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미국작가 마크 브래드포드(1961~)의 개인전 <Mark Bradford: Keep Walking>을 보러 갔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관에서 본 대형 회화를 생각하며 들어간 전시장은 그게 전부가 아라며 작가의 세계관 속으로 나를 쓱 끌어들였다.
마크 브래드포드는 흔히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로 소개된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확실하게 와닿지 않는다. 나의 해석은 마크 브래드포드는 생활밀착형 현대미술가라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도시 변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인을 포함해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들의 인생을 반영해, 부조리와 불평등,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 소외를 다룬다.
흑인 싱글맘의 자녀로 로스앤젤레스의 빈민가에서 성장한 성소수자인 브래드포드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인 이슈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작가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업은 딱 버티고 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역사에 나오지도 않고, 사회에서도 그림자 취급을 받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말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오른쪽 전시실의 입구로 반바지를 입은 남자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영상작품 <나이아가라(Niagara)>(2005)이다. 젊은 흑인 남자는 깊게 파인 하얀 탱크톱에 형광 노란색 반바지를 입고서 엉덩이를 흔들며 리듬감 있게 걸어간다. 메릴린 먼로가 주연으로 나온 1953년의 영화 <나이아가라>에서 먼로가 엉덩이를 흔들며 섹시하게 걸아가는 장면을 참조했다는 영상이다. 치정 살인극인 이 영화는 행복한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영상에서 더러운 빈민가 거리를 걸어가는 젊은 남성은 보도블록의 웅덩이는 점프해서 건너뛰고 우회전해 들어오는 차를 피해 간다. 하지만 거친 환경에 비하면 취약해 보이고,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느낌이 자꾸 든다.
하층민이 사는 구역은, 그곳 주민이 아니라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방치된 공간이 되기 쉽다. 그곳에는 주민들의 고단하고 불편한 삶을 투영하는 비즈니스가 활개를 친다. 신용불량자 대상의 대출, 현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바로 집을 구매하겠다는 부동산업자, 이혼과 친권 소송 등 평탄지 않은 일상을 파고드는 광고 전단지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마크 브래드포드는 쓰레기로 바로 버려져도 아쉬울 것 없는 이런 전단지로 작업을 한다. 광고 전단지를 겹겹이 붙이고 찢어낸다. 엄마의 미용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재료도 작업에 이용한다. 파마를 할 때 사용하는 엔드페이퍼(파마용지)를 토치로 그을리고 염색을 해서 겹겹이 붙여 콜라주를 만든다.
좋게 말하면 소박한 재료, 거칠게 말하면 쓰레기로 만든 브래드포드의 미술은 자신과 이웃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매개체이다. 하찮은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전혀 가볍지 않다. 장대한 설치 작품과 대형 캔버스는 큰 소리로 외친다.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인 소외된 집단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 나간다.
대규모 설치 작품 <떠오르다(float)>(2019)를 밟으며 천천히 걸어본다. 처음에 봤을 때는 가로질러 쭉 걸어갔던 그 작품을, 지그재그로 걷기도 하고 중간에 서서 살피기도 하면서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캔버스와 종이와 노끈으로 만든, 온갖 색이 뒤섞인 화려한 바닥은 평평하지 않다. 조심조심 살피며 걸어야 한다. 장애물이 있어도 계속 걸어가는 것.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한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것. 전시제목과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마크 브래드포드는 미술이라는 형식을 빌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학적인 단어, 최첨단 기술, 미래 예측 따위의 이해하기 어렵고 뜬구름 잡는 개념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