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그때 그 감동을 몇십 년 뒤에 쓰려니 왜곡이 있으며, 별 볼 일 없는 내용을 나 이외에 누가 공감을 할까?
어떤 이는 자랑질로 이해할 테고
어떤 이는 값싼 감상이라 할 테고
어떤 이는 중언부언에 짜증을 낼 테고
어떤 이는 횡설수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할 것이다.
마~~ 생각나는 대로 그때의 센티한 감정을 끄집어낸다.
22일 의성에서 발화한 산불이 의성을 태우다가 안동, 청송. 영덕, 영양으로 번지면서 피해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뉴스는 예기치 않은 국가재난사태를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우리 팀도 영주 모임을 미루거나 다른 곳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웃 동네가 불에 타는데… 위험한 곳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天地 不仁이라, 慈悲가 없는 자연이 인간의 문명과 오만을 희롱하는 듯하다. 불은 거도 꺼지지 않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경북에서의 바람은 서풍이고, 27일 비가 예보되어 이를 믿고 영주 모임을 계획대로 했다. 안동 쪽 하늘엔 매캐한 연기가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만난 얼굴들은 서로가 반가웠고, 산불의 공포는 옅어졌다. 청국장 맛집에서 점심을 하고 첫 여행지 부석사로 향했다.
우리에게 부석사는 무량수전으로 유명했고, 무량수전은 현존하는 最古의 목조건물로 맨 앞에 있었다. 그 후에 봉정사 극락전이 오래된 건축물 1위에 등재되면서 2위로 밀렸지만 고건축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지존급이었다..
고건축 사찰 3 대장은 이 둘과 더불어 수덕사 대웅전이다. 그러나 수덕사 대웅전은 앞 전각을 없애고 마당을 개방해 팽팽한 긴장감이 없어지면서 망쳐버린 케이스로 그 후에는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90년대쯤, 최순우와 유홍준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고전건축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적이 있었다.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다
유홍준의 썰은 재미와 지식이 적당히 섞여 공전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그 책을 읽고, 그 책을 들고 그곳에 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고즈넉한 곳이 관광지처럼 사람을 모이곤 했다.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문화재청장이 되었다.
나의 부석사 첫 답사는 그런 책이 나오기 전에 있었다.
안영배의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을 읽고, 산사에 관심이 높아졌다. 흑백 사진 위주의 그 책은 고건축에 관심 있는 이들이나 알고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책이었다.
전 직장을 사직하고 새 직장에 출근하기 전의 일주일, 전 시간을 답사에 할애했다. 열차시각표라는 책으로 기차와 버스 정보로 일정을 짰다. 요즘은 숙소가 먼저였지만 혼자 가는 그때에는 잠자리에 대한 걱정은 1도 없었다. 봉정사에서 재워달라고 하니 빈방을 내 주기도 하던 시절, 곰팡이 냄새가 나는 구석방에서 혼자 담배를 맛있게 피우기도 했다.
대중교통과 도보로 무거운 배낭에 석유 버너와 코펠과 라면이면 든든했다. 남루한 여행자가 보낸 시간들이 허접해도 좋았었다. 그중에서의 부석사에서의 감흥과 감동은 최고였었다. 석단 바위에 어드메쯤에 앉아 망연히 바라봤던 늦가을 풍광을 어떤 수사로 표현할 수 있을까? 40여 년 전의 감동과 복잡다단한 감흥이 언제라도 소환된다. 기이한 경험이었다.
직지사를 거쳐 도산서원, 봉정사, 임청각 그리고 하회마을을 지나 영주에서 희방사를 들르고, 마지막에 부석사가 있었다.
감동과 환희를 대치한 최고의 공간 감각적 경험을 한 번 보자
그때 표현할 언어조차 빈한한 건축 초년생의 횡설수설은 상투어의 동어반복이었다.
주 공간인 무량수전을 숨 가쁘게 오르다가 안양루 앞마당에서 숨을 고른다고 뒤돌아 보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장려한 경관이 언어도단의 세계였다. 오, 세상에~~~ 이런 풍경이 있다니~~~ 지금껏 본 적 없는 경이의 세계였다.
