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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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문득문득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얼마전에도 잠깐 떠올린 적이 있는 Y인데 왜 Y는 가끔씩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건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만 인연이 닿는다면 우리가 언젠가 다시 한번 만날 놀라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고 고대해본다.
Y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랬던 Y와 내가 의외의 장소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당시의 수능시험인 학력고사를 망쳐 결국 후기대를 가게 되었고 한 귀퉁이가 툭 잘려나간 순두부 덩어리 마냥 텅빈 마음의 연속인 날들이었다. 서늘한 마음처럼 진눈개비가 날리던 날, 대학교 운동장에서 합격자 예비소집이 있었다.
꿀꿀한 기분을 한순간에 부숴버리듯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생채기를 내듯, 놀란 마음에 뒤돌아보니 친구 Y였다.
우린 그렇게 우연히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원서를 넣었고 같은 과에 대학 동기가 된 것이다. 반가운 마음은 두말 할 것이 없었다. 운명과도 같이
Y는 대학동기 찐친이 된 것이다. 또다른 친구 셋과 함께 우리는 5명이 똘똘 뭉쳐 다니며 강의는 물론이고 종강 파티나 동아리 모임에 함께 하며 우정을 쌓아나갔다. Y와 나를 묶어주는 큰 인연이 없었다면 수많은 대학의 넘쳐나는 학과 중에 하필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원할 확률을 설명할 길이 없다.
Y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뾰족한 턱선의 얼굴형에 바이브레이션이 끝내주는 목소리로 ‘아침이슬’을 불러주곤 했었다. Y가 좋아하던 그룹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치현과 벗님들’인데 Y는
기성 가수들만큼 벗님들 노래를 잘 불러서 친구들과
한 목소리로 ‘너는 대학가요제 대상 감’이라며 진심으로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진짜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 1학년을 마치고 Y는 휴학 신청했다. Y의 빈집에 친구들이 모이면 마늘을 듬뿍 넣은 김치볶음밥을 해줬었는데 아직도 김치볶음밥을 먹을 때면 그 때
그 김치볶음밥의 추억이 떠오른다. 평소 쿨한 성격의 Y는 특히 내게 사랑을 듬뿍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특별한 이유를 나는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같다. 학년이 달라지며 조금씩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이 늘어났고, Y가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간들도 덩달아 늘어났다. 시간이 흘러 Y는 부천 어느 동네에서 비디오가게를 운영하기도 했었다.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불렀던 여대생은 영화에 취해 나와 다른 동기들과는 다른 삶에 휩쓸려가는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한국 영화계에 신인 감독이 쏟아져 나올 때엔 유명 감독 누군가의 옆자리에 Y가 서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며 혼자 웃음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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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우정 생활에 금이 간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나는 졸업 후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자주 만나지 못해서
예전과는 생활의 바퀴가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우리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말이다. 명문대는 아닐지라도 힘들게 다닌 대학교 졸업장을 따지 않는 Y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었으나 부모도 아니고 친구인 내가 어찌 할 수는 없었다. 다만
Y가 무언가를 피해 어느 부분에선 도피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따랐다.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사느라, 고된 직장 생활에 적응하느라 각자 다른 인생의 굴레 속에서 다람쥐마냥 쳇바퀴를 굴리는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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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 오랫동안 사귀었던 구 남친과의 결혼식, 나는 누구보다 Y의 축하를 받고 싶었다. 평소 Y는 내친구가 왜 구 남친과 그리 오래 사귀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를 비치긴 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가족 같은 마음에 나를 품어줄 수 있는 통큰 남자를 만났으면 했었던 것 같다. 정작 Y는 비혼주의자였다는 걸 글을 쓰는 지금 떠올렸다.
아무튼 내 마음 속 오랜 벗인 Y에게 결혼식을 알렸다. 1년 동안의 예비자 교리 과정을 끝내자 마자 6월초 결혼식을 잡았으니 주임신부님 조차 결혼식을 위해 교리를 받았니? 라고 물어 보셨지만, 그건 순전히 우연일 뿐이었다. 비디오가게를 정리한 Y는 자신이 최고로 좋아하던 과목인 영어에 실력을 더해 영어 강사로 전업한 즈음이였다. 새로운 제자의 영어 과외 날짜와 내 결혼식 날이 겹쳤다며 혼인미사가 치러진 오류동 성당에 Y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축의금은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왔다. 우리가 엇갈린 연인은 아니지만 그 때 그 시간으로 거슬러 간다면 둘 사이의 우정이 아직도 이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사소한 것이지만 결혼 당시 내 마음에 구멍이 나게 만든 Y의 한마디는 ‘하필’이었다.
Y가 ‘왜 하필 영어과외 시작하는 날, 결혼식을 잡은거니?’라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만남은 이어졌을까 곱씹어본 순간이 꽤나 여러번이었다.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 때 만약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으니 따로 얼굴을 보자며 Y가 연락을 해왔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먼저 서운함을 지우려 연락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하필 ‘하필’이란 단어에 꽂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난 여행길에 Y를 떠올렸던 것처럼 아직도 가끔 준비하지 않은 우연한 순간에 Y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스무살 대학생 푸릇푸릇한 첫 출발을 앞둔 그 때, 눈발이 날리던 대학 운동장에서
Y가 ‘ㅇㅈ야~!’ 라고 불러줬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