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미움을 덮는다'는 말

결코 쉽게 해서는 안 되는 말

by 피오마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고들 한다. 누구인들 살아계실 때 잘하고 싶지 않을까? 누구나 머리로는 알지만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게 있는 법이다.


부모가 자식의 의식주를 해결해 줬다고 해서 할 도리를 다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게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말 한마디로 자식의 모든 아픔이 상쇄될 수 있을까. 먹고사는 게 바빴다는 건 일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식에 대해 애정을 줄 수 있는 시간이 있어도 자기 일이 먼저였다. 집이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서 돈을 버는 것 외에는 전혀 신경 쓸 수 없었을 정도의 집안 사정은 아니었단 말이다.


자식은 가정에서 채워지지 않는 사랑을 찾아 겉으로 나돌다 비행청소년의 길을 걷는다. 비행청소년의 가정환경을 보면 부모에 대한 사랑의 결핍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올바른 길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부모가 늦게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땐 정말 미안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마치 자신이 걸어온 삶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서일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자식에게 자존심이라도 상하는 걸까. 아빠는 엄마를, 엄마는 아빠를 서로 탓하기 바쁘다.


그렇게 부모는 자식과의 관계 회복 기회를 놓치고 만다. 자식은 늦게라도 부모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그마저 어그러지는 것을 보고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아프다. 상처가 너무 쓰리고 아파서 사는 게 힘든데 부모는 늘 그래왔듯 자기들 사는 데에만 몰두한다.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다 큰 성인이 무슨 부모 탓을 하냐고. 돌아가시면 남는 건 후회뿐이니 살아계실 때 잘하라고. '이별이 미움을 덮는다'라고 미화하는 말이 싫다. 부모와 잘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지낼 수 없는 자식의 마음은 오죽할까.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참 아프다. 다들 쉽게 하는 말이지만 결코 쉽게 해서는 안될 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