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에게 불어온 기적의 바람
그 길에 만난 바람을 기억해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한길문고 ○○○과장입니다. <그 길에 만난 바람을 기억해> 도서 15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날아든 한 통의 문자에 마음이 바빠졌다. 한길문고에 첫 10권을 입고한 뒤, 이미 31권을 더 입고한 상황이었기에 내게 남아있는 책은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인쇄소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이후에 35권을 한길문고에 추가로 입고했다.
지난 9일 오후 3시. 나는 고심 끝에 시폰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평소 신지 않는 높은 구두를 신고 서점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을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서점 안쪽에 출판기념회 준비로 분주한 한길문고 대표님과 직원, 그리고 배지영 작가님이 보였다. 양쪽으로 나란히 놓인 책상 위 11권의 책. 나는 그중 한 책이 놓인 책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서른여섯, 한 여자에게 불어온 기적의 바람. 그 시간에 대한 진솔한 고백. 책상 뒤쪽에 걸린 가을빛을 담은 현수막에 쓰인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글을 쓰는 내내 많은 눈물을 쏟았고 수없이 흔들렸던 내가 쓴 글. 작가를 막연하게 꿈꿔왔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시간. 바로 그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다. 한길문고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 나는 독립출판으로 첫 에세이를 출간했다.
진짜 나를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꽁꽁 매어 가뒀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꿈꾸는 것들마저. 더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바람 한 길도 내 마음에 머물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달랐다. 계속해서 진짜 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스스로에게 애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스물여섯, 내게 원형탈모가 찾아왔다. 주사 몇 번이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믿었지만 증상은 더욱 악화되었다. 머리는 앞머리 라인을 따라 점점 빠지기 시작했고 넓은 머리띠로도 더 이상 빈 머리가 가려지지 않았다. 탈모를 관리한다는 미용실도 다녀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머리는 전부 빠져버렸고 나는 결국 가발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나에게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머릿속으로는 바람이 들어오지 못했다. 꽉 막힌 그물구조의 통가발. 그 사이로 촘촘하게 박힌 가모는 바람에 날리지 않았다. 그 어색함이 싫었지만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나는 더욱 가발을 눌러써야만 했다.
4년 전, 나는 가발을 완전히 벗었다. 이전의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지금의 나를 감히 꿈꿀 수도 없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내게 보내는 위로이자 첫 용기. 누군가에게는 내 어리석은 날들에 대한 고백일지 모른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던 내게 시린 바람의 계절이 만들어 낸 오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글로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저 아픈 이름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을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이 된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누군가는 나처럼 낡은 서랍에 있는 아픈 기억에 오래 머물지 않기를. 이 바람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메리골드의 시간은 꼭 찾아오니까.
글을 쓰면서도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면 불안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할 수 있다고, 계속 써야 한다고 배지영 작가님은 나를 격려했고, 에세이 4기 선생님들은 나와 함께 울고 웃으며 다독였다. 다양한 문학 강연으로 눈과 귀를 열어준 한길문고 대표님의 지원이 있었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배지영 작가님이 말했다.
“강양오 작가님 책 왜 이렇게 많이 나가냐고 한길문고 과장님이 물었죠. 그래서 알려줬어요. 글을 잘 썼고, 사람이 멋지고 아름답다고요.”
나는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계속 쓰는 사람의 길로 가기로 결심했다. 아껴주는 스승님이 있으니 든든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에세이 4기 선생님들. 우리는 믿는다. 서로에게 더 멀리 오래갈 수 있도록 잊지 않고 불어줄 바람이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