늦가을과 기가 막히게 조우하며 보게 된 산의 경치는 원더풀~~ 비유리풀~~ 환타스틱~~~ 스플렌디드~~
환희심과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내 것 인양 자랑하고파 주위에 있는 프랑스인에게 나의 경탄을 표현했다. 그녀는 영어를 모르지만 웃음으로 나의 찬탄을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것을 보는 내가 행복했고, 그것을 보여주는 이곳이 고마웠다.
장엄한 화엄의 세계, 이 장면이 천상의 세계를 은유한다고 생각했다.
앉아서 중얼거리며 정신 나간 놈이 되어 이런저런 감상을 계속했다. 혼자서 비현실적인 풍경과 실재하는 돌과 건물과 공간들 사이에서 몽환의 유랑을 하고, 풍경의 아우리에 압도당하며….
그리고는 늦가을 소백산 찬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감동의 여운을 지닌 채 안양루를 뚫은 돌계단을 지나 무량수전 앞마당에 올랐다.
거기에도 대단한 풍경이 있었다. 눈 위로는 거침없는 산의 풍경이 넘실거리고, 눈 아래로는 무채색의 지붕들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두 개의 리드미컬한 흐름에서 벗어난 이곳은 관조하는 공간으로 보였다.
서로 다른 형상의 두 건물, 산 쪽으로는 막고, 남쪽으로는 열어서 특별한 외부공간을 만들었다.
조사당 쪽 언덕에서는 바람과 함께 낙엽이 뭉텅이로 흘러내렸고, 그 소리는 바람 소리와 더불어 앞마당의 적요를 수시로 깼다.
눈앞과 눈 멀리로 시선을 옮기며 즉물과 빗물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감흥을 고양시켰다.
육중하고 심플하게 반복되는 긴 석단,
둔중한 지붕을 사뿐히 앉게 한 경쾌한 작위
축을 따라 오르다가 안양루 앞마당에서 비껴서 방향을 틀어버린 파격과 여유
제 각각의 초석들에 못난 돌은 없어, 눈 밝은 장인에게 천년 당우를 지탱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축상에서 누하진입을 연속하는 기법과 주 전각을 가리는 건축적인 차폐
주심포의 검박한 구조미, 다포의 절제된 앙서와 최소의 화려함
안정감을 가진 엔티시스 기둥
치솟은 추녀, 처마선, 경쾌한 활주.
노란 벽체가 주는 따스함과 퇴색의 분위기, 세월과 함 껴한 가분수의 석등
마당에는 흙에 묻힌 삐뚤빼뚤한 경계석,
꽃살이 아닌 직교 문살에 어칸도 화려함을 억제하고
물성의 양괴를 그대로 쌓은 무심한 듯한 돌계단
곳곳에 무기교에 기반한 기교
군더더기를 버린 선승 같은 이미지를 보았다
광활한 하늘과 땅을 경계하는 중첩된 무채색의 선, 선, 선, 화려함을 뒤로하고 겨울로 가는 갈색의 농염들~~~ 넘실거리는 준령의 공간감, 미립자들과 부딪히는 서향 빛의 산란들
필설의 한계
감상은 흘러 그 시대 장인에의 경외에 이르고,
명멸하는 시간을 연민하고
복합감정의 시간이 많이 흘렀다.
기갈과 허기를 달래주는 사과의 아삭함과 입안에 넘치는 과즙도 기억에 쌓이고
이 같은 감상은 야나기 무네요시에서 일정 부분을 차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부석사는 감정과 감상과 감탄과 감동이 뒤죽박죽 인 채로 건축과 환경의 실체와 미적 감흥이 의식의 밑바닥에 도달되었고 오래가는 단단한 감동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 감동은 부석사가 호명되면 수시로 인출되었다.
그 뒤에 몇 번 이곳에 왔었지만 그런 감정은 그때처럼 일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당연하다. 그 같은 감동은 일회적이었다. 그것은 기가 막힌 시절 인연 덕분이었다.
기억 속의 잔상을 끄집어내면서 부석사를 보면 그 전의 기억이 왜곡된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기억을 담고자 새벽 예불에 참석한 적도 있었는데, 큰 절에 스님은 달랑 3명이었다. 3명의 예불소리는 법당 안에서 공명하지 못했고, 내 가슴에도 담기지 않았다.
