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1)
그날은 마을 사람들이 정식으로 모이는 날이 아닌 주말이었다. 아직 담도 둘러놓지 않은 건국 초기라서 어느 집에 누군가 모여있다 싶으면 정원에서 일하다가도 쭈르르 달려가 남녀노소가 같이 끼어서 수다를 떨고는 했다
2호 집에서 5,6명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이 대표가 솜씨를 발휘해서 내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를 받은 이 대표님이 갑자기 일어나서 1호 집에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한마디 던지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우리 모두 커피잔을 내려놓고 1호 집으로 달려갔다. 주인 내외는 없고 아이들 외할머니가 혼자 집을 보고 있다가 수도가 터져서 이 층이 물바다가 되었다고 당황해서 설명했다. 처음엔 혼자 수습을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돼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이층으로 올라가 외할머니가 잔뜩 벌려놓은 걸레들을 제각기 집어 들고 대야에 걸레를 짜며 힘을 모았다. 물은 문턱이 없는 옆방으로 마루로 잔뜩 퍼져 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서로가 하는 모습을 보며 눈치껏 자기구역을 맡아 닦아내었고 남자들은 터진 수도 쪽을 맡아 고치거나 물에 젖은 가구들을 마당에 내다 놓았다.
박쌤과 혜정쌤 부부와 선영, 준하, 준서 세 아이들은 모두 1박으로 군산 친가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지만 일은 순식간에 끝났고 별일이 아니라서 알리지도 않았다.
이튿날 돌아온 부부에게서도 크게 고맙다는 말을 듣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모르긴 해도 마주치면 씩 웃고 말았을 것이다. 그 미소속에 숨겨진 고마움의 무게는 상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서로에게 상당히 쿨하고 세련된 이웃이다.
우리는 선한 이웃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선한 이웃은 성경의 너무도 유명한 예화가 일반에게도 알려져 관용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아주 좁은 땅이다. 주변은 역사적으로 항상 강한 적국으로 둘러싸는 있던 나라다. 서쪽에는 지중해로 막혀있는데 북쪽에는 레바논, 북동쪽에는 시리아, 동쪽에는 바벨론을 비롯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가의 국가들이 대를 이어 옹기종기 모여있다,
국내 중앙 동쪽에는 요단강을 끼고 암몬, 모압, 에돔, 요르단이 길게 내려가고 있다. 지명은 구약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혼용해서 사용했다.
남쪽은 사막과 홍해가 있고 그 건너에는 이집트가 호시탐탐 흘겨보고 있는 신이 선택하신 땅에서 살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처럼 강국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말이다. 잠깐 손가락을 꼽아도 국경을 맞대고 사는 적국이 10여개국 가까이 되니 우리나라 보담 심하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배꼽에 팔레스타인을 끼고 살며 매일 돌 팔매질이며 총질을 일삼고 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고 있는 옛 불레셋 이다.
이들과의 분쟁은 영화 삼손과 델리라로 잘 알려져 있다. 삼손은 이스라엘 장사이며 국가 원수가 따로 없던 시대의 리더였고 델리라는 블레셋 여인으로 미인계로 삼손을 죽음으로 몰고 간 블레셋 스파이다.
다윗이 소년시절 조막돌 몇 개로 쓰러트렸다는 거인도 불레셋 장군이다.
지금도 돌팔매질 불 팔매질 심하면 총질까지 해서 편한 날이 없는 두 나라다.
사마리아는 원래는 이스라엘 민족과 동족이었지만 사마리아는 외세의 침략이 잦아지면서 이국인들과 혼인을 자주하여 혼혈인이 많이 태어나게 되었다.
우리나라처럼 단일 민족임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인은 이 혼혈인들을 잡종이라고 무조건 싫어하고 얕잡아보는 DNA를 품고 태어난다.
어느 날 사마리아 땅에 이스라엘 남자 한 명이 강도를 만나서 다 털리고 찔리어 쓰러져 있었다. 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이스라엘의 여러 계급의 사람들은 외면하고 돌보아 주지를 않고 지나가고 만다.
당시 지배 계급이던 제사장은 예배를 주재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환자를 보고도 바쁘게 달아났다. 서너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모른 체하고 급히 지나갔다.
이 때 사마리아인 한 명이 노새를 타고 지나가다가 강도 만난 남자를 보았다.
