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우리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기를 바라는 신호이다. 요즘 병원을 자주 다닌다. 조그마한 증상만 있어도 병원엘 가는데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연에 예방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병원에 가면 먼저 검사를 한다. 그 검사 결과를 듣기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중에 항상 불안을 느낀다. 이제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혹시나 암이나 여타 중대한 질병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항상 함께 하기에 불안하다. 그런데 이 불안감을 말할 수가 없다. 가족, 친구들이 걱정할까봐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나 혼자 삼키는 경우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건강에 대해 너무 비약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여튼 나에게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두려움과 불안을 잠깐식 회피하기도 한다. 그 불안은 나에게 너무나도 불편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유는 아주 잠깐 뿐이다. 또 다시 생겨나는 불안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때이다. 이런 불안이 올라올 때는 감정에 취해있기 보다는 이 감정이 왜 자꾸 드는지에 대해 질문을 해야만 한다. 왜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생기는지, 과거의 나와 연결된 사건이 있지는 않았는지, 이 두려움을 내가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지 등등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 본다. 그러다 보면 나의 심연에 집중하게 된다. 집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이것은 나의 정원에 단순히 나무가 있구나, 꽃이 있구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나무나 꽃을 들여다보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다. 이것은 나무의 잎과 줄기, 뿌리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 깊게 들여다보고 정원을 구성하는 구성체로서 나무와 꽃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과정에 가깝다. 이렇게 인정하는 것은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이며, 정원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나무로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는 일이기도 하다. 즉, 나무와 주변을 함께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나무가 어떤 식물이구나를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편한 감정을 살펴보는 일도 이와 같다. 나는 감정을 살펴보면서 감정에 대해 그냥 단순히 오늘 이런 감정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에서 그치지 않고, 이 감정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지, 관계에서 왔는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왔는지 등을 살펴서 뿌리 깊게까지 이해해 보는 과정과 같다. 그리고 이 감정이 자라서 또는 내가 잘 컨트롤해서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불편한 감정은 우리가 이제는 우리를 우리의 감정을 더 세세하게 그렇게 바라볼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냥 지나치는 바람처럼 우리 자신을 볼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잘 알기 위해 언제나 배우고 쌓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 무엇이든지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