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삶은 말의 무게에 달려있다.

말의 무게와 신뢰감을 얻기 위한 3가지 생각.

by 스토미

일상에서 말을 하지 않고 살기는 쉽지 않다.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교류하는 그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 삶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은 마치 배설과 같다.


일정 정도 고독과 고립의 시간에 머무를 때,


혼잣말이라도 가끔은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생각과 감정이 들끓는 심정으로 온 마음을 북적이다가,


한꺼번에 많은 말을 쏟아내며 느끼는 그 시원함은


아마 누구나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말은 생각과 감정 그리고 욕망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담아낸다.


마음의 들끓음이 있으면 이 세 가지 요소가 마구 충돌하고


결국 그 고민과 스트레스가 점점 마음을 잠식한다.


이때 말이라도 해서 배설을 해야 겨우 한숨 돌리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유독 신뢰감과 깊은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반면, 어떤 이의 말은 경박하고 가볍다.


말 자체가 듣기 거북할만큼 거칠거나,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많아서


듣는 것 자체가 곤욕인


그런 상황도 굉장히 자주 접하게 된다.




말속에 깊이가 느껴지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이는 지식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다.


말을 그냥 마구 뱉는 느낌인지


아니면 정갈하게 그릇에 담아 대접하는 느낌인지


그것만으로도 화자에 대한 신뢰감 그 자체가 달라진다.




신뢰감이 담긴 깊이 있는 말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음 3가지 관점에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말 수 그 자체를 줄일 필요가 있다.




말에 담긴 내용은 소진되는 자원이다.


특히나 생각에 근거한 말은 더욱 그러하다.


감정과 욕망은 계속 말하는 중에도 변화무쌍하게 일어나지만,


생각은 숙성되어 나오는 것이기에 한계가 있다.




말이 많을수록 생각의 비율은 낮아지고 감정과 욕망의 비율이 커진다.


그리고 계속 같은 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결국 말을 하기 위한 욕망 해소로써의 말이 될 뿐이다.




말 수가 적을수록


그 사이에 생각의 깊이와


시간의 기다림을 얹어서


말 자체의 무게감도 깊어진다.




두 번째. 말은 배설의 속성이 있는 만큼,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아무 때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마구 내뱉으면


반드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순간 느끼는 감정과 말하는 것의 욕구를 담아


분별없이 내뱉고 나면, 반드시 후회가 뒤따른다.




그러니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의 실수를 변호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들을 말하게 되기 십상이며


이는 결국 더 깊은 수렁으로 나를 내몰게 된다.




세 번째는 말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배분할지 늘 깨어있어야 한다.




생각을 잘 담아내고 이를 듣는 이의 입장도 고려해서


감정적인 공감의 비율을 잘 섞어야 한다.


최대한 욕망의 비율을 낮추는 것이 좋다.


이는 속임수와 거짓이 된다.




생각의 깊이에 배려의 넓이를 갖추고 욕망을 덜어내야


그 말의 진실성과 순수성이 스며 나온다.


따스한 온기와 위로가 담기고, 신뢰를 얹은 깊은 무게감이


말로 나온 문장에 향기를 더한다.




말은 어쩌면 장미를 닮아있다.


아름다운 형태를 우아하게 드러내고,


그 와중에 깊은 향을 그윽하게 담아낼 수 있지만


그 가시에 찔리면 모든 것이 부정적 모습으로 변한다.


장미를 건넬 때, 그 가시를 훑어서 떨어내지 않으면


차라리 주지 않음만 못하게 된다.




그 가시를 다듬고 세심하게 바라보는 마음.


때와 장소를 가리고,


말 속에 욕망을 최대한 덜어내어 투명한 빛을 감돌게 하고,


함께하는 시간동안 나의 말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는 일.


그 자체에 인생의 현명함이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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