그전에 안 보이던 기법, 기교, 차이점들을 보며 전과 다른 탐색이 있기도 하고, 실망시키지 않는 산사였다.
큰 절이 훼손과 덧칠로 우리를 실망하게 하는데 이곳은 아직까지 개발과 자본의 세례가 덜하다.
부석사에 오르기 전에 나는 그 화석화된 그 경험의 기억을 반추했다. 그것은 어쩌면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고, 더불어 그 잔영을 혼자만 즐기며 황홀경으로 대치하려는 왜곡된 자기애인지도 모르겠다.
더 늙어진 몸이 구릉지 돌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소백산에 흐르는 바람소리와 넘실거리는 풍경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고 느낄까?
그러나 모든 게 바뀌고, 나 또한 변해 버려 다시는 그런 감수성의 순간을 만나더래도 쉬이 경도되고, 경탄할 수 있을까? 모순되는 감동을 저으기 받아들이고 예비할까?
내 깃털 같은 미의식으로 세뇌된 내 마음의 부석사는 이제 이곳엔 없다. 그것은 오래된 흑백의 정지 영상이고, 눈앞의 부석사는 움직이는 천연색 영상으로 그 차이를 알아버렸다.
두 개의 부석사를 생각하면 센치멘탈 한 유희와 탐닉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곳도 언젠가는 폐허의 폐사지가 되어 기록에만 존재하는 부석사가 되리라는 덧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배호의 노래 첫 소절,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낙엽 같은 내가 시간 속에서 무화되는 생각을 하며 급경사의 돌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온다. 스테인리스 난간이 없는 그 계단이 좋다. 투박한 돌계단의 단순미, 최소한의 구성, 본질만으로 구성된, 그런 게 좋다~~~
일행들 중에서 다음 일정을 재촉하는 이도 있고, 더 보려는 자도 있다. 나는 꼴찌로 내려온다.
부석사는 늦가을과 겨울에 더 좋다. 혼자 가면 더 좋다. 어느새 늙어 버린 나를 위무한다. 낙엽을 나로 등치시키는 늦가을에 배흘림 기 등에 기대서서 조사당에서 막무가내로 흐르는 낙엽과 함께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끼고 싶다.
사족을 덧붙이면,
1. 봄부터 가을까지는 단의 존재감이 약하다. 그러나 큰 돌은 압도적인 크기로 그 크기여야 하는 비례감으로서의 당위가 있다. 석공은 이곳에 있던 육중한 바위를 쪼았을 테고 몇 명이었고 어떻게 운반했을까? 포클레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에 얼마나 인력을 들였을까? 어떻게 아귀를 맞추고, 얼마나 많은 장정들의 어깨가 작살났을까? 노동력의 희생과 성취, 그 많은 인원이 어디에서 먹고 자고 배설을 했을까? 민초들은 사라지고 그들의 성취였던 석축의 돌만이 남아있다.
2. 차가 다니는 도로가 생겨 못마땅하지만 그나마 눈에 덜 거슬리는 재료이다. 불편보다는 편리한 쪽으로, 사찰도 대웅전 코 앞까지 차가 가야 신도한테 볼멘소리를 안 듣는다.
3.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스님들이 돈 되는 불사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되어 역설적으로 다행이다. 경박하게 훼손시키는 불사가 불가능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들이 만드는 물신에 흠뻑 물든 그런 절에 가면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진다.
4. 건축과 환경, 문화를 대하는 수준이 높아졌으면 한다. 아파트 공화국에 그 책임이 크다. 우리는 물신공화국. 부자 되세요~~ 가 덕담이다. 플라스틱 공화국, 좋은 나라~~~
5. 외국인들은 대개 혼자 와서 조용히 음미하는데, 아름다움의 보편성을 즐기는 미소가 그윽하다. 우리도 떼거지로 몰려다니지 말고, 인증숏만 찍고 휙 둘러보고는 볼 게 없다고 하는 분위기가 적어졌으면 좋겠다. 좋은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소란스러움 대신에 조용한 미소를 보고 싶다.
25.3.29 새벽녘
클럽 ES리조트 제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