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 한 달이 나에게 준 선물

큰 외로움을 견디고 나면 작은 외로움은 견디기 쉬워진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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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보다 슬픈 것.

지난날들을 되새기며

수많은 추억을 헤이며

길고 긴 밤을 새워야지

나의 외로움 달래야지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변진섭 님의 노래 ‘홀로 된다는 것’의 가사 중 일부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 운다. 그러나 그 눈물의 대상은 이별의 슬픔이나. 떠나가는 사람이나. 소중했던 추억이나 그런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한 눈물이다. 혼자된다는 것. 혼자 된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이별의 슬픔 그 실체는 소외이다. 오래된 유행가 가사에 따르면 그렇다.


무서운 길이다, 이별보다 더 무서운 그 길이다. 혼자서 가는 길이다. 가수가 그렇게 슬프다고 애절하게 노래하던 그 상태이다. 혼자된 것이다. 소외된 것이다.

그렇게 5주. 한 달 남짓을 나는 혼자 남미를 여행했다. 늦은 나이에.

그리고 그 여행이 끝이 났다.


구도의 길 같았던, 투쟁이고 치열했던 그 여행은

나에게 몇 개의 변화를 선물로 주었다.





소외에 대한 자신이 생겼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소외이다. 자발적 소외이다. 스스로 홀로 되는 것이다.

정말 하루 종일 하는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는다.

혼자 잠이 들고 혼자 일어난다.


그것에 익숙해지면 소외의 공포에서 해방된다.

죽든 떠나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나는 이 험한 세상에 혼자만 남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 사라진다.

이미 혼자인데,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어진다.


혼자 있을 용기가 생기면,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의존적이 되지 않아도 된다. 혹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맹목적의 시선으로 타인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인간관계가 당당해진다. 사람에 대한 정의가 달라진다.


과도한 자기 사랑. 자기애. 거기에서 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남미의 한달은 충분했다





두려움이 없어졌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에서 호텔로 돌아갈 때이다. 우버를 탔다.

그런데 택시가 다른 갈로 간다. 구글 지도의 경로를 벗어나 다른 도로로 진입한다. 거기로 가면 거긴 도시외곽 우범지역이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다. 모골이 송연하다. 심장박동이 비정상이 된다.

일상이다. 남미 여행은 위험이 일상이다. 24시간이 러시안룰렛이다.


그 한계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한 달을 살고 나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모든 공포에서, 죽음까지도, 현실적으로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질병. 죽음. 빈곤. 미래 같은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무시당하지 않을까, 자존심이 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없어진다,


사실 별거 아닌데. 그 스트레스가 크다. 나이가 들면 더 해 진다. 갖고 있는 것들이 없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이 없어진다.


두려움은 사실 실체가 없다. 내가 만든 거다. 과도한 자기 사랑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혼자 여행을 하는 가장 큰 이득은 그 일상의 공포에서 자유러워 진다는 점이다.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욱 그렇다. 사랑 한 만큼 받고 싶어진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가고 마음속에 외침이 있다.


하지만, 친절하던 호텔 리셉션은 내가 체크아웃하고 키를 반납하는 순간 남이다. 눈이 마주쳐도 웃지 않는다.

식당 종업원은 밥 먹고 계산이 끝나면, 잘 가라는 인사도 없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호텔에 남겨두고 온 새로 산 모자는 잊어야 한다. 돌려주지 않는다.

딱 거기까지 이다. 계약관계.


따지고 보며 사랑도 계약이다. 조건이다. 사람끼리는 그렇다.

내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고, 혹은 내가 이행한 조건들을 과대 평가하여 누군가에게 나에게 더 잘해줄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망상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미움도 사라진다. 인간관계의 서운함이 사라진다.

인간관계는 해코지만 안 해도 고마운 것이다.





일상이 단순해졌다.

일어나면 먹는다. 졸리면 잔다. 땀나면 씻는다. 더러우면 빨래한다. 정말 인생이 단조로워진다.

몸무게는 잴 수도 없다. 혈압도 그렇다.

남미 전체에 나처럼 매일 혈압재고 몸무게 재는 사람이 없다. 이 사람들은 담배도 막 피운다.


단세포 동물이 좋다. 뇌가 없음도 그리 나쁘지 않다.

계획이나 예측이나 평가나 그런 지적 행위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본다.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오늘이 참 편해진다.


마음이 넓어졌다.

좀 속아도 열받지 않는다. 나를 조금 무시해도 목숨 걸지 않게 된다.

누가 조금만 잘 대해 주어도 고맙다. 눈물 나게 고맙다. 사람이 좋아진다.

세상이 아름답다. 사람이 고맙다. 그런 생각이 들게 된댜.





가장 큰 변화는

행복하기 위하여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난 정말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했고, 가지 못할 길을 가려했다.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 같았다.


소중한 것의 개념이 바뀌었다. 이기심의 양상이 달라졌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생명에 남은 시간들은 자유롭고 싶다.


소유보다는 존재에

공포보다는 그 공포를 느끼는 실존에


안데스의 부는 바람. 거기 떠있는 구름 그리고 큰 새 콘도르처럼.

자유롭게

.






25 Jul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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