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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리운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의 추억

by 솔향

유치부 아이들이 빨강과 초록이 섞인 크리스마스 망토를 걸치고 무대에 올랐다. 열댓 명이 세 줄로 섰다. 네 살 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는 공연에는 관심 없고, 뒤로 돌아선 채 고개를 들어 천장만 쳐다본다. 성도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시선을 따라가 어떤 신기한 게 있는지 찾았다. 흰 천정에 하얀 조명이 군데군데 박혀있을 뿐이다. 꼬마에겐 천정이 어마무시하게 높아 보이겠지? 또 다른 남자아이는 줄곧 뒤통수만 보이는 천장 바라기 친구의 망토 끝자락을 꼭 쥐고 고개를 푹 숙여 바닥과만 눈 맞춘다. 음악이 흐르고 귀염둥이들이 율동을 시작했다. 눈으로 바닥을 뚫던 아이는 아예 엎드려 눈을 바닥에 댔다. 천장을 다 탐색한 아이가 드디어 돌아섰다. 밤톨같이 귀엽다. 율동은 안 하고 엎드려 있는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내 친구 등위에 다리를 벌려 타고 앉는다. 다시 웃음이 터진다. 다행히 나머지 아이들이 진땀 흘리는 선생님께 보답하며 공연을 무사히 끝냈다. 음악이 멈추자 시선을 강탈했던 두 아이가 그제야 일어나 뒤뚱뒤뚱 퇴장 대열에 합류한다. 귀여워 관객들의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초등부, 중등부의 공연도 성대하게 올랐다. 초등 고학년의 뮤지컬 무대가 신선했다. 별을 담당한 키가 큰 남자아이가 앉아 있는 요셉과 마리아의 머리 위에서 리듬감 있게 별과 무릎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깜빡임을 표현했다. 끝날 때까지 성실하고 성의 있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순수한 아이를 보는데 감동이 밀려와 울컥했다. 마지막엔 결국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직장에선 워낙 잘난 척을 해서 다들 내가 T인 줄 아는데, 실은 F성향도 많다. 넓은 품의 이스라엘 복장을 재현한 의상을 갖춰 입은 아이들을 보니, 어릴 때 교회에서 연극 공연했던 추억이 겹쳐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한 달여 전부터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고 언덕 위의 교회에 모여 율동과 연극 연습을 했다. 나는 동방박사 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커다란 자주색 성가대 복을 걸친 후, 보자기를 머리에 길게 늘어뜨려 감싸고 끈으로 동여맸다. 요셉은 옆집 동생 강태가, 마리아는 우리 반에서 제일 키가 컸던 지숙이가 맡았다. 지금 목사가 된 남동생은 목동 역할이었다. 큰 별을 보고 구세주가 나실 걸 알고, 별을 따라 찾아가 아기 예수께 무릎을 꿇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발 디딜 틈 없이 다닥다닥 모여 앉은 마을 분들에게 크게 잘 전달했는지 모르겠다. 동작이나 말투가 어색하기는 해도 웬만큼은 했을 것이다. 율동할 때도 시선은 손끝에, 표정은 밝게 해야 훨씬 잘하게 보인다던 선생님들의 지도를 찰떡같이 접수한 데다 키도 작은 편이라 늘 앞자리 센터를 담당한 똑순이였으니까. 하하. 요즘처럼 영상으로라도 남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나를 대면하는 기분은 어떨까? 저녁 무대를 마치고 볼에 닿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집으로 내려오는 밤길이 어제인듯 선하다. 한껏 부풀어 올라 뛰던 가슴도.


내가 자란 섬은 아주 작아 초등학교 분교밖에 없었다. 심지어 작은 점방도 폐업할 때가 많아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중학교에 가려면 옆의 큰 섬이나 목포로 나가야 했다. 하루에 한 번밖에 없는 배를 타고 주말이면 본가에 나가는 학교 선생님들을 대신한 또 다른 선생님들이 교회에 있었다. 모두 우리 섬 출신인데 고모나 삼촌 친구들이었다. 옥순 고모는 옥도 교회를 세운 장로님들 중 한 분의 딸로 성경 공부를 가르치고 피아노를 쳤다. 엄마 말에 따르면 찬송가를 4부 음으로 치는 게 어려운데 거의 독학으로 배웠다고 한다. 이쁘고 똑똑하고 야무진데 등이 약간 곱사등라서 다들 안타까워했다. 강희 삼촌은 엄청 잘 생겼는데 아이들과 잘 놀아 주고 유머가 풍부했다. 주로 예배 끝나고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했다. 자지러지게 웃고 즐거워하는 시간이었다. 믿음이 강해서 좀 진지했던 삼촌들도 두 명쯤 더 있었는데 다 친절했다. 성경 퀴즈, 게임, 야외 미술 수업, 산이나 바다로 가는 소풍, 밤에 교회에 불을 밝히고 했던 추수 감사절과 성탄절 공연 연습, 성탄절의 어스름한 새벽에 눈을 비비며 집집마다 다니며 불렀던 새벽송. 그들은 심훈의 <<상록수>> 주인공 채영신과 박동혁처럼 우리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주어 감성을 깨치고 인성을 채워 주었다. 그래서인지 환경이 너무나 열악한 손바닥만 한 작은 낙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부족하다 느끼지 않았다.

나이 들수록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쉰이 넘은 중년의 여자가 ‘나 어렸을 때, 이것도 해 봤고, 저것도 잘했는데.’라며 자랑하는 게 좀 우습다. 그래도 유치하게 꺼내어 곱씹고 미소 지으며 잠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아, 그립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서 십자가를 빛내던 옥도 교회, 내 유년의 추억이 깃든 곳. 거친 농사일을 끝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그곳에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바치던 사람들. 그들의 열정과 기도와 웃음이 우리에게 선물이었다. 대부분 만나지 못하지만 저마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살아내고 있겠지. 믿음이 부족해서 주일예배에만 겨우 잠깐 점찍는 무덤덤한 엉터리 신자지만 그래도 포도나무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가지처럼 교회에서 발을 떼지 않는 까닭이 유년에 심긴 겨자씨 같은 믿음 때문은 아닐까?


성탄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나눠주는 붕어빵을 입에 문 채 카페로 향했다. 막내가 오랜만에 교회 친구와 오후 시간을 보내기로 해서 마음 편한 자유시간이 생겼다. 크리스마스라 누굴 불러내기도 그렇다. 캐럴 들으며 커피 마시고 책을 읽었다. 추억에 잠겨 크리스마스가 조용히 지나간다. 내 생일도 아니고,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것도 좀 미안하지 않을까? 예수님, 생신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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