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마음을 지키려 할 때

B형 독감 후기

by 둥이

"단단한 것이면 뭐든 상관이 없었다.그가 떠도는 자기 마음을 끌어다 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옆구리를 잡아당긴 그 마음을, 저녁나절 이 시간쯤에 산책을 나올때마다 자극적인 사랑의 질풍으로 채워지는 듯한 그 마음을, 그는 그 마음을 참나무에 묶었다. 거기 누워 있다 보면 그의 내면과 주변의 소란한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 들었다."

올랜드 P19- 버지니아울프



"B형 독감이에요"

동그란 안경을 코에 걸친 할아버지 의사가 콧속으로 긴 면봉을 넣었다. 할아버지 의사는 머리카락의 반정도가 간신히 머리에 붙어 있었다. 탈모 관리에 신경을 쓴 것처럼 가지런한 모습이 머리카락이 풍성한 할아버지보다 더 단정해 보였다. 그냥 봐서는 칠순은 훌쩍 넘어 보였다. 편하게 노년을 보내도 되는데 일을 놓지 않는 이유가 가끔 궁금했다. 가끔 구부정하게 앉아서 자판을 두드릴 때는 의사보다는 전당포 사장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앉아있는 검은색 의자가 유난히 커 보이는 건지, 할아버지의 등이 움츠려 작아 보이는 건지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푹신해 보이는 검은색의자가 점점 더 크게 보였다.


쌍둥이 아들들이 지난주 B형 독감으로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코로나까지 겪은 세대였기에 이 정도의 감기는 우스워보였다.

뭐든지 상대를 얕잡아 보는데서 문제는 시작된다. 아이들은 코로나 때도 겪어 보지 않은 심한 두통과 고열로 힘들어했다.

아이들이 다 낳아갈 때쯤 아내와 나까지 독감 증세가 찾아왔다.


타미플루 5일 치 처방을 받았다.


"환청이나 환영이 보일 수도 있어요"

"감정 기복이 심해질 수 있으니까 예민한 사람들은 특히 조심하세요 "


평소에도 세심하고 한 예민하는 아내는 감정 기복이 심해질 수 있다는 말에 할 말이 많아진 듯,

이야기했다.


"독감이 아니어도 평소에 감정기복이 심한 편인데 약까지 먹으면 어떻게 변할지 걱정이다"


아내는 올해 반백년 나이가 되었다. 평소에도 꼼꼼하고 예민한 아내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뒷바라지하는데 틈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 말이 마음에 닿아는 지도 모른다.


관계로 상처받은 마음보다는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낫다고는 하지만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파 온다.


사람은 위험하거나 두렵거나 슬프거나 외로울 때 마음이 몸을 보호하려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마음은 그런 상황에 있는 몸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한다. 일어나 뛰게 하고 밀린 빨래를 하거나 대청소를 하거나 책을 읽게 하거나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입하게끔 만들어준다.


반대로 몸이 마음을 보호하려 할 때도 있다.

누군가와 대화에서 상처받지 않으려 부러 외면하거나 잠을 자거나 대화를 거부하거나 하는, 그리고 대부분의 어른들이 어른이 된 이후로 내보이는 감정의 표현들 즉 다시 말해서 모든 척하는 모습들은 몸이 마음을 지키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쁜 척 슬픈 척 있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적어도 감정에 순응해 행복을 고순도로 만끽하는 조르바와는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자유와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보다 좀 길 거예요.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매달려 있으니까 이리저리 다니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을 자르지 못하면 "


잊고 살다가도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된다.

몸의 소중함을 ᆢ그리스인 조르바가 그렇게 좋아하던 자기 몸을 ..걷고 뛰고 먹고 숨 쉬게 해주는 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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