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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natured Sep 03. 2023

[Review] 멸종의 얼굴, 스고파라갈 [연극]





Prologue.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살기에도 숨가쁜 세상이다. 매일 수행해야 할 업무가 있고, 어떤 날에는 내키지 않아도 지켜야하는 인간 관계 탓에,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운동 탓에 나와 주변을 성찰’하는 시간은 부족해져만 간다. 너무 많은 생각은 이따금 해로울 수 있다는 것에 동감한다. 그러나 아무런 성찰 없이, 처음에는 선택했을지 모르나 이제는 ‘주어지게’ 된 일과를 수동적으로 살아가다보면 보이지 않아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을 놓치기 쉬워지고 만다. 일상과 맞닿아 있지만 멀다고 치부해버리는 주제들, 어쩌면 일상을 더 고달프게 하는 것들, 이를테면 자본주의라든지, 기후변화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스고파라갈은 그러한 자본주의와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가 심화되어 더이상 버티지 못해 뒤집혀버린 세상이다. 그곳에 남은 생존자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


 


 


언가 비틀리고 뒤집힌 장소, 스고파라갈. 이곳에 일곱 인간이 도착한다. 자신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거듭 묻지만, 그 누구도 기원과 방향을 파악하지 못한다.



혼란스러워하는 인간들 앞에 한 명의 땅거북이 등장한다. 그는 "바다로 가야 한다"는 말만 거듭할 뿐 계속 스고파라갈 둘레만 빙빙 돌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땅거북을 지켜보던 인간들은 얼핏얼핏 어슴푸레 건너건너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윈다 스찰 선생과 크스머로닐 양반이 반했던 장소이자, 냐파스에 해적들, 드랜글링 해군들, 아니포리캘 광산업자들까지 너도나도 찾던 곳, 스고파라갈.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땅거북은 왜 자꾸 바다로 가야 한다는 걸까? Quo Vadis, 땅거북!



"땅거북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어!"

"거꾸로?"

"반대 방향으로 말이야"




자본주의와 땅거북


땅거북은 이 극을 끌어가는 주인공이지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던 아름다운 땅, 갈라파고스가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뒤집힌 세계, 스고파라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아주 오래된 땅거북 한 마리와 푸르지 않은 바다만이 남아있다. 생물 다양성과 진화 방식에 대해 인간을 눈뜨게 하였음에도, 인간들은 여러 대에 걸쳐 이 땅의 주인이었던 많은 생명을 사라지게 했다. 그 중의 하나가 땅거북이다. 

 


에콰도르가 갈라파고스의 주권을 주장하고 이주민들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땅거북의 개체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극에서 말하듯, 적재하기 쉬운 등딱지를 지녔고 불을 피울 수 있는 기름을 지녔으며 생각보다 많은 양의 고기를 얻을 수 있었던 땅거북은 아주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땅거북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이를 대체할 식량으로 인간들은 염소를 데려왔다. 그러나 염소는 땅거북의 주된 먹이를 먹어치우며 그에 박차를 가했다. 마치 스페인의 말안장, ‘갈라파고’처럼 등딱지가 높은 땅거북이 많다는 데서 그 이름이 비롯한 섬이라는 사실은 ‘땅거북이 사라진 땅거북 섬’이라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범할 뿐이었다. 



길을 잃은 땅거북은 ‘바다, 바다로 가야 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인간보다 무게도 많이 나가고, 수명도 훨씬 길었으며 오랜 시간 땅의 주인이었음에도 워낙 빠르게 진행된 ‘인간화’ 탓에 그 삶의 터전과 방식을 모두 잃어버린 땅거북.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존재로서, 저항할 힘은 차마 없었던 그가 향하는 곳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를 흙색의 바다였다. 





땅거북은 사실 땅거북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쫓겨나야 했던 수많은 존재 - 아메리카의 원주민, 얼음을 잃은 북극곰, 높은 수온으로 인한 물고기의 떼죽음 - 등을 함께 연상시킨다. 그 에콰도르의 이주민들은 여전히 우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삶터를 잃는 갈라파고스 땅거북은 심지어 더 빨리 늘어가고 있다. 




멸종의 얼굴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Quo Vadis라는 물음 앞에 서게 된다. 배우들은 예수가 되어 인간의 죄악을 용서받으려고도 하고, 땅거북이 되어 길을 잃기도 하고, 욕심많은 인간이 되어 눈앞에 무한한 경쟁의 굴레를 불러오기도 한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들리는 총소리는 그 전환을 위한 시그널이다. 



자주 바뀌는 역할과 어딘가 반복적인 듯한 장면. 알고보니, 그러고보니, 오늘이었다가 어제였다가 알 수 없는 대사들은 말장난인 듯, 진지한 대화인 듯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어떠한 것도 명확하지 않은 뒤집혀 버린 세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그러면서도 이 아노미의 끝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관객에게 계속해서 묻는다. 멸종의 얼굴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외로운 땅거북의 이야기를 듣고, 어리석은 인간이 그 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보고 어떻게 행동하겠느냐고 묻는다.


쉽지 않음을 알지만, 함께 살아가는 한세상이기에 더불어 살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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