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비애
하계휴가 막바지,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고 잠시 일을 했다.
휴가 전에 내가 컨펌한 일들이 협력업체에서 잘 진행되고 있는지,
월요일에 문제가 될 만한 건 없는지 미리 점검해 두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역시, 나쁜 예감은 좀처럼 비껴가지 않는다.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나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협력업체가 일을 벌였다.
화조차 나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가 없어서였을까.
지난주에 한 마디만 해줬어도 아무 문제없었을 일을, 이렇게나 크게 만들어버렸다.
엎질러진 물은 어차피 내가 닦아야 한다.
찝찝한 마음만 잔뜩 남긴 채.
물론 모든 사람이 알아서 척척 해주길 바라는 건 무리다.
하지만 약속된 건 지켜야 하지 않나.
그 간단한 걸 왜 하지 않는 걸까.
회사 생활은 참 묘하게 재밌다.
비극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도 3자의 시선으로 보면 흥미롭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모든 직장인들은 꽤 재밌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매일매일이 사건사고의 연속이니, 심심할 틈은 없다.
일을 한다는 건 정말 어렵다.
남의 돈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다.
내 인생, 그리고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90%는 회사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도망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가진 경력과 재능으로 다닐 수 있는 최선의 회사는 여기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내 인생은 충분히 재밌었지만, 이제는 결이 다른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고.
영화배우도 매번 비극만 연기하지는 않듯이,
나 역시 이제는 다른 장르의 드라마를 살아보고 싶다.
휴가의 끝자락에서 이런 일을 겪어 아쉽긴 하지만,
나만 겪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안다.
전국의 직장인들이여, 비극은 이제 그만.
우리 모두 언젠가는 다른 장르의 주인공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