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를 제대로 읽기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셰익스피어의 73번째 소네트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은 불꽃
그것이 이걸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그것이 이걸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살이 동료 학생들이 얼굴에 안착 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p21~22]
스토너가 압도당한 건 셰익스피어였다.
아엘리우스 도나투스는 4세기 중반 로마에서 활동한 저명한 문법학자이자 수사학 교사로, 대략 310년경에 태어나 363년 이후까지 생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지만, 로마의 포럼 근처에서 학교를 운영하며 라틴어 문법과 고전 시인들의 작품을 가르쳤으며다. 문학적,언어학적 업적 면에서 라틴어 교육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문법책”이나 “기초 교재”를 만들었다.
또한 그는 로마 희극의 대가 테렌티우스의 6편 희극과 베르길리우스에 대해서도 주석을 남겼다.
그의 작업 덕분에 라틴 고전 문학(특히 베르길리우스와 테렌티우스)이 중세와 르네상스까지 살아남아 후대 유럽 문학·교육의 뿌리가 될 수 있었으며,
도나투스 전통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들의 비극 창작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고전(라틴·그리스)을 재발견하면서 도나투스의 구조를 바탕으로 연극 이론을 재구성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은 종종 서막에서 인물과 상황을 제시하고, 전개에서 갈등이 고조되며, 파국에서 비극적 결말(주인공의 몰락과 인식)이 도달하는 패턴을 따른다.
그래서 그는 로마 말기 라틴어의 “문법의 대가”로서,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고전 문학을 보존·전파하고 중세 유럽의 지적 세계를 형성한 핵심 인물로 기억된다.
[스토너]에서 “도나투스와 르네상스 비극”이라는 주제는 단순한 학술 세미나 토픽이 아니라, 소설 전체의 구조적, 주제적 핵심을 이루는 상징적 장치이다. 이 주제는 스토너가 맡는 세미나 과목 “라틴 전통과 르네상스 문학”의 맥락에서 등장한다.
수강생 캐서린은 세미나 보고서 주제로 “도나투스와 르네상스 비극”을 선택하고,
특히 셰익스피어가 도나투스 전통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셰익스피어의 비극 구조가 전승된 도나투스적 요소를 계승,변용했다는 점)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스토너는 평생 “르네상스 문학의 보석은 고전기준에 따라 다듬어졌다”는 신념을 가지고 가르쳤다. 이 논문은 스토너의 학문적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라틴 전통이 단순한 과거 유물이 아니라, 영국 르네상스(셰익스피어 포함)의 본질적 토대임을 강조해 왔었는데 논문은 이 신념의 구체적 증거로 기능하며, 스토너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찰스워커는 준비된 논문 없이 즉흥적으로 캐서린의 논문을 공격했다. 그는 "천재는 독창적이고 유일하며 어떤 전통의 지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워커의 말투는 비꼬고 경멸적이었고, 학술적 근거 없이 감정과 독단으로 일관했다.
찰스 워커는 발표에서 셰익스피어를 절대적 천재, 스스로 법칙이 되는 존재로 신격화했다. 도나투스를 “구시대적 숭배”로 몰아가는 말은, 사실 스토너의 삶 전체를 겨냥한 공격이었다. 스토너가 평생 믿고 실천해온 가치—겸손한 계승, 꾸준한 헌신, 체계적 정리—를 “구시대적·답답한·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워커의 태도 뒤에는 두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다.
하나, 셰익스피어에 대한 동경이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신처럼 떠받들며, 자신도 그 천재의 일부가 되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다.
다른 하나, 도나투스(스토너의 태도)에 대한 혐오다. 규칙을 따르고, 꾸준히 공부하며, 겸손하게 전통을 잇는 자세가 자신의 무능과 열등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증오한 것이다.
워커는 천재를 숭배함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려 했고, 그 천재를 가능케 한 전통(겸손·헌신·규범)을 깎아내림으로써 위안을 얻으려 했다.
스토너는 이 발표를 자신이 평생 믿어온 모든 것에 대한 모독으로 느꼈다. 그는 분노를 억누르며 워커에게 F학점을 주었고, 나중에 대면에서 “네가 한 말은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은 아니다”라고 직격 했다.
