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질문,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길

견미단 여정에서 발견한 질문과 배움

by 정자주

프롤로그: 견미단이란

‘견미단(見美團)’은 자유의 뿌리를 찾아 미국의 역사와 이승만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미국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배우고 체화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디에서 왔으며, 나는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이 여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1. 발자취 위에서 떠오른 질문들

견미단을 떠나기 전, 교회에서 진행된 ‘나라를 위한 주(week)’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여러 역사적 공간을 방문했다.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서는 어둠의 시대에 조선 땅을 향해 자신을 내어준 이들의 헌신을 마주했고, 용인 순교자기념관에서는 한국 교회의 역사가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음을 다시 확인했다.

서해수호관에서는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 속 스무 살 남짓한 장병들의 희생 앞에서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마지막으로 포천의 한 부대에서 전도 예배를 섬기며, 고된 환경 속에서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의 현실과 인력 부족으로 인한 부대 통폐합 소식을 듣는 순간 안타까움이 깊게 남았다.

이 시간들을 지나며 세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전해진 복음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지켜진 진리
군인들의 헌신으로 지켜진 안전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혼란과 어려움 속의 대한민국에서, 나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을 품은 채 견미단 여정을 시작했다.

양화진 선교사묘역 박물관 입구에 세겨진 문구


2. 모든 것의 근본을 다시 바라보다

1) 자유의 뿌리를 따라가며

견미단 여정은 하와이에서 시작해 뉴욕, 프린스턴, 필라델피아, 워싱턴 D.C.까지 이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단순히 ‘초대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아닌 그의 치열함과 신앙을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의 믿음과 확신이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과정은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독립·건국 역사와 현장을 직접 보면서, 이들이 말하는 ‘자유’가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정체성과 삶의 뿌리라는 것을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말씀과 기도 위에 국가의 이념과 제도가 놓였다는 사실은 오래 남는 울림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가 깊게 새겨졌다.


2) “기억하는 나라”가 가진 힘

뉴욕에서 마주한 9/11 메모리얼은 큰 충격이었다.
쌍둥이빌딩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남기고, 장식 없이 희생자의 이름만 새겨진 그곳에서 미국이 슬픔을 어떻게 다루는지 명확히 보였다.
미화하거나 감추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것’ 자체를 국가적 책무로 삼는 나라.

이후에도 곳곳에서 같은 방식을 보았다.

대학 캠퍼스에 새겨진 참전 학생들의 이름
링컨·제퍼슨 등 국부들의 메모리얼
주마다 존재하는 한국전쟁 기념물
도시 곳곳에 휘날리는 성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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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메모리얼 / 하와이 2차세계대전 메모리얼 / 진주만 애리조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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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높이 휘날리는 성조기 / 한국전쟁 기념공원

미국은 ‘기억’이라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태극기를 길에서 보기 어렵고, 건국과 전쟁을 기억하는 기념물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이다.
동상과 기념비를 그저 조형물 정도로만 여겼던 나 자신도 부끄러웠다.
기억의 필요성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서도 출애굽한 백성에게 말씀을 손과 미간에 새기고, 절기를 통해 은혜를 기억하게 했다.
기억은 과거를 보관하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를 결정하는 힘임을 미국의 메모리얼에서 확인했다.


3) 말씀이 세우는 학문의 기초

밸리포지 채플에 위치한 '책임장전'

나는 법을 전공했지만, 잠깐의 공부만으로 “법이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성급히 내리고 거리두기를 했던 적이 있다.
신앙과 학문을 분리해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 ‘법’을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밸리포지 채플에서 본 ‘책임장전’은 그 오해를 단숨에 풀어냈다.
자유와 책임의 원리가 적힌 문장들 아래에는 이렇게 두 문장이 분리되어 적혀 있었다.

근본적 믿음은 하나님께 있다.
헌법적 정부는 시민의 적극적 참여에 있다.

모든 자유와 책임의 기초가 하나님 말씀 위에 있고, 그 값이 시민의 행함을 통해 실현된다는 구조였다.
미국의 건국과 헌법이 성경적 가치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정신이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였다.

신앙과 학문을 분리했던 지난 시간은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법의 중요성’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3. 여정이 가르친 새로운 길

견미단에서 찾은 답은 단순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

미국의 건국, 선교사들의 파송, 순교자의 희생, 대한민국의 건국.
이 모든 흐름은 나와 무관한 ‘먼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끄신 여정의 한 부분이었다.

견미단의 장소들과 이야기는 결국 나에게로 이어졌고, 이제 나는 그 여정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고 싶다.

한 조원이 견미단에 오게된 이유에 대해 나눴던 말이 기억난다.
“와 보라.”
그 부르심으로 서게 된 곳에서, 이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 보라. 해 보라.

하나님이 보내시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실 삶을 기대하며 새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