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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ehLee Nov 03. 2023

재즈와 자라섬, 그리고 모빅과 오태민 작가

가평에 가면 자라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섬은 섬이 아닙니다. 자라섬은 하천입니다. 하천과 섬의 차이는 큽니다. 섬은 땅입니다. 땅이라 함은 합법적으로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합법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천에서는 이런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일 년 내내 물에 잠기지 않는 마른땅인데도 농사를 짓거나 건물을 짓는 것은 불법입니다. 자라섬은 하천입니다. 

자라섬이 원래부터 하천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1943년 청평에 땜이 생기면서 물이 차 올랐습니다. 댐으로부터 15킬로미터나 떨어진 자라섬까지 물이 차 오르면서 이곳은 하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라섬은 좀 억울합니다. 물이 지나는 곳에 있다면 하천이라 불리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라섬은 거의 물에 잠기지 않습니다. '거의'라는 단어에 주목해 주세요. 자라섬은 빗방울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단 한 방울의 물도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 땅에 씨를 뿌리면 수확을 할 수 있고, 집을 지으면 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자라섬은 하천입니다. '거의' 잠기지 않는 것이지 항상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라섬은 가끔 물에 잠깁니다. 엄청난 폭우가 내려 소양강 댐을 방류하기 시작하면 자라섬이 잠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청평댐은 잠겨 있고 상류인 소양강댐으로부터 많은 양이 내려오면 북한강 수위가 점점 높아집니다. 그 수위가 자라섬 지표면 보다 높아지면 자라섬이 잠기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빠른 물살에 확 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차오르는 수위에 잠기는 것이라 물이 빠진 후에도 상처를 입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나무들도 그대로 서 있고, 잔디밭도 크게 훼손되지 않습니다. 동산에 심은 꽃은 다 망가졌지만 다시 씨를 뿌리면 될 일입니다. 

가평군이 예전부터 이 섬(섬이라 하겠습니다)을 활용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 이 섬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알아보기 위해 용역을 해보았습니다. 용역을 맡은 곳에서는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물에 잠긴다는 사실, 그것이 10년에 한 번이라 해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흙을 들이부어 8미터를 높이는 성토작업을 해야만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불가합니다. 자라섬은 섬이 아니기 때문에 흙을 붓는 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천을 임으로 변경하게 되면 물길이 바뀌어 엉뚱한 곳에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지요. 결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였습니다.

자라섬이 물 위로 올라온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가평군은 이곳에 재즈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흙을 붓지 않고도 건물을 짓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절묘한 선택이었습니다. 북한강이 흐르는 자라섬에서 이루어지는 재즈페스티벌은 꽤 멋있습니다. 

가평군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을 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재즈가 시작되기 전의 자라섬은 다른 하천변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래가 있고 자갈이 뒹굴고 잔목들이 무질서하게 난 그런 곳이었습니다. 키 큰 미루나무들이 전봇대처럼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죠. 가평군은 이곳을 축제장으로 만들기 위해 땅을 고르고 잔디를 심었습니다. 주차장과 편의 시설이 들어설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풀을 베고 꽃을 심었습니다. 하천이었던 자라섬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가평군에서 재즈축제를 기획하면서 처음부터 자라섬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재즈페스티벌을 해야 하겠는데 어디서 해야 할지 막막했던 가평군이었습니다. 그래서 담당 공무원은 재즈 기획자를 데리고 가평 이곳저곳을 끌고 다녔습니다. 기획자는 축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지만 담당자에게는 그것이 없었으니 어떤 장소가 적정한 지 몰랐던 거지요. 공설운동장, 축구장 등지를 데리고 다녔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간 곳이 자라섬이었습니다. 담당자는 설마 했었거든요. 이런 황무지에, 이렇게 휑한 곳에서 축제를 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획자는 오케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도 확신에 찬 오케이는 아니었습니다. 이곳저곳 가평 구석구석을 다녀보아도 장소가 될 만한 곳이 없다는 걸 알았던 겁니다. 자라섬 마저 퇴짜를 놓아버리면 재즈페스티벌은 물 건너갈 것이었으니 마지못해 오케이를 한 것이었죠. 

과정이야 어떠했든 자라섬은 그렇게 재즈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자라섬에서 재즈선율이 울리기 시작한 지 20년 되는 해입니다. 이 기간 동안 자라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제 자라섬은 재즈 만의 섬이 아닙니다. 다양한 행사들이 연중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라섬은 아직도 하천이지만 물 밖으로 솟아오른 것은 확실합니다. 

이제 자라섬에서 중요한 것은 재즈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재즈 때문에 자라섬이 떴지만 자라섬은 자라섬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재즈페스티벌이 문을 닫는다 해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계속 자라섬으로 향할 것입니다. 가평군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평이 가지고 있는 자라섬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를 말입니다. 가평군에서는 이 자라섬을 무한히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재즈로 포장된 '자라섬'이라는 브랜드는 그 어떤 광고를 써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평군의 의지와 안목일 터인데, 나는 가평군이 그럴만한 역량이 있다고 믿습니다.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모빅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모빅은 오태민 작가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오태민 작가를 때어놓고는 모빅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라섬 역시 재즈에 의해 재탄생하였습니다. 재즈 이전의 자라섬은 섬 이름조차 불분명한 하천에 불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나는 자라섬이 재즈 없이도 존재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같은 구조로 모빅은 이제 오태민 작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자라섬은 365일 열여 있는 땅입니다. 재즈는 그중에서 단 3일만 열립니다. 남은 기간은 수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땅이 커서 같은 기간에 여러 행사가 동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모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빅이라는 땅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땅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라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가평군의 몫이듯, 우리는 모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흔들 만큼 큰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가진 땅의 크기만큼 모빅을 활용하여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태민 작가의 활동 또한 자라섬 위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사의 하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소유한 땅의 면적이 커 울림이 더 멀리 퍼질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땅의 면적 안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해나가는 것, 그것이 자라섬의 가치를 높이는 것처럼 모빅을 아름답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모빅을 끼고 앉아 가격이 오르기만을 바라는 것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빅 관련 유튜브에 가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뢰혁명모빅카페'에 자주 오는 것도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물론 제가 쓴 이 글에도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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