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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의 짜릿한 향기

여름 내몽골 여행

by 솔향

‘쏟아지는 별을 감상하며 힐링할 수 있는 코스, 선선한 날씨의 내몽골 여행’. 홈쇼핑 여행 상품을 보다가 덥석 6년 만의 가족 해외여행을 예약했다. 넓은 초원, 양 떼, 사막, 낙타, 별, 양고기, 게르, 대자연에서의 야외 온천... 이런 것보다는 순전히 날씨 하나 보고 선택했다. 막내의 등쌀에 올여름엔 한번 나가긴 해야겠는데, 평균 23~24도의 적당한 날씨라길래 괜찮겠다 싶어서다. 더울 땐 어디를 나가도 개고생이다. 힘들고, 짜증 나는 걸 돈을 내면서 하는 게 여름에 나서는 거다. 게다가 그게 가족 여행이라면 입만 아프다. 남편이 사정상 같이 가지 못 하게 되면서 친정엄마와 나, 그리고 세 딸과의 모녀 3대 여행이 되었다. 날짜가 다가와 여행사에서 보낸 일정을 보다가 인천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라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내몽골은 몽골이 아니고 중국이란다. 엥? 나만 몰랐던 건 아니겠지? 무식한 걸 부끄러워하기보다, 지식 하나 더 얻어 이득이라 여겨야지.


내몽골의 짜릿한 감성은 화장실에서 출발했다. 첫날은 새벽 한 시에 목포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다섯 시간을 달려가 무진장 대기, 비행기로 베이징 서우두 공항 도착, 점심식사, 리무진 버스로 중간에 고북수진이라는 동네를 찍고, 다시 대여섯 시간을 내몽골로 들어가는 무지막지한 여정이었다. 내몽골로 가는 길목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중국 화장실엔 대부분 휴지가 없으니 갈 때마다 꼭 챙겨 가라고 했다. 다음 도착지까지 오래 걸리니 빠짐없이 다 다녀오라는 성화에 우리 패키지 일행은 모두 일어나 손에 하얀 휴지를 고이 접어들고는 잠에서 덜 깬 무거운 몸을 끌고 버스에서 내렸다. 건물 앞은 동그란 배를 까놓고 담배 피는 아저씨들로 진풍경이다. 담배 피는 할머니들을 보고는 막내가 놀란다. 두껍고 무거운 투명 비닐 발을 들추고 화장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눈꺼풀에 붙어 있던 잠이 싹 떨어져 날아갔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에 숨을 쉴 수가 없다. 코가 뻥 뚫리는 이런 독한 냄새는 거짓말 한 방울 없이 난생처음이다. 뭐야, 바닥이 축축한데 그냥 바닥에들 싼 건가? 놀라 동그랬던 눈이 가늘어지면서 미간이 구겨진다. 모두 표정이 똑같다. 서로 쳐다보다 어이없어 헛웃음을 친다.


절대 못 들어간다고 달아나 버린 막내를 뒤로하고, 용감한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하얀 바닥 타일은 청소가 안 돼 여기저기 더럽고 물기가 범벅이다. 화장실 칸 문을 열었더니 다행히 재래식은 아니고, 쪼그려 앉는 화변기다. 바닥도 지저분한데 차라리 잘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처럼 앞쪽이 둥글게 반원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양쪽 다 편평해서 문 쪽을 보고 앉아야 할지, 반대로 앉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방향으로 앉든 무슨 상관인가. 바짓단을 돌돌 말아 바닥에 닿지 않게 걷어 올린 후 어정쩡하게 볼일을 보고,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은 세면대에서 대충 손에 물만 묻히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깥공기로 숨을 돌리고는 울상을 짓고 있는 막내를 겨우 설득해 손을 붙잡고 다시 들어갔다. 냄새도 냄새지만 막내는 쪼그려 앉는 게 너무 힘들단다. ‘왜 양변기가 없냐, 엄마는 왜 이런 것도 미리 말 안 해 줬냐.’며 나한테 짜증을 낸다. 황당하다. 좌변기에만 앉아 본 요즘 얘들은 다리에 힘도 없고, 참을성도 없고, 개념도 없다. 드디어 일을 마치고 나온 막내는 시원해선지, 뿌듯해선지 아까랑은 다른 얼굴이다. 엄마라는 이유로 두 번이나 들어간 나도 좀 대단하긴 하다. 휴게소 마당에서 일행들이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런다고 옷에 밴 냄새가 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겨우 이 정도로 화장실이 기억에 박혔다는 게 아니다. 대박은 버스가 두 번째로 멈춘 곳이었다. 주유소가 있는 조금 작은 휴게소였는데 역시 가이드는 중간에 화장실이 없으니 무조건 가야 한다며 우리를 모두 내몰았다. 창고처럼 보이는 작고 네모난 건물에 남, 녀를 표시한 두 개의 알리미늄문이 붙어 있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잿빛이었다. 아까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막내와 나, 엄마는 일행과 함께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고르지 않은 시멘트 바닥에 두껍게 덮인 검은 먼지, 군데군데 바닥에 스며있는 물기. 아! 나는 보고야 말았다. 같은 간격으로 뚫려 있는 일곱 개의 네모난 구멍을. 암모니아 향뿐 아니라 기름기 가득한 찐득한 분뇨 냄새까지. 죽여줬다. 황당한 공기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그냥 싸, 싸. 빨리빨리!” 명령에 따라 홀린 듯 줄줄이 대여섯 명이 옷을 들추고 앉아 있는데 밖에서 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안 돼애! 빨리 닫아!” 문을 열면 바로 사람들이 서 있는 마당이라고!


