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냄새

향기 품은 겨울바람

by 둥이

내가 아는 냄새


바람이 분다.

바람은 한동안 겨울을 품을 것이다.

내게로 불어오는 바람,

옷깃 속으로 파고드는 찬 공기

바람은 향기를 퍼트리고

순간 내 몸은 꿈틀 반응한다.


뉴런은 전기신호를 만들어 낸다.

내가 아는 바람이구나

혈관으로 퍼지는 아스라한 순간들,

앞 논밭을 뛰어노는 아이들,

잊히지 않은 싱싱한 냄새들,

포개져 시공을 달려 마주하는 시간들,


오래전 내가 아는 겨울바람을 맞은 날,

움켜 잡으려 크게 숨을 들이켜본다.


내가 아는 바람

내가 아는 햇볕

내가 아는 겨울

내가 아는 어스름

내가 아는 냄새


가을걷이가 끝난 드넓은 논밭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흰 눈이 군대군대 쌓여 있는 논으로 동네 이이들은 떼 지어 뛰어놀았고 하루해는 짧기만 했다. 솜으로 누빈 얇은 옷을 입고도 아이들은 추운 줄 몰랐다. 나의 유년 시절은 논밭에서 뛰어놀며 만들어진, 바람과 흙으로 비져진 시간들이다. 유년의 아름다운 시간은 언제나 느리게 흘렀고

또 어느 시간은 정지해 있었다. 아이들은 추위와 허기를 잊은 채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온 산을 뛰어다녔다. 시간은 흐름을 멈추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모두가 행복한 시절이었다.

낮은 구릉으로 겨울 해가 저물어 갈 때쯤이면 "밥 먹어라" 엄마의 목소리에 동네 개들은 짖어 대기 시작했다. 한집 개가 짖기 시작하면 옆집 개도 덩달아 짖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는 집집마다 달랐지만 짖지 않는 개는 없었다.

마을어귀 전체로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는 파도 너울처럼 퍼져갔다.


뺨을 뻘겋게 물들인 겨울바람에 비릿함이 묻어 있었다. 바람은 온 동네를 휘고 돌아 사람 사는 냄새를 실어 날랐다.

그날 누구네 집에서 무엇을 먹는지도 바람은 알려주었다. 경수네는 된장찌개 주호네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까만 입속으로 사라지는 밥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밥냄새와 소똥냄새 연기냄새 빨래 냄새 나무 냄새 수많은 겨울 냄새는 바람 속에 베어 몸으로 들어왔다.


"내가 아는 냄새구나"


사무실 앞 낮은 산에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워 한참을 서있었다. 잡히지 않는 아련한 시간이 후루룩 밀려왔다.


내가 아는 바람을 만난 날

난 그렇게 어린아이가 되어 바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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