거의 죽어가는 사나이에게 들러붙어 우선 심폐소생술이라도 했을 것이고 사나이를 노새에 싣고는 여각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의원을 부르고 상처를 치료받게 하였다. 다 나을 때까지 돌 보아 주라고 여각 주인장에게 치료비며 숙박비를 지불하였다. 환자에게는 집으로 갈 돈까지 챙겨 주고 떠났다. 이 사마리아인의 돌봄은 자상하고 완벽했다.
이 일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제로 내놓은 예화이다.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급히 떠난 제사장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이웃인가? 도둑을 맞아 죽어가는 이스라엘 인을 치료해준 사마리아인이 선한 이웃인가?
예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주관하기 위해 급하게 떠난 제사장을 신앙심이 굳고 책임감 있는 제사장이라고 칭찬을 하지 않았다.
천하게 여겼던 사마리아인이 선한 이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를 예화로 들었음이 명백하다. 약자에 대한 한없는 긍휼, 사랑의 주제를 보여주신 예화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신이며 절재적인 존재임을 늘 강조하셨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자녀임을 말씀하셨다. 외아들을 잃고 우는 과부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주었다.
신약의 4복음서 중 세 개의 복음서는 대부분 불치병 환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치료 이야기 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내세가 있다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현세를 살고 있는 인간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치료의 행적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대면 예배가 기독교인들에겐 절대적 가치임은 분명하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말씀이 신약의 중점 교리이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전염병은 사람들이 모인 곳을 선호하며 한 번에 몇 십 명 씩 전파 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1) 한 쪽은 정부에 협조하지 않고 종교를 들이밀며 정부에 반항하고
2) 한 쪽은 정부에 협조하여 시책에 동조하며 전염병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는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이런 예화를 왜 말씀하셨을까?
묵상하며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부모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해보았다.
내 아들이 목사인데 강도당한 사람들을 버리고 갔다면 내 아들의 책임감을 칭찬했을까.
강도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내 아들이 다 죽어가고 있는데 못 본체하고 지나간 사람이 바로 우리 교회 목사였다면?
세상을 80년간 살아보니 살아가면서 때에 따라서 중요하게 여긴 순위가 항상 바뀌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 아들을 키웠지만 항상 맏이만 1순위일 수는 없었다.
항상 막내의 어리광이 1순위일 수도 없었다. 아무리 맏아들이 소중하고 막내가 귀엽더라도 둘째 아들이 고3이 되었다면 집안의 모든 질서는 고3 아들을 위주로 정리를 해야만 한다.
기독교 교인에겐 물론 주일날 예배를 가는 것이 모든 생활의 1순위이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러 가다가 차에 치여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면 환자를 싣고 병원을 달려가 응급실에 뉘여 놓고 그 사람의 신분을 찾아내어 가족에게 전달까지 하느라고 뒤늦게 교회에 도착했다.
사정을 말씀드리며 죄송하다고 머리 숙이면, 목사님이 그래도 예배는 출석하셨어야죠...라고 나무랐을까. 아님 그랬군요. 잘 하셨어요. 우선 사람을 살리고 봐야죠. 하실까.
아마 100프로 사람을 살리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쉬운 예일까? 이처럼 쉬운 예가 지켜지기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의 묵념은 끝나고 결정을 할 수가 있었다.
예수님 새로운 교훈을 주시고 떠나셨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마리아 사람이건
니느웨 사람이건.
여당 사람이든 야당 사람이든.
다 이웃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다 이웃일 수가 없다는 것이 머리가 아프다.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데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크리스천이면서도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말이 사랑이라는 단어라고 여기고 있다.
애쓰지 않아도 사랑이 저절로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절대로 사랑을 할 수가 없는 사람도 있다.
혹 내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으면 누구라도 만나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국가 중에도 그런 국가가 있다.
일본과 중국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100년간이 싸움을 한 사이다. 100년 전쟁이라고 영국왕실과 프랑스 왕실간의 왕위 계승 문제로 다투게 된 빌미가 100년을 끌어왔다.
그러나 지금 두 나라는 특별한 문제점 없이, 혹은 문제점이 더러 있더라도 잘 의논하고 타협하며 무난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독일도 이웃의 작은 소국들을 괴롭혔던 국가이다. 히틀러 전에도 못된 국가였다는 말이다. 그 독함은 2차 대전을 정점으로 가관도 아니었다. 국가도 없이 세계적으로 흐터져 살아 소위 다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을 유발시킨 유대민족 말살 정책에 이르러서는 극에 달한다. 유대 민족은 자국 땅에서 추방되어 세계 각국으로 이산하는 비운을 겪은 것이다. 그 세월이 2000년이나 된다.
