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덕수궁 미술관 '향수, 고향을 그리다'

by 봄봄

향수, 고향을 그리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25.08.14~2026.02.22




기억 속 추억이 살아나는 전시가 있다. 덕수궁에서 본 <향수, 고향을 그리다>가 그랬다. 작년 가을부터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김환기의 회화가 몇 점 포함되어 있어서 보러 간 전시였다. 하지만 의외의 전시품이 내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인 추억 중 하나를 쓱 끄집어냈다.



<향수, 고향을 그리다>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고향의 풍경과 일본식민지배로 인한 팍팍한 현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와 폐허가 된 고향, 그 후 재건의 과정에서 변화화는 고향의 모습을 묘사한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전시는 시간순서를 따라 4부로 구성되어 있다.


IMG_4045.JPG 이인성, <설경>, 1930년대, 종이에 수채 물감, 28 x 38,7cm


IMG_4065.JPG 서둥진, <설경>, 1920년대, 종이에 수채 물감, 45.5 x 61 cm



1부인 ‘향토-빼앗긴 땅’은 미술품뿐 아니라 그 당시 시대를 반영한 문학작품을 같이 전시했다. 나라를 잃고 타지를 떠도는 사람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보인다. 백석의 「북방에서-정현웅에게」가 실린 1940년 7월호 『문장』 잡지와 1948에 출판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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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안쪽에는 옛날 가요를 전시한 코너도 있었다. 사람이 많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마침 아무도 없어서 자세히 보게 되었다. 백년설의 히트곡인 「나그네 설음」과 「번지없는 주막」의 레코드 판을 전시해 놓았는데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아빠는 젊은 시절에 그 당시 유행가보다는 옛날 노래를 즐겨 부르셨는데, 「울고 넘는 박달재」가 1위였고 이 두 노래 역시 단골 레퍼토리였다. 수영장 가는 길에 아빠가 불렀던 노래. 몇십 년 전 추억이 떠올라서 몇 번씩 반복해 들었다. 아빠는 이제 여러 가지 병치레로 노래 자체를 못 부르게 되셨다. 30대였던 우리 아빠가 걸어가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음감이 뛰어난 우리 언니가 코러스를 넣던 여름날 속 나는 다섯살 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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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그림은 2부 ‘애향-되찾은 땅’에 다섯 점 전시되어 있었다. 환기는 고향인 신안 안좌도의 자연을 모티브로 산과 섬과 바다와 구름과 달과 별을 그렸다. 모두 푸른색이 주조를 이루는 작품이지만 하나도 같은 색이 없다. 세 개의 이어진 벽에 미묘하게 다른 푸른색 그림이 주르륵 걸려 있는 모습을 보니, 바다가 보이는 높은 산에 올라서 동이 트기 전 어스름한 하늘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감환기 작품은 개인소장용 사진촬영은 가능하나 공개적으로 게재는 불가능하다.)


IMG_4043.JPG 양달석, <부산비다>, 1960년대, 패널에 유화 물감, 50 x 65 cm



3부 ‘실향-폐허의 땅’에서는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갔다가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온 작가들이 묘사한 피난지와 황폐해진 고향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있다. 4부 ‘망향-그리움의 땅’은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의 애환이 담긴 풍경화를 전시한다.


IMG_4072.JPG 김원, <한강>, 197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 x 53 cm


IMG_4076.JPG 전선택, <초대>,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61 x 73 cm


IMG_4068.JPG 변시지, <귀로>, 2012, 캔버스에 유화 물감, 50 x 60.2 cm



이 전시에는 210점이나 되는 작품이 있지만, 대부분 풍경화라서 난해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편안하게 볼 수 있다. '꼭 봐야지' 하고 별렀던 김환기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천천히 걸으면서 눈에 띄는 작품위주로 보았다. 문학작품과 옛날 가요와 처음 보게 된 몇몇 그림이 가슴에 남는 서정적인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