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피로, 9시간의 비행 끝에 만난 이야기
인천공항에서 단원들과의 어색한 첫 만남을 시작으로 9시간의 비행 끝에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해외에 왔다는 설렘이 가득했지만, 예상과 달리 공항 풍경은 특별히 '하와이!'라는 이국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어를 하는 심사관 덕분에 걱정했던 입국 심사가 수월하게 풀렸고, 짐을 싣고 버스에 오르자 비로소 견미단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하와이에서의 처음 방문한 곳은 한인기독교회였다. 1918년 이승만 대통령이 감리교로부터 독립하여 세운 어느 교단, 교파에도 속하지 않은 자치 교회이다.
이곳을 둘러보며 이승만이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통해 교육하며 독립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애썼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남녀노소 차별 없이 여학생들의 기숙학교 문제까지 신경 쓰며 올바른 평등을 추구했던 그의 모습에서, 국민들을 섬겨야 할 동지로 대하는 든든한 리더의 면모를 보았다.
특히 교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광화문을 본 따 설계되었는데, 설계자 '김찬재'님은 광화문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사진만으로 건축을 해낸 이승만의 한인기숙학교 출신 한국 첫 엔지니어였다고 한다.
나라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던 시절, 이승만은 하와이 동포들에게 정신적인 고향이자 든든한 울타리였을 것이다. 이승만과 하와이 한인들의 이 끈끈함이 독립의 씨앗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이렇게 귀한 역사를 지닌 교회의 이사회가 이승만의 설립 역사를 부끄러워한다는 현실과 방치되어 관리되지 않는 자료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한 사람의 신념과 헌신으로 세워진 역사가 왜곡되고 외면당하는 현실 앞에서,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교회 옆에 홀로 서 있는 버드나무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흔들리는 이민자들의 마음을 닮아 심었다는 이 나무처럼, 그 시절 한인들이 얼마나 고국을 그리워하며 독립을 염원하고 기도했을지 잠시나마 헤아려보았다.
다음으로 오하우의 독립운동가 묘역을 찾았다.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식 묘지를 실제로 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곳에 900여 명의 한인 이민자가 묻혀있고 그중 20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익숙한 한국 이름과 한자로 새겨진 묘비를 마주하자, 낯선 땅에 이민 와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그들의 삶이 실감 났다.
민찬호 목사님처럼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힘쓴 분들, 그리고 이승만의 수양딸이었으나 왜곡된 역사의 희생자가 된 김노디와 같은 인물들의 존재를 새로 알게 되었다. 역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았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작은 돈이라도 나라를 위해 쓰겠다고 내놓은 그 시절 한인들의 뭉클한 마음에 깊이 감동했다.
그들이 흘린 헌신 앞에서 '나는 과연 나라를 위해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2023년 이곳에 세워진 헌정비는 이들의 희생을 비로소 기억하려는 현재의 노력임을 깨닫게 했다.
미국에 첫 발을 내딘 설렘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실제로 마주한 놀라움, 그리고 9시간 비행과 시차의 피곤함이 뒤섞인 첫날이었다.
호텔에 도착해 개인 정비를 마치고 세미나실에 모여 견미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꿈과 비전을 담은 자기소개를 들으며, 우리나라에 멋진 청년들이 참 많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일정이 더욱 기대되었다.
그리고는 귀여운 룸메이트와 함께 방에 들어가 눕자마자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