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자주 가는 스파게티집이 있다. 느끼하지 않고 맵지도 않아서 아이들이 좋아하다 보니 한 달에 세네 번은 들르게 된다. 특히 "스파게티가 맛있어 봤자지" 하는 사람도 올리브기름과 마늘향이 적당히 베어 들어간 크림스파게티를 먹어 보고는
"와 이 집은 느끼하지도 않고 담백하네"
하며 마늘과 크림을 듬북 떠먹게 되는 그런 집이다.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뚝배기에 끓여 나오는 얼큰한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는다. 이 스파게티는 마치 이탈리아에서 김치찌개를 먹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얼큰하면서도 맛이 좋다. 뚝배기안을 가득 채운 해물과 채소들 사이로 빨간 고추들이 보이는데 청양고추의 묵직한 매운맛보다는 가볍고 얼얼한 매운맛을 보여준다. 메뉴는 분명 토마토 스파게티이지만 한식 맛집에서나 먹어 보짐한 감칠맛과 매운맛이 스파게티 면발을 잘 잡아주어 한번 먹어본 사람은 계속 찾게 돠는 중독성을 갖게 된다.
뚝배기에 남은 국물까지 먹고 나면 머리에서 굶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스파게티집에서 볼 풍경은 아닌 듯해서 가끔 다른 걸 먹을까도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은 입술 주위로 하얀 크림을 묻혀가며 스파게티를 후루룩후루룩 최대한 소리 내며 먹는다.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본 것을 따라 하는 것이다. 마치 그렇게 먹어야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듯이, 먹는 것보다는 후루룩 소리에 더 집중하듯이
스파게티집은 동네에서도 맛집으로 소문이 나다 보니 언제 가도 웨이팅 시간이 있다. 식당 안은 작고 테이블도 많지가 않다. 테이블 간 거리가 이렇게 가까워도 될까 싶을 정도로 붙어있다. 그렇다 보니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더 재밌게 들릴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 보다는 옆테이블에 더 신경을 쓰게 될 때도 있다.
그날도 난 아이들과 스파게티를 주문하고 애피타이저로 나온 식빵을 먹고 있었다. 바로 옆 테이블은 젊은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냥 봐도 서로는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건 금방 알 수 있는데 서로의 표정이나, 말투나, 넥킨을 사용할 때 손동작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 건 눈여겨보지 않아도 한 번만 봐도 알 수가 있다. 편한 사이라면 냅킨으로 입술을 그렇게 자주 닦지는 않는다.
그렇게 남녀는 서로를 탐색하며 취미나 날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가끔 책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개중에는 내가 읽어본 책도 있었다. 남자분이 주인공 이름을 다르게 알고 있어서 저녁때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그렇게 책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스파게티가 나왔다. 크림스파게티와 뚝배기스파게티와 고르곤졸라가 옆테이블에 놓였다. 남자와 여자는 그리 식탐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푸짐한 식단이 차려진 후 두 분은 서로를 쳐다보며 먼저 먹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여기까지는 누가 보아도 보기에 좋았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남자분은 그럼 먹겠 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방금 전 우리 아이들이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었던 먹방을 똑같이 따라 했다. 차이가 있다면 소리의 성량과 질감이 달랐다. 마치 마이크를 달아 놓은 듯 큰소리를 내며 스파게티 면발은 입에서 목으로 넘어갔다. 맞은편 여자분도 그 소리에 크게 놀랐던지 한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작은 식당 안 모든 밥 먹는 소리는 순간 하나의 화음에 묻혀 버렸다. 남자분의 면치기는 그야말로 압도적 이였다. 유튜브 먹방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멸치는 소리가 서라운드 더빙이 되어 식당 안을 메워 나갔다. 그날 난 바로 옆자리에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어떤 남자의 스파게티 먹는 소리를 귀담아듣게 되었다.
흔히들 우리는 식사예절로 소리 내서 먹지 마라, 입을 다물고 씹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 이런 통념은 면류 앞에선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아니라면 소리를 내서 먹어야 오히려 더 맛있는 음식을 구분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스파게티가 후루룩후루룩 몇 번의 젓가락질로 순식간에 목으로 넘어갔다. 어쩌면 스파게티와 짜장면과 라면과 국수 모든 면발은 최대한 소리를 내며 먹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더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물론 여전히 숟가락 위에 얹어서 먹거나, 포크로 돌돌 말아서 먹어야만 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습관이기도 하고 또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한 건 그날 옆 테이블에 남자는 여전히 스파게티를 소리 내서 먹고 있을 거라는 거다. 어쩌면 스파게티는 포크로 돌돌 말아먹는 것보다는 후루룩 소리를 내서 먹야야 더 맛있는 음식인지도 모른다. 소리로 먹는 스파게티 후루룩후루룩후루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