스토너 자신도 처음 문학에 반한 계기가 셰익스피어 작품(소네트 73번)이었고, 그 순간은 매우 개인적·직관적·감정적인 깨달음이었다. 아처 슬론 교수가 소네트를 낭독할 때 스토너는 이성적 분석이 아니라, 시의 리듬과 이미지, 삶의 무게가 주는 감동에 압도당해 문학으로 전과하게 되었었다. 그건 전통이나 학문적 체계가 아니라, 순수한 시적 체험이었다.
그래서 워커의 주장이 스토너에게 완전히 낯설거나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부분적으로 공감되는 불편한 진실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처음 접했을 때 전통을 공부하기 전에 이미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랑은 학문적 전통이 아니라, 개인적 감동에서 시작됐다. 워커의 “천재는 전통 없이도 빛난다”는 말은 스토너 자신의 출발점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스토너는 그 후 평생 그 감동을 전통이라는 틀로 체계화하고, 학생들에게 전파하려 애썼다. 워커의 말은 스토너가 평생 쌓아온 그 ‘틀’을 부정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더 아팠을 것이다.
불편함의 핵심은 스토너에게 셰익스피어는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전통 속에서 꽃핀 천재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음 체험이 워커의 주장과 닮았다는 점이 무의식적으로 스토너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
결국 “도나투스와 르네상스 비극”은 [스토너]에서 단순한 학술 주제를 넘어, 고전 전통이 현대 삶에 미치는 지속적 영향과 그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존 윌리엄스와 그의 소설 속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 사이에는 강한 반영과 깊은 공명이 느껴진다.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반자전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작가의 삶과 주인공의 삶이 여러 층위에서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윌리엄스 본인은 이를 강하게 부정하며, 스토너를 완전한 허구의 인물로 규정했다.
두 사람의 배경과 경력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윌리엄스는 텍사스 시골 농부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덴버 대학교에서 오랜 세월 영문학 교수로 일했다.
스토너 역시 미주리 농부 집안 출신으로, 미주리 대학교에서 평생 영문학 조교수로 머물렀다. 둘 다 농촌의 척박한 땅에서 시작해 대학 영문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으며, 학과 내 정치적 갈등, 무능한 동료와의 충돌, 승진 실패 같은 학계의 어두운 현실을 몸소 겪었다.
문학에 대한 태도에서도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윌리엄스는 문학을 “현실로의 도피”라고 표현할 만큼 평생 문학에 몰두했고, 스토너 역시 셰익스피어 소네트 한 편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어 평생 문학 강의와 연구에 헌신한다. 그러나 둘 다 외부적인 성공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용한 헌신과 내면적 충족이 삶의 중심이었고, 세상이 주는 인정은 거의 없었다. 이 대비—내면의 풍요와 외부의 빈곤—는 작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비추는 듯하다.
학계의 어두운 면 역시 소설에 생생하게 녹아 있다. 로맥스 교수와 찰스 워커 같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음모와 무능한 동료와의 마찰은 윌리엄스가 덴버 대학교에서 직접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한 듯하다. [찰스 쉴즈의 전기]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학계 내에서 반복되는 좌절과 갈등을 깊이 느꼈고, 그 감정을 스토너의 삶에 투영했다.
성격과 태도에서도 스토너는 윌리엄스의 자아를 떠올리게 한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태도, 문학 속에서만 진정한 자유와 안식을 느끼는 모습은 작가 본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윌리엄스는 스토너를 자신의 자화상으로 보지 말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소설과 자전은 합리적으로 함께할 수 없다”며, 작품이 실제 경험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대학 이름, 결혼 생활의 세부 사항, 개인적 사건들은 작가의 삶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부정에도 불구하고, 스토너라는 인물은 윌리엄스의 내면적·감정적·경험적 본질을 강하게 담고 있다.
결국 [스토너]는 작가가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는 학계의 좌절과 문학에 대한 순수한 사랑, 평범함 속의 숭고함을 스토너라는 인물을 통해 승화시켰다. 그래서 이 소설이 이렇게 아프고, 이렇게 깊이 공감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걸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이 구절은 마치 윌리엄스가 조용히 읊조리는 것처럼 들린다.
소멸을 직시하면서도 삶을 원망하지 않는 태도.
상실을 예감하면서도 사랑을 줄이지 않는 마음.
나는 그의 문장 속에서 깊이보다 온기를 먼저 느낀다.
설명하지 않으면서 이해하고, 판단하지 않으면서 바라보는 시선.
그 관대함 앞에서 나는 겸손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