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부재를 극복하는 법
미국의 범죄 스릴러 소설가인 토마스 해리스가 1988년에 출간한 소설을 원작으로 1991년 개봉된 영화, 《양들의 침묵》이 있다. '한니발 렉터' 시리즈 총 4부작 중 하나이자 첫 영화이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여우 주연상을 비롯해 총 7개를 수상하면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대작이다.
주연은 너무도 유명한 배우인 조디 포스터(클라리스 스탈링 역)와 앤서니 홉킨스(한니발 렉터 역)이다. FBI 소속 요원과 정신과 의사 출신 범죄자 간의 팽팽 심리전과 표정연기는 영화를 보내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화 개봉 후 약 23년이 지난 시점인 2016년, 미국의 한 토크쇼에 출연한 조디 포스터는 재미있는 일화를 전했다. 당시 조디는 《양들의 침묵》의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후 처음 배우들과 대본 리딩 미팅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대본 리딩을 마친 후부터 '한니발 렉터'의 섬뜩한 캐릭터 때문에 당시 남자 배역이었던 앤서니 홉킨스를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영화 마지막 장면 촬영까지 그녀는 앤서니와 단 한 번도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 촬영까지 끝마치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랑 앤서니는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죠.
저는 정말 그를 피해 다녔어요."
조디 포스터 인터뷰 / 출처 : <그래엄 노튼 쇼>
촬영 마지막 날, 앤서니는 조디 포스터가 참치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잠시 동안의 대화 후, 그녀는 앤서니가 자기랑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가 반대편의 캐릭터 입장에서 상대방을 대하고 있었고, 두 최고의 배우들이 열과 성의를 다해 자신들의 배역에 몰입해 있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 저는 울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정말 당신이 무서웠어요.'라고 하면서요.
그때 앤서니가 말을 하더군요. '저도 당신이 무서웠어요.'라고요."
조디 포스터 인터뷰 / 출처 : <그래엄 노튼 쇼>
소통의 부재가 이렇게 무섭다.
출연자의 외모와 행동만을 보고 실력자인지 음치인지를 맞추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 예쁜 사람, 평범한 사람들이 섞여서 출연하기 때문에 패널들은 외모와 화면상의 자료만 가지고 출연자의 실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외모만으로 봤을 때는 거의 어깨 형님처럼 생긴 사람이 알고 보니 유튜버에서 가수 지망생을 가르치고 있는 보컬 트레이너이다. 또 외모는 출중한 가수처럼 생겼는데 사실은 은행원 음치이다. 반전의 매력과 출연자의 스토리가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와이프와 즐겨보곤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초대손님들과 패널들은 자신들만의 매의 눈을 발동한 끝에, 실력자를 가려내기는커녕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버리는 촌극이 벌이곤 한다.
상대방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관상가의 몫으로 남겨 놓자.
대신 우리는 궁금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진면목을 파악해 보자. 대화로도 파악이 어려운 상대를 외모만으로 어떻게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소통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옷이나 신발의 브랜드보다, 손목시계와 자동차의 가격보다 사람 그 자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하겠다. 마음을 열고 상대를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보다 강력하고 명확한 소통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마음을 열면 친구가 된다.'라고 하는가.
소통의 대가는 웅변가도, 정치가도, 심지어 대통령도 아니다.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코흘리개 꼬마 친구들이 가장 뛰어난 소통가이다.
꽃 한 송이를 가지고도 금방 대화를 트고 친구 옆에 딱 달라붙기 시작한다. 또 싸우다가도 금방 친해지고, 저녁에는 헤어지기 싫어 울고불고 난리다. '마음을 연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하다면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잠시만이라도 구경해 볼 것을 권한다.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이것저것 따지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그저 '닥치고' 먼저 다가가 보자. 상대방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다 보면 이미 버스는 떠난 뒤이다.
인간관계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