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
중동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이제는 사막과 낙타보다는 인공적이고 찬란한 도시로 대변되는 지역이지만, 이슬람교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내 상상력의 끝은 결국 모스크로 귀결된다. 이스탄불과 쿠알라룸푸르에서 모스크를 방문했었다. 햇볕이 강렬한 화창한 날이었다. 모스크 안에 들어가니 빛을 머금은 공기가 온몸을 감싸주는 듯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벽을 통과한 빛은 바닥에 세련된 기하학적 무늬의 그림자를 남기며 이슬람의 문화와 역사의 내공을 은근하게 자랑했다.
<근접한 세계>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아부다비음악예술재단이 공동기획해서 아랍에미리트의 동시대미술을 소개하는 전시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층과 3층에 걸쳐 총 세 개의 전시장에서 40여 명 작가의 110여 점의 작품을 보여주는 방대한 규모이다. 이 전시는 처음 보는 작가와 작품으로 가득 차 있어서, 온통 낯선 작품뿐인 상황에서 내 머리와 감정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전시가 시작되는 2층 전시장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이슬람 문화와 관련된 작품이 많다. 다양한 문화가 반영된 집 대문의 문양, 외부활동이 제한된 여성들이 화장실을 비롯한 실내에서 생활하는 모습, 여가를 즐기는 가족을 사진, 회화, 영상으로 보여주며 그 지역에 대한 소개를 시작한다. ‘이제 우리 문화를 조금 알았으니 더 재미있는 것을 보여 줄게’ 하면서 다른 전시실로 이끄는 느낌이다. 3층의 마지막 전시장은 전시를 마무리하며 관람객이 SNS용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올만한 구성이었다.
두 번째 전시장인 <섹션 2.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록하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특히 30여 분이나 되는 두 영상작품 <통로>와 <불가능의 아틀라스>가 이번 전시에서 발견한 최고의 작품이었다. 영상 작품은 끝까지 보는 관람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이 두 작품은 오랜 시간 관람하는 사람이 많았다.
같은 스크립트로 두 개의 다른 영상을 만든 누즐 알가넴의 <통로>는 스크립트 자체가 호소력이 있었다. 작품을 다 본 후 해설을 읽어 보니 <달빛을 거두는 행인>이라는 시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시를 그대로 쓴 것인지 변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 기억 속에 남은 “거친 바다와 싸우는 배가 된 기분이에요. 하지만 가라앉지는 않죠” 라든가 “떨어지는 비를 손에 받아 빗방울의 두드림을 가슴에 품습니다”라는 표현은 마음에 착 달라붙는다. 난민신분으로 살아가는 이방인의 삶과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에서 전시할 영상을 만드는 예술가의 삶이 두 개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데,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 자체가 복잡한 세상에서의 피곤한 여행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크리스티아나 데 마르키의 <불가능의 아틀라스>도 두 개의 영상이 동시에 펼쳐진다. 무슬림 여인이 수를 놓는 장면과 남자 무용수가 춤을 추는 장면이다. 영상의 배경은 시장, 정원, 햇볕이 환하게 드는 집안, 비어 있는 상가 등 계속 바뀌면서 이동하는 느낌을 준다. 둘이 만나지는 않지만 같은 도시에 있다고 짐작하게 된다. 둘의 관계가 궁금하다. 어쩌면 전혀 모르는 남남일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던 시간은 지나가고 일상도 그렇게 흘러간다. 바느질과 춤처럼 반복하고 변형하면서 말이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절제되고 세련된 감성이 느껴지는데 동시에 미묘하게 슬프고 외롭고 서정적이다.
‘세상의 한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하지만 붕괴되는 것은 모든 세상이다.’ 요즘 걸프지역의 전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무너져 가고 있는 지역의 아름다움을 살짝 엿보고 나니, 안타까움과 무력감과 우울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내 의지대로 삶의 고귀함과 일상의 우아함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