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by 따뜻한 말 한마디

나이가 들면서 변한 점 중 하나는, 자극에 쉽게 피로해진다는 것이다.
자극에는 물리적인 것도 있지만, 마음을 흔드는 심리적인 자극도 있다.


공황장애가 생기고 나서는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보는 일조차 고역이 되었다.
한 편의 영상 안에서 수백 번 교차하는 감정의 파도가 너무 벅차다.
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내가 왜 이걸 보고 있지? 왜 굳이 마음을 이런 데 쓰고 있지?’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감정이다.


갈수록 TV를 켜는 시간은 줄어든다.
전원만 눌러도 나를 덮치는 자극들이 버겁다.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번 주말엔 뭘 볼까’ 하며 리모컨을 들었지만,
이제는 넘쳐나는 선택지 속에서 오히려 지친다.
너무 많은 콘텐츠가 나를 향해 외치고, 그 소음이 피로를 만든다.


왜일까.
마흔을 앞두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지나쳐왔다.
대충 전개가 보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짐작이 간다.
특히 연애물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남녀의 감정이 부딪히고 엇갈리는 그 파도를,
이제는 내 안에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굳이 심리의 너울을 일으키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자극은 여전하지만
나는 그 자극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심심할 때면
이렇게 내 생각의 결을 글로 남긴다.
자극이 아닌, 생각의 리듬으로 하루를 채우며
조금씩 내 삶의 중심을 되찾고 있다.


외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내 안의 결로 방향을 잡아가는 삶.
그게 지금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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