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 이야기

기억 착각 진화 세월 침묵 죽음

by 둥이

기억의 착각


오랫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렇다고 약속을 하고 따로 만난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동창들은 두세명 정도다. 동창회 소식을 듣고 참석한적은 없다. 그런 모임에 참석한다는게 힘이든다. 정확하게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사용해야 된다. 뻐근하고 불편하다.



백화점이나 놀이동산에서 우연히 마주친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마주칠수 있는 장소는 결혼식과 장례식 두군데 밖에 없다. 살다보면 알게 된다. 아무리 한국이라는 나라가 작아도 학교 동창들을 우연히 볼수는 없다. 누군가 마법을 부려 우연히 마주칠수 있는 길목을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치 않고서야 30년이 넘도록 어떻게 한번도 볼수가 없단 말인가 반면에 같은 업계에 근무하는 지인분들은 세미나나 공항게이트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피하고 싶은 거래선 임원이나 깐깐하기로 유명한 구매팀 부장을 43번 게이트에서 만나곤 한다.



이제 결혼식에서 마주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반면 장례식에서 볼 가능성은 많아진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 문제가 발생된다.



어렴풋이 얼굴만 아는 사이였던 옆반 동창이 반갑게 인사를 할때 어떻게 말해야 될지 고민하게 된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라고 말하기엔 너무 나간듯도 해서 일단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선거에 나온 정치인들이 영혼없는 악수를 하듯 오른손을 내민다.



"잘지냈어 건강하지 "



딱 두마디, 두마디 이상을 나누기엔 세월의 공백이 두텁게 가로막고 있다. 말을 고르는데 시간이 걸린다. 날씨이야기와 전쟁이야기 트럼트의 관세이야기 정도까지 끄집어내서 말을 붙혀본다. 궁색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자리에 악수만 하고 떠나기엔 예의가 아니다. 경동맥 부위가 당겨온다. 보이진 않지만 과하게 에너지가 쓰이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건 금방 알 수 있다. 불편함은 빛의 속도로 마음을 옭아맨다. 토막난 침묵들이 깊게 패여간다.



이십분 이정도 시간이면 그리 나쁘지 않다. 동부간선도로가 막힌다는 핑계를 대고 슬쩍 일어나본다. 누가 먼저 일어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것처럼, 오랫만에 만난 동창도 따라 일어선다.



구두를 찾아 신으면서 자세히 뒷모습을 훌터본다. 하햫케 센 머리, 구부정한 허리,


내가 아는 얼굴의 동창은 다시보잔 말을 건내고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아마 죽기전에 몇번은 더 볼것같다.


모두 부모님들이 연로하시다. 서로에게 볼 명분을 만들어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십년이 다되가는 시간, 서로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만 확인한체 헤어진다. 동부간선도로 위에서 불현듯 생각이 난다.



점심시간 농구공을 나에게 패스하던 그 아이와 놀아던 순간들이 형광등 켜지듯 생각난다.



기억은 늘 이렇다. 무언가 허술하다.


착각일까 너무 먼 기억을 불러오기엔 시간이 벽이 두껍다. 스스로 정리된 기억, 기억은 진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