화생방 창고에서 도망치듯 전속력으로 뛰쳐나왔다. “그래도 앞사람 궁딩이 쳐다보고 안 앉은 게 어디여. 저번 여행에서는 길게 나 있는 구멍에 줄줄이 앉았다니까. 크크큭.” 한 명, 한 명 나오며 깔깔거린다. 거의 울 것 같은 여자도 보인다. 우리 막내도 해냈다. 생각보다 표정이 여유 있다. “엄마, 나 숨 한 번도 안 쉬고 참았어!” 뭔가 비장한 걸 해낸 듯한 상기된 얼굴이다. 다행이긴 하다만, 아이고, 앞으로 5일을 어떻게 버티지? 80, 90년대에 중국에 가면 화장실 칸막이가 없다네, 있더라도 아래쪽만 가려져서 남, 녀가 서로 얼굴을 보면서 싼다네, 하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2025년인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을 줄은 몰라서 더 놀라웠다.


진짜 다행히 그 뒤부턴 화장실 사정이 한결 나아졌다. 호텔이나 신식 게르는 모두 깨끗한 양변기를 갖추고 있어 아이들이 행복해했고, 다음에 들른 휴게소나 식당의 화장실은 대부분 화변기이긴 했으나 그전보다 훨씬 냄새도 덜 났으며, 가끔 화장실 한 칸 정도는 양변기가 있어서 활짝 웃는 막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다만 한 식당에서는 화장실에 전등이 없어 문을 닫으면 캄캄해지는 바람에 살짝 열고 볼일을 볼 수밖에 없다는 약간의 불편함 정도가 있었달까. 신기하게도 하나씩 마련된 양변기 칸에는 줄 선 사람이 없어 의아했는데, 중국인들은 누구의 엉덩이가 닿았는지 모를 양변기에 앉는 걸 더 위생관념 없다고 생각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그제야 이해가 됐다. 요즘은 중국 대도시는 양변기로 거의 바꾸고 있는데, 양변기 위에 신발을 신고 쪼그려 앉는 중국인들을 위해 아예 소독제를 비치해서 변기커버를 닦고 앉을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그것도 좋은 방법인 듯하다. 아직도 문 없이 옆 사람과 이야기 나누며 볼일을 보는 문화가 더 인정 있고 다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니까 흠,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냄새가 특별히 더 지독한 건 중국인들의 기름진 식습관 때문이라고 가이드가 덧붙였다.


우습다. 요즘 좀 편리하다고 옛날 일을 다 잊어버리고 꼭 공주처럼 자란 듯이 중국 화장실이 냄새나고 더럽다고 주절대고 있다니. 변소에 가서 한 발씩 놓을 때마다 구멍 속에 빠질까 봐 긴장하고, 빨간 종이랑 파란 종이를 든 손이 올라올까 봐 무서워 줄행랑치던 어린 아이가 떠올랐다. 얼기설기 짜여있던 할머니댁 변소는 떠올리기만 해도 왜 이리 정다운가. 겨울밤, 방 한 귀퉁이에 놓인 요강을 찾아 쪼르륵 오줌을 싸고, 다음 날 아침, 다른 식구의 것까지 가득 차 찰랑거리는 무거운 요강을 들고, 넘칠까 봐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어 수챗구멍에 비운 다음 쪼그려 앉아 비누로 깨끗이 요강을 닦던 아이도 보였다. 그 조그만 손으로 어찌 그런 일들을 했을까? 키만 크고 속은 하나도 없는 우리 막내가 그런 걸 본다면 속이 좀 들려나? 내몽골 낯선 땅에서 푸근한 추억을 떠올린다. 어디를 가나 세계적으로 소문날 만큼 깨끗한 우리나라 화장실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을 사는 것도 편하고, 내가 싼 응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살았던 그때도 눈물 날 만큼 그립다.


앗! 이만 끊어야겠다. 기껏 대자연의 나라로 여행을 가서 냄새나는 이야기만 길게 늘어놓다니. 초원과 사막과 별과 낙타 이야기는 언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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