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에는 나와 동갑인 여자아이가 살았다.
검은 생머리에 동그란 두 눈 검은색 재킷에 빨간 치마 반짝이는 구두 무릎까지 올라오는 새하얀 양말 언제나 깨끗했던 허연 얼굴까지 그 아이는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예쁜 아이로 공주 대접을 받았다. 그 당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게 깨끗한 옷을 입을 수가 없었고 더욱이 반짝이는 구두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그냥 구두는 신데렐라 동화에서나 나오는 신발정도로 여겨졌고 일 년에 한 번 명절 때 사준 운동화로 발사이즈가 커질 때까지 헤어질 때까지 신고 다녔다. 그 아이는 우리와 잘 섞여 놀지 않으려 했다. 그 집엔 일해주는 식모가 있었는데 젊은 누나였다. 해 질 녘이면 그 집 아이들은 해보다 먼저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 손엔 늘 먹을거리가 있었고 그 주위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중의 한 명이 분명 나였다는 게 부정할 수가 없는 건 누군가 찍어준 사진 안에 코 흘리며 손 벌리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랫집은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부잣집이었다. 젖소도 키웠는데 젖소는 따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집 부모님들은 좋은 옷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교회를 다니거나 우리 엄마아빠가 입는 옷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감색바바리코트에 진한갈색구두
코트깃 사이로 보였던 하얀색 와이셔츠 검은색 바짓단 팔 대 이로 가지런히 빗질한 가르마와 그 주위로 번질번질 빛나던 머리기름,
그 집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늘 예의 바르고 공손했지만 왠지 집안을 다스리는 가장의 분위기는 풍겨나지 않았다. 그냥 명절 때 잠시 들른 집안 어르신 같은 분위기가 났었다. 아마도 그 집 아주머니의 드센 치맛바람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와 동갑이었던 여자아이는 엄마 곁에 붙은 껌딱지처럼 엄마 곁에서 떠나지 않았고 항상 엄마말을 잘 따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그 아이가 생일이라며 아이들을 초대한 것은 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검은색 자개농이 안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남은 반을 커다란 까만 텔레비전 브라운관이 차지하고 있던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을 가득 메운 공기는 냄새가 달랐다. 이제껏 내가 살았던 방에서 나던 그런 냄새가 아니었다. 그 냄새에는 많은 정보와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듯했다. 이미 대문을 열고 마루로 들어가기 전 마루 앞에 벗어놓은 아이들의 새 신발들은 조금 나를 주눅 들게 만들어 놓았다. 그 한쪽 구석으로 누렇게 더러워진 신발을 숨기듯 밀어 넣었다. 빨간 교자상위에는 그 당시에는 볼 수가 없었던 하얀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교자상 주위로 몇 명의 여자아이와 몇 명의 남자아이가 빙 둘러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반에서도 공부를 잘하고 옷을 깨끗이 입고 다니는 아니 그렇게 보였던 친구들로만 부른 듯했다. 우연히 내가 그 생일상에 초대받은 건 부잣집 이웃이라는 이유를 빼놓고는 적당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장롱을 뒤져서라도 아니 엄마에게 떼를 부려서라도 제일 좋은 옷으로 입고 오는 건데, 초대받았다고 좋아서 뛰어온 내가 한심해 보였다. 아이들은 머리 위에 삼각형 모자를 하나씩 쓰고 타들어 가는 촛불 주위로 모여 박수를 쳐주었다.
"찰칵찰칵"
유년시절 찍은 나의 사진들을 볼 때면 그 시절의 냄새와 공기의 흐름과 흐렸던 날씨와 그 집개가 유난히 짖었던 것까지 하나씩 하나씩 사과 껍질을 벗겨내 듯 생각이 난다. 그 한 장의 사진 속에 잘 섞여 들지 못하는, 다들 색색들이 다홍색의 화사한 칼라빛 속에 무채색을 띤 내가 어중간히 서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묘한 감정으로 촛불을 바라보던 아이가ᆢ
그 집 대문엔 커다란 페인트칠로 개조심이라고 쓰여있었다. 글씨가 얼마나 컸던지 대문보다 글씨가 더 크게 보였다. 그 집엔 커다란 셋 파트라고 부르던 검은색 개가 묶여 있었는데 집 앞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사나운 개는 기척이 없어질 때까지 짖어댔다.
언젠가는 우리보다 나이가 어렸던 이제 막 걷기 시작했던 밑에 집 아이가 그 개한테 엉덩이를 물린 적이 있었다. 우리들은 동네 마당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목줄이 풀린 시커면 셋 파트는 단숨에 우리를 덮쳐왔고 우리들 중 가장 민첩하지 못했던 동생이 물리고 말았다. 우리들의 고함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른들은 막대기를 들고 덤벼들어 아이를 떼어 놓았다. 이후 동네사람들의 원성을 듣고서야 부잣집의 셋 파트는 개장수에게 팔려갔고 더 이상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담이 높았던 아랫집은 빙 둘러 집주위로 감나무와 밤나무가 심겨 있었고 집 앞으론 사과나무와 대추나무도 심겨 있었다. 우리 윗집은 아랫집의 외할아버지 집이었는데 그 집역시 집둘레로 탱자나무가 심겨 있었고 무수히 많은 감나무와 밤나무가 심겨 있었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이에 우리 집이 끼어 있어서 감이 익어가는 계절이나 밤이 떨어지는 계절에는 두 집 담 아래 떨어진 밤과 감을 주우러 돌아다녔다.
나와 동갑이었던 여자 아이는 초등학교 육 학년이 되기 전 오 학년 가을쯤에 전학을 갔다. 그 많던 논과 밭 그리고 집과 나무들을 모두 팔고 고향을 떠났다. 빈터로 남은 그 집에 이후로 세간살이가 몇 번 드나들었고 이후 나도 서울로 학교를 다니게돼 소식이 끊어졌다.
지난주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면서 들은 이야기는 그 집 아주머니가 암에 걸려 오늘내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잊고 지내던 동갑내기 여자아이도 생각이 났다. 유년기를 같이 지냈던 부잣집 여자아이, 새침데기였던 여자아이가 생각이 난다.
모두에겐 그런 조각조각 수없이 많이 얽매져 만나왔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늙어 간다는 건 그만큼 잊혀 간다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 유년기 오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같이 자란 그 아이가 가끔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