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슬프다. 슬프니까 노인이다.

너무 슬퍼서. 죽음의 예행연습처럼. 그렇게 나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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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슬프다.

봄에 꽃이 너무 많이 피었네

견딜 수 없네

이 아름다움은 슬픔이야.

정현종 님의 시 ‘견딜 수 없네’의 일부이다.



봄에 들판 하나 가득 꽃이 핀다. 아름다움일까 슬픔일까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생장소멸한다.

지금 형형색색 아름다움을 뽐내며 벌판을 가득 매운 저 꽃들도 유한하다.

결국 죽음이다.


시인은 봄에 지천으로 핀 꽃의 향기를 맡으며 그 종말을 본다

그것은 슬픔이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이다.


노인은 슬프다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슬프니까 노인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노인이 된다.

가을 벌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인다. 풍년이다.

누렇게 익은 벼 이삭에게 왜 흔들거리냐고 묻지 마라.


한 알의 곡식이 익기까지

천 번을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리고, 익어가는 벼 이삭의 무게에 흔들리고, 고추잠자리에 흔들린다.


지난여름. 달님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거리고.

한 줄기 번개는 예리한 칼날처럼 그 어둠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벌판을 가르고 지나갈 때.

벼는 그 벌판에서 흔들리며 늙으면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늙어도 흔들린다.

흔들리니까 노인이다.






노인은 아프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나도 노인이 되면 우아하고 세련일 줄 알았다.

노인은 추하다.


늙고 나니 어린애가 된다.

귀찮고 하기 싫어진다. 떼쓰고 싶다.

아프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도 늙은이는 건성이다.

의사는 맨 마지막에 꼭 그런 말을 한다. 내 나이면 옛날에는 상상도 못 할 나이란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나도 안다.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아프다가 안녕히 가시라는 분위기이다.






두렵다. 두려우니까 노인이다.

불안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불안이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불안에 이르게 한다.


노인은 불안하다. 두렵다. 초조해진다.

그 실체는 두 가지이다. 죽음과 소외.


노인들은 막장이 된다.

지하철에서 소리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욕을 한다. 극단의 이기주의가 된다. 가족과 소통이 안된다. 고집쟁이가 된다.

두렵기 때문이다.


노인은 무섭다. 죽음이. 그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 그리고 혼자된다는 것. 결국 다 제갈길로 , 나만 남겨놓고 가 버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노인은 두렵다.







그래서 갔다.

인생이 너무 슬퍼서. 흔들리는, 흔들려도 너무 흔들리는 사나이가 미워서.

아프고 무서워서, 너무너무 무서워서.

나는 떠났다.

다 버리고 남미로 갔다.


구도자의 심정으로, 이승을 떠나듯이 그렇게 나는 갔다.

죽음의 예행연습처럼 떠났다.








22 Jul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