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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착한 대화 콤플렉스 [도서]

말로써 어우르는 법

by yeon n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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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집중해야 하거나 몹시 지쳐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야기하는 걸 꽤 좋아하는 나는 착한 대화라는 말 뒤에 붙는 콤플렉스라는 말이 조금 거슬렸다. 콤플렉스라고 하면 정확한 풀이는 아니지만 앞의 단어가 약점처럼 느껴지는 심리 때문이었나보다. 모든 대화가 착하게만 풀려가야 한다면 피로함을 너무 자처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물음에 물음을 걸어보다 나 또한 상처받고 싶지 않아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빙빙 돌아 피해왔음을 깨달았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쓰임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적재적소에 맥락에 맞게 적용하는 것은 좋은 언어 문화에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언어의 변화가 워낙 빠르고 많은 요즘, 온라인에서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언어의 쓰임이 누군들 익숙할까. 한달 안에 떴다 지는 밈(meme)은 또 어떻고. 그 밈이 단순 유머가 아닌 차별적 의미까지 내포함을 알아달라기에는 너무 많은 걸 바라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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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우리가 직면한 언어적 딜레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현대사회의 대화 방식을 돌아보게 만든다. 유승민 작가는 일상 속 대화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와 세대 간의 충돌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우리 사회가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흥미롭게 풀어낸다. 가령, '예쁘다'는 표현은 외모 평가로, '라떼'는 꼰대 발언으로, '유모차'와 '유아차'는 특정 사회적 이념과 연결되는 발언으로, 말 한마디에 민감한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는 현실을 꼬집으며 갈등을 넘어 단절로 이어지는 현상을 분석하고, 언어를 새롭게 성찰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저자는 특정 시대와 맥락에서 탄생한 "단어들을 무작정 미워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언어 사용에 대한 여유와 관용을 권장한다. 특히, 스스로 어떤 차별적 언어도 사용한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되묻는다.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언제든 언어적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언어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차별적 언어를 개선하는 작업이 결국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발걸음임을 상기시키며, 우리와 다른 기준과 상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다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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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성의 오류


대학에서 들었던 수업 중에 ‘정상성’이라는 말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전공 관련 수업이었던 것 같다. 결론은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도 차별할 권리도, 차별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 그때부터 어렴풋이 정상이라는 말을 머리에서 지우려 노력하고 상대의 상황을 더 섬세히 헤아려 말하는 습관을 들였던 것 같다. 그즈음 페미, 한남, 혐오, 틀딱 등의 단어가 물밀듯이 온오프라인에서 화두가 되었다.



무엇이 차별인지도 모르겠던 말들로 상처받는 사람이 많아져, 낯선 사람과 대화하려면 마음에 단단한 철갑을 두르는 것만 같았다. 깊어지지 않고 겉도는 대화가 무척 피로했다. 직장생활을 하면 때론 통제할 수 없을 인간관계가 두려워져 경계심을 높이고 익숙함 속에서 눈앞의 해야할 일에 더욱 집중했다. 돌이켜보면 정상성과 윤리성을 잘 구분짓지 못했던 것 같다.




말에는 죄가 없다


미워하는 말들이 많아져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이야기들은 조금 슬펐다. 의외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아줌마’라는 단어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줌마의 사전 뜻풀이.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
나이든 여자를 가볍게 또는 다정하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결혼한 여자를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



중년 여성을 부르는 말로 가장 쉽게는 각자의 엄마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엄마가 아줌마라 불리는 것은 절대 싫겠지만, 이 말 자체는 큰 죄가 없음에도 너무 쉽게들 무시, 책망의 언어로 아줌마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나. 도로 위에서 운전이 미숙한 사람을 두고, 헬스장이나 목욕탕에서 빨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등 생각나는 사례는 많다. 그러나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라는 작품은 발랄함과 억척스러움으로 아줌마를 과연 귀엽게 풀어낸다. 충분히 공감가는 어머니들의 억척스러운 일화들은 어린시절을 떠올리게도 감사함을 느끼게도 만든다. 아줌마를 안좋은 표현으로 쓸 이유는 없었는데, 하고 미안함마저 불러일으킨다.



나도모르게 피해왔던 언어에서 비롯된 갈등들을 죽 펼쳐 읽고있자니 많은 감정이 밀려들었다. 사연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시가 아님에도 푹 빠져들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는 비문학 책이라니, 챕터마다 꼭꼭 씹어가며 아껴읽었다. 누구보다 말의 맥락과 교감에 대해 깊게 공부해온 저자가 골라썼을 단어 하나하나가 깊숙이 다가왔다.


엄밀히 말해 모두 나와 다른 사람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비슷한 무리에 속해 결이 같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겠지만 같은 상황을 보고 하는 판단, 그를 표현하는 언어는 자세히 보면 모두 제각각이다. 하나의 가정에 속해 있으나 다른 세대로 살아온 부모, 그 이상의 세대는 또다른 차원으로 언어를 구사한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도 쓰는 언어가 나와 같다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름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언어의 변화에도 사회성이라는 성질이 존재해서 고르지 않게 변화하는 세대간, 집단간 의식의 차이로 많은 간극이 존재함을 느낀다. 그러나 쓰지 말아야 할 차별, 비하의 단어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대화한다고 해서 너무 예민하게 구는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한다. 날카롭지 않으려 둥글게 다듬은 말을 둥글게 받아주는 대화자들이 많았으면 한다. 변화와 인식의 속도가 다름을 알고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배경도 쉽지 않겠지만 한 김, 고려해주면 어떨까. 말에 대한 글은 결국 잘 어울려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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