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역학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하는 거리

by 둥이

오래전 아래층에 이사 온 여자가 인사를 왔다.

그렇게 아이를 앞세운 여자와 현관 앞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대게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 층간소음 때문인지 윗집보다는 아랫집에 인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이건 윗집도 아니고 아랫집에서 인사를 왔길래 이상하다 생각은 들었지만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들을 앞세운 이유가 애들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삼 년 전은 코로나로 인해 만남의 장소와 인원 제안까지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사생활 규제로 사회전체가 통제받는 시기였다.

아내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동네 어머니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는 이웃들이 생겨났다. 관계로만 따진다면 깊이는 없는 그냥 아이들이 좀 친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 다는가 학교 과제를 확인할 때라든가 그렇게 서로를 경계하며 선을 그어 관계를 만들어 갔다. 아내는 코로나 규제가 약해져 가는 시기에 아이들과 ****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에서 아래층 여자를 만났다. 그분들도 **에 다닌다고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관계의 빗장이 조금은 풀어져서 언니 동생하며 전보다는 서로를 챙겨가며 지내게 되었다. 아래층 여자와 남자는 젊은 부부였다. 남자는 소심하고 말수가 없었고 여자는 활기차고 말이 많았다. 여자의 이목구비는 전체적으로 날카로웠다. 여자의 눈코입은 그대로 아이에게 붙어 있는 듯 아이는 엄마를 많이 닮았지만 웃을 때나 말할 때의 표정은 아빠를 닮았다. 멀리서 볼 때나 가까이서 볼 때나 화목하지 않아 보였지만 남의 가정사라 별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면서 일을 맡아 잦은 행사를 주관하고 많은 봉사활동을 해나갔다. 세명의 임원들은 자기 시간을 쪼개며 일을 해나갔고 일 년간을 그렇게 분답스럽게 힘듦이 쌓여갔다.


봉사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따뜻한 햇살이나 시원한 바람과 같아서 단지 곁에 있는 것 만으로 그 곁에 있다는 것 만으로 마음이 치유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봉사란 햇볕이 되었다가 바람이 되었다가 나무가 되었다가 웃음이 되었다가 우산이 되었다가 어깨동무가 되어주고 손잡음이 되어 주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임원진 회의를 다녀온 아내는 아파했다. 눈가가 부어 있었다. 아내는 회의 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곁을 주지 않고 경계를 넘지 않는 아내는 그 한두 마디의 말을 듣고 서럽게 울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사람에게 쏟았던 시간으로 더 아파했다.


식물과 나무가 살아가는 데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나무는 자기가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직근을 뻗어 중력 방향으로 나무를 서게 한다. 직근이 튼튼하게 부여잡은 나무는 잔뿌리를 내려 영향분과 수분을 찾아 뻗아 나간다. 들녂에 풀들과 작물들도 자기들이 살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나간다. 햇볕과 바람이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은 식물을 자라게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필요한 거리는 얼마나 될까 사람은 관계에서 오는 감정으로 힘들어하기도 하고 반면에 그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늘 조심스러웠던 사람 마치 자기가 제일 힘든 것처럼 자기 힘듦을 주변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사람 종교활동이나 동아리모임이나 사람이 모이는 단체활동에서는 언제나 겪게 되는 이 천태만상의 인간 군상들, 피해 갈 수 없는 관계들, 소모되는 감정들,

그런 인간군상들과 엮이지 않으려 더 조심하고 자기 직분에 충실하려 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은 밟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정 관리를 해야 되는 ᆢ


그 고통은 그런 말을 회의석상에서 들어서가 아니라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나를 그렇게 "보았다"라는 데서 기인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그때의 고통은 내가 그런 사람이 여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한테 그렇게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람이 같이 듣고 보였다는 데에 있다.


익명성이 사라진 관계는 그만큼 수반되어야 될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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