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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natured Dec 29. 2023

[Review]2018년의 여름을 기억하세요? [도서]





2018년의 여름을 기억하세요?


2018년 무렵, 엄청났던 더위를 아직도 기억한다. 방학 동안 성수동에서 단기 인턴을 할 때였는데, 당시는 카페나 베이커리가 지금처럼 거리에 즐비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출근할 때의 기온은 항상 27도 안팎이었고, 심할 때는 오전 9시에 영상 30도를 찍고야 마는 어마어마한 날씨였다. 아스팔트에 닫는 걸음 걸음이 그늘에서도 너무 뜨거워 땀흘리면서도 늘 빠른 걸음으로 실내를 향해 뛰어가다시피 출근을 했다.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태양이 남중고도에 올라 그림자는 짧아지고 정수리에 내리꽂는 햇빛이 가장 뜨거워지는 시간, 카페보다 자동차 정비소가 많았던 사무실 주변은 그야말로 매일을 더위 때문에 절절 끓었다. 아스팔트와 철재, 타이어들이 뿜어내는 열은 땀으로 옷을 적시고 정신마저 아득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기다리는 점심시간이 대화 없이 유난히 조용했던 것은 그 더위 때문이었다.


 

그만큼의 더위를 태어나서 겪어본적이 없었기에 다들 입모아 말하던 기후 위기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당장 내년의 여름은 어떻게 버텨나가지 하고 무척 걱정을 했더랬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다음 해의 여름은 여느 해와 같이 버틸만한 더위를 겪으며 지나갔다. 이상 기온이라는 것도 잠깐 참으면 지나갈 수 있구나, 한 해쯤은 기온이 예년과 다를 수 있지, 과거에도 이런 적은 있었다며 기후 이슈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쉬이 내려놓았다. 그 뜨거웠던 더위에 대한 공포를 모두 잊은 듯한 세상에서 나 혼자 두려움 속에 있고 싶지 않았고 기후는 전문가들이 해결할 일이니 괜한 기우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집중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낸다. 기후위기가 한국의 언론에서 유난히 잘 다뤄지지 않는 이유, 사람들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를 데이터에 근거하여 신랄한 비판으로 대중을 다그치기도,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주기도 한다.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그 하나만 잊지 않기를 다분히 일상적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충격적인 사례들로 계속해서 일깨워준다. 책을 읽으면서 겪은 주변인들의 반응이 첫번째 챕터의 내용과 너무도 흡사해, 저자의 치밀한 현실 고증과 논리에 설득되어 생각보다 더 많은 반성 속에서 인사이트를 얻으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



인류세 현장을 찾아 전 지구를 누빈 환경 피디가 사람들을 만나 묻는다.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환경 다큐멘터리 PD 최평순이 만난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전 지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뜻하는 새로운 과학 용어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신종 전염병이 발생하고 있다. 인간 문명과 자본주의는 마치 소행성 충돌과 같은 거대한 힘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 등 환경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불타는 우림, 쓰레기가 떠다니는 태평양, 스모그로 가득한 인도의 도시 등 전 세계의 인류세 현장을 목격한 최평순 피디는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지구의 위기를 외면할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지구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과학자, 환경운동가, 사회학자, 영화감독, 심리학자, 예술가, 웹툰작가, 언론인, 해외 석학들까지… 최평순 피디는 그들에게 묻는다. 인간과 지구에게 희망은 있을까?




기후 위기를 외면할 이유


“위기가 위기로 안 느껴지게 범주화되기 쉬운 사회라는 건 인정해야 해."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확증편향’이란 것이 등장한다. 쉽게 말하면 수많은 뉴스 중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크게 들리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등 SNS에서 자신의 가치와 맞는 뉴스만 소비한다. 알고리즘까지 가세해 좋아하는 것만 들리게 만들어버린다. 


아니라고 믿는 사람은 계속 아니라고 믿게 할 정보만 취사 선택하게 되는 심리적인 덫. 위기를 위기라 인지하지 않고 북극이나 남극의 일, 혹은 내가 죽을 때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먼 미래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 다수다. 

pp.33-35






이 문장에서 나는 너무나 허탈해졌다. 내가 읽는 책의 제목을 보고 주변사람들도 정확히 비슷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제목이 너무 무서운 것 같은데, 기후위기보다는 하루하루가 더 힘들지 않냐는 것. 그 말에 물론 공감한다. 직장에서 분투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된지 모르는 바 아니기 떄문이다. 기후를 걱정한다는 건, 마음에 여유를 만들어 일부러 나의 이타심을 발휘해야 하는 일로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히터와 에어컨을 켠다든지, 옷을 날씨에 맞춰 입으면 될 일. 그렇게 큰 문제는 어차피 개인이 해결할 수 없으니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핑계로 쉽게 무심해지고 만다. 그 무심함 속에서 기후는 점점 더 우리에게 더 큰 심각성으로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채 말이다. 


 


기후 문해력과 저널리즘 


책을 읽어나갈수록 드는 생각은,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타파할 수 있는가였다. 전문가적 관점에서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내용을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후위기를 언어화해야 한다는 것, 언론의 관점에서는 그에 관한 보도가 깊이 있고 꾸준히 지속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며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너지를 인구 수보다 훨씬 많이 소모하고 있는 나라임에도 한국에서 기후에 관한 이해가 절대적,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짚으면서 우리가 해나가야 하는 노력에 대해 조언하는 것도 저자는 잊지 않는다. 


 

후세와 다른 생물 종에 대한 이타의 영역이 아닌,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응당 지구에 닥친 위기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감 있게 돌아보며 반성해야 한다는 것. 아프고 무섭지만, 불안과 우울로 이 위험을 외면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것을 깊게 되뇌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 대신 희망을 떠올리는 이유는, 그래도 한발이라도 나아갔기 때문이다.’

- p.239



희망적인 부분은, 느리지만 앞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작은 노력들에서 찾을 수 있다.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오염, 종 다양성의 위기, 이상기후로 인한 전세계적 재난을 비롯해 수많은 지구의 위기에 대해 담론을 형성하고 문제를 제기해 조금이나마 해결책을 찾아가는 신념과 꾸준함 덕에 외면하지 않을 용기를 이름 모를 이들에게서 빌려본다. 감히 인류세인 답게 감수성과 실천적 연대에 기반하여 지구를 생각하는 일상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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