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남편
정문을 들어서면 왼편엔 넓은 운동장이, 오른편으로는 부설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란히 뻗은 차도와 인도 끝에 이르면,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이 교육대학교 본관이었다. 입학처나 사무실 문을 여는 건 손에 꼽았지만, 본관 출입구는 늘 학생들로 붐볐다. 출입문 벽을 따라 각 과별 우편함이 길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로 된 우편함에는 뚜껑이 없었다. 흰 편지봉투는 늘 몸을 반쯤 내밀고, 엽서는 끝을 조금씩 드러내 보였다. 특히 우리 92학번 신입생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오늘은 내게 온 것이 있을까. 등교할 때도, 학교를 나설 때도 괜히 한번 더 들여다 보곤 하는 것이다.
'ㅇ월 ㅇ일 ㅇㅇ시에 ㅇㅇㅇ으로 모이기 바람.' 공지성 쪽지를 만나면 김이 빠졌다. ' 벚꽃이 흩날린다. 그걸 보면서 네 미소가 떠올랐어.' 이런 류의 문장은 설령 동성 친구가 보낸 것이라도 하루를 환하게 만들었다. 남녀 간의 조심스런 호감이나 작업도 손바닥만 한 네모 한 장에 실려 오갔다.
내 이름을 확인하려면 모두 꺼내어 한 장 한 장 살펴보고 다시 넣어야 했다. 남의 걸 훔쳐보는 것 같아 늘 서둘렀다. 그래도 그 사이에서 자주 보이는 이름은 은근히 부러움을 사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만져보고 내려놓았을 우편물들은 매일 새로 생겨나 꽂혀 있었다. 내게는 대개 친구나 선배가 보냈는데, 친구라도 남자 이름이 적힌 날은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 남녀의 관계라는 건 그렇게 미묘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보내는 사람 이름이 없는 엽서가 놓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여느 편지처럼 담담한 인사였고, 점점 시나 사랑에 대한 단상이 이어졌다. 글만 놓고 보면 마음이 흔들릴 만큼 감성적이었다. 기숙사 109호 룸메이트였던 우미와 나는 잠들기 전에 엽서를 되풀이해 읽으며 누가 보냈을지 추측하곤 했다.
글씨체로 단서를 찾으려 애썼다. 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모두 꺼내 놓고 비교해 보았다. 하지만 엽서의 글씨는 일부러 누군지 알 수 없게, 네모 반듯한 정자로 쓰여 있었다. 마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연습한 것처럼.
"남자인 건 확실한데. 너한테 관심 보이는 남자 없어? 잘 좀 생각해 봐."
주변 남자들의 행동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혹시 너? 나 좋아하면서 일부러 안 그런 척하는 거 아님? 혼자서 김칫국을 여러 사발 마시며 계절을 보냈다. 낙엽이 쌓여 발밑에서 사각거릴 무렵, 엽서는 봉투 있는 편지로 바뀌었다.
'너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이제는 아프다.'
여전히 보내는 사람 란은 비어 있었다.
"엇? 찾았다!"
봄부터 쌓인 편지를 다시 펼쳐보던 어느 날, 같은 과 친구 형준(가명)의 글씨 중 특이한 글자형을 발견했다. 모음 'ㅑ'를 쓸 때 'ㅣ'옆에 '='를 부등호 '<' 모양으로 벌려 적었다. 이름 없는 편지 속에도 그 글자형이 하나 있었다. 숨기려 했지만 몸에 밴 습관은 끝내 거기 남아 있었다.
그 무렵의 학교에는 여학생 기숙사만 있었다. 기숙사 친구들은 집에서 통학하는 친구들보다 학교에 더 오래 머물렀고, 더 많이 엮였다. 우리 과에 딱 일곱 명이었던 남학생들은 한 명 빼곤 학교 근처에서 자취나 하숙을 했다. 북두칠성처럼 뭉쳐 다녔고, 기숙사 아이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 무리 속엔 지금의 남편도 있었다. 그땐 그도 그저 친구였다. 우리 무리는 왁자지껄 캠퍼스 잔디밭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어둑해질 때까지 족구를 하고, 학교 앞 선술집에서 두부김치에 소주를 마셨다. 새내기들의 캠퍼스는 하루하루 즐거웠다.
형준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눈꼬리가 쳐져 순한 인상이었다. 속도가 느리고 말투도 온순했다. 형준과는 가깝고 친했지만 그는 그냥 편하고 좋은 친구일 뿐이었다. 가끔 철학적인 그에게 감탄은 했어도, 마음이 설레지는 않았다.
보낸 이가 형준이 확실하다고 여겨지자,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나 당혹감이 밀려왔다. 밤까지 정신없이 놀다가 기숙사 점호시간을 넘겼다. 세연, 복순과 함께 갈 곳이 없어 방황하고 고민하다, 만만한 형준의 하숙집 창문을 두드렸다. 그의 하숙방엔 골목 쪽으로 난 쪽문이 하나 있어 몰래 들어가기 쉬웠다. 자고 있던 형준이 나왔다. 재워달라는 말에 당황하긴 했지만 곧 별말없이 우리를 받아들였다. 좁은 방에서 그는 문쪽에, 우리는 조금 떨어져 누웠다. 나는 피곤해 바로 잠들었지만, 그가 어떤 복잡한 마음으로 그밤을 보냈을지, 그제야 조금 헤아려졌다. 그를 받아줄 마음이 없었기에 미안함은 더욱 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편함에 그의 편지가 다시 놓였다.
'ㅇ월 ㅇ일 ㅇㅇ시 타강(타오르는 강)에서 만나고 싶다. 올 때까지 기다릴게.'
어쩌지? 가지 말까? 좋은 친구 사이가 망가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회피가 답은 아니었다. 내가 짐작할 거라는 걸 알지 못하는 그의 앞에 나갔고, 고백을 들었고, 정중히 거절했다.
형준이 어떤 과정을 지나 마음을 정리했는지 모른다. 그저 그가 고백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존중해 주는 것이라, 관계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어느덧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예전의 자리로 완벽히 돌아갔다.
"준수(가명)랑 영화라도 볼래? 외박 나왔는데 심심하다더라."
각각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은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던 어느 날, 형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준수는 ROTC 장교로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졸업 후 그와는 연락이 끊겼었다. 늘 같이 어울렸지만 형준과는 달리 준수는 스스럼없이 대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러는 척하긴 했지만. 준수와 단둘이 영화를 보고 종로 거리를 걸었다. 그날, 떨리는 그의 눈빛을 마주했다. 그 하루의 시간은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
형준은 당차고 이쁜 학교 후배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애처가로 살고 있다. 나는 준수와 사랑하며, 세 아이와 일상을 공유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서로 다른 길로 걸었지만, 내 삶의 중요한 선택은 그 친구의 전화 한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인연은 알 수 없는 것이다. 형준과 나, 준수는 좋은 인연으로 남았다.
보내는 사람 없는 편지 속 문장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저 순수하고 가슴 뛰었던 시절의 생동감을 다시 읽고 싶은 날이다. 내일은 안부 전화나 해 봐야겠다. 여, 친구! 아픈 덴 없고? 막내는 잘 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