이 일 때문에 독일은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다 선반에 얹어두고 각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총리가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만 하는 곤욕을 오랫동안 치러야 했다.
당시의 전범이고 협력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범인을 찾아내 감옥으로 보내는 일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도 독일을 미워하고 조롱하는 사람이 국가가 없다. 심지어는 이스라엘과도 우리와 일본처럼 독일에게 더이상 적개심을 갖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사죄와 보상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옹졸한 쪽이 되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말은 신채호 선생도 했고 영국의 처칠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를 잊어버리기로 작정한 나라이다.
그들이 36년간 조선반도에 어떤 사악한 짓을 했는지....그리고 그 사악을 반성하거나 사괴를 하기는커녕 아니라고 딱 잘라 자국의 36년 역사를 부정하며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라이다. 거짓말을 한다고 덮힐 일이 아니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닌데도 딱....일본만 모르다고 딱 잡아떼고 있다.
그들에게 혼네(본심, 속내)와 닷테마에(위선, 가식)라는 양가감정(ambivalence)을 DNA로 갖고 태어나는 치명적인 정신병을 앓고 있는 국민이라고 알게 되었다.
양가감정은 극단적인 두 가지의 감정을 함께 갖고 정신병적인 요소를 말한다.
지독한 미움과 지독한 사랑....이 함께 작용할 때 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독한 자존심과 지독한 열등의식의 동시존재.
지독한 가난의 기억과 지독한 부자가 된 인격체의 혼돈.
얼른 생각나는 양가감정을 일본이라는 나라는 모두 갖고 있는 것 같다. 정신병이다.
정신병은 자신의 행적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잊고 싶은 것은 잊으려고 노력한다. 잊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하고 과장도 불사한다.
일본이 하는 행태는 이런 양가 감정의 극한점에 와있다고 나름 진단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집단적 정신병 환자가 되었는지를 알려면 그들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아까운 지면에서 그들의 역사까지 소환해 그들의 당위성을 일깨워 줄 의무는 없다고 결심했다.그들 정치가 중에 한 사람이라도 인문학적인 소양이 있어서 국민을 위로하며 지도하고 가르쳤더라면 저런 집단적인 히스테리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불행히도 그런 선구자적인 영웅은 단 한 사람도 없었나 보다.
그들은 역사를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한국을 빼면 쓸 역사가 없다. 이건 사실이다. 어딜 뒤져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인다. 소심한 인간에게는 한국이 견딜 수 없는 방해꾼임이 틀림없다.
한국을 낮추고 한국을 잊어버림으로 자존감을 가지려고 한다.
될 일인가. 딱한 이웃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지금 남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독교가 많이 변질 되면서 예수를 믿던 사람들도 교회를 떠나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 기독교에도 많은 변천이 있을거라는 썰도 돌고 있다.
어떻게 변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교회는 동네의 사랑방이었다. 주일이면 모여서 좋은 말씀을 듣고 교회 밥을 나누어 먹고 커피도 마시고 같이 선교나가고 같이 봉사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도와주는 일을하는 공동체 역할을 겸했다.
대도시일수록 아파트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교회의 따뜻함은 외톨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지금은 기독교인 끼리도 적이 되어 서로 비난하고 있다. 교회가 교회를 고발하여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서로 맹공격을 뿜어내고 있다.
기독교가 많이 부패하고 많이 변질되고 있다. 중세의 기독교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참회의 대 집회라도 열렸으면 좋을텐데 그나마도 C19가 막고 있다.
선한 이웃도 한 동네의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장미 마을엔 아직도 많은 공터가 있다. 땅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창밖을 내다보며 어떤 사람들인지 몹시 궁금하다.
며칠 전에 옆집에서 둘째 딸내미가 빵 한 접시를 갖고 왔다. 자기 만든건데 맛을 보라고 한다.
어제도 갖고 왔는데 또 들고 왔다. 잘 먹을게....
지금 있는 마을 사람처럼 서로 나누어 먹을 줄 알고 나누어 일을 하며 불평하지 않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분들만 왔으면 좋겠다.
우리의 선한 이웃들은 아름다운 전설을 계속 이어가며 살 수 있도록.
2020. 11....2021.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