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어를 못할까

by 따뜻한 말 한마디

어제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존 윅의 스핀오프 ‘발레리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영화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자동 발권기 앞에서 계속 티켓을 끊지 못하던 한 외국인이었다.

하긴, 키오스크 화면에는 언어 설정 메뉴조차 없었다.

게다가 요즘은 대부분 모바일 티켓이니,
한국 휴대전화가 없다면 티켓 구매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처음엔 멀리서 지켜보다가,
결국 내 오지랖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꽤 먼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한 가지 이상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외국인 근처엔 학생들이 제법 많았는데,
아무도 다가가 말을 걸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 수능 영어 난이도가 워낙 높아졌다고 해서
학생들의 실력이 많이 올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이 상황 앞에서는 그저 다들 조용할 뿐이었다.


나는 당황한 그녀에게 작은 도움을 건넸다.
짐작일 뿐이지만, 출장 차 한국에 온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며
한국에 대해 조금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6차 교육과정 속에서 보냈다.
그 시절엔 초등학교에 영어 교육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영어 학원에 보내주셨고,
덕분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영어와 친해질 수 있었다.


이후로 영어 공부는 나에게 ‘공부’라기보다,
영미 문화권에 내가 한 발 더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언어 자체도 잘 맞았고,
영어를 통해 만나는 작은 콘텐츠 하나하나가 너무 즐거웠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90~2000년대엔,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렘이 있었다.


취업 후에도 영어 공부는 이어졌다.
해외 출장이 잦았고, 업무에서도 영어를 쓸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퇴근 후엔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며 영어 표현을 자연스럽게 익히곤 했다.
크게 대단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렇게 이어오고 있다.


회사에 들어와 보니 의외의 장면을 많이 본다.
사교육을 한창 받으며 성장한 후배들조차,
정작 화상 회의에서 외국 거래선 앞에선 입을 열지 못한다.

토익스피킹은 기본이고, 나보다 점수가 높은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서류와 면접을 뚫고 들어온 인재들인데,
왜 실전에서는 말을 하지 못할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질문이 떠오른다.


“왜 영어를 배웠는데 말을 못 할까?”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방향이 어딘가 잘못된 건 아닐까.
독해와 문법 위주의 평가 방식이
말하기를 아예 ‘부가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영화관에서의 그 장면도 같은 의문과 연결된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영어를 배웠다면,
그 외국인을 도와줄 수 있는 간단한 말쯤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람들은 소극적인 민족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어 앞에서는 스스로를 자꾸 숨기게 된다.

유튜브엔 종종 ‘일본인은 왜 영어를 못할까’ 같은 영상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일본을 여러 번 다녀온 내 경험으로는
적어도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한국보다 영어를 더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이 많았다.


이건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걸까,
쑥스러워서 머뭇거리는 걸까.

이 질문은 아직,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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