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 온전한 존재를 느끼는 순간.

신성과 영성이 조화를 마주하는 순간.

by 스토미

내가 이 순간 하나의 존재로서


온전하게 숨을 쉬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그 충만한 감정은


어떤 성공을 이루거나 목표를 달성할 때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빛깔로 나의 내면을 채운다.




사람은 자신이 하나의 존재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대략 생후 24개월가량이 지난 후부터


서서히 세상과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린 에고를 서서히 키워나간다.




분리된 하나의 존재로서 나를 인식하게 되는 일은


고독과 외로움, 분쟁과 다툼, 비교와 질투의


익숙한 부정적 감정을 키워내는 시작과도 같다.


그 안에서 우리의 생이 다할 때까지


우리는 고립된 나의 섬안에서 탈출할 생각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삶에서도 문득 마주하는 순간이 있으니


자연을 마주하는 순간이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고요 속에서 홀로 충만함을 느끼는 때이다.


때론 깊은 밤. 나의 온 영육 간의 평안 속에 잠겨서


깊은 휴식의 느낌을 가지는 찰나의 안정감 또한 이와 비슷하다.




진정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그 믿음의 뿌리가 있어


이와 같은 경험의 근원이 신이 주신 은혜로 인식한다.


혹여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영혼에 어떤 느낌으로 무엇이 다가왔는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때론 막연하게나마 지금을 감사하는 순간이 있다.




우리의 존재는 결코 우연의 산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비단 우리뿐만은 아니리라.


이 우주와 별과 생명이 그저 우연의 산물로 원소들이 결합하여


지금과 같은 알 수 없는 원리에 의해 질서 정연하게 존재할 수 있을까?




우주 비행사들이 대기권을 넘어서 지구의 바깥으로 나아가면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결코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구나...'


광대한 지구의 아름다운 그 모습을 마주하고


우주의 영역에서 별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우리가 지구상에서 마주한 어떠한 자연경관보다도


찬란하고 위대해 보이지 않았을까?


바로 그 압도적 형상에 직면한 순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부질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빛과 어둠이 항시 공존하는 이유.


서로의 존재 가치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인간도 신의 존재를 인식하면 할수록


더욱 온전한 인간의 영역에 머무를 수 있음은 아닐까?




한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존경심과 위대함.


그의 성취와 목표가 엄청나기 때문은 아니다.


사유의 깊이, 영혼의 탁도, 주위를 데워주는 온기가


실로 그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실로 그러한 사람은 낮은 곳에 임한다.


오만의 왕좌에 앉기보다 겸손의 자리에 고요히 머무른다.




이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영혼을 인식하고,


실은 그 영성이 신을 닮은 그 무엇에 맞닿아 있음을


깊이 깨달았음에 발현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그 깨달음의 순간에는 무한한 경탄과 경외가 일어난다.


나의 마음을 압도하는 형언할 수 없는 그 느낌.


그것에 우리는 나 자신의 볼품없음을 알게 된다.




낮은 곳에 임할 줄 아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때가 되어야 나의 에고를 던져버리고


경건과 겸손에 임할 수 있다.


그제야 자연의 모든 것들이 신의 숨결임을 인지한다.




마음이 어둡고 힘든 순간은 삶에서 언제나 찾아오지만,


이 한 번의 깊은 경험이 삶을 지켜준다.


낮아짐과 받아들임은 그 안에서 오롯하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순간에서 점점 더 그 빈도를 자주 느낄 수 있다.


삶의 선순환과 감사는 그 시점에서 온전함으로 나아가게 된다.




나의 영혼이 신의 마음과 만나는 그 순간.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인식은


실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든다.


바로 그 순간이 영성과 신성이 손을 마주 잡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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