편하다고 느끼는 온화한 기온과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는 공간에 놓는 등 관리를 해야 오래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술품도 사람과 같아서 나에게 소중하다면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정성스럽게 대해야만 오랜 세월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