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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롱언니 Feb 13. 2024

11. 재롱과 함께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2)

내가 20살이 되던 해였나, 우연히 어떤 할머니를 알게 됐다. 아픈 몸으로 그저 봉사와 약간의 후원만 받으며 수십여 마리의 강아지, 고양이들을 돌보는 분이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번호가 기재되어 있고, 문자를 보내면 답장도 곧잘 해주신다. 그 덕에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할머니와 연락하고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계정에 올린 동영상들을 보면 열악한 환경 속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뒤엉켜 지내고 있다. 할머니가 하루종일 잘 챙겨주려 노력하시지만, 개체 수가 워낙 많고 아픈 아이들은 손이 더 많이 가는 탓에 모두에게 공평한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거다. 할머니도 몸이 좋지 않고, 아픈 동물들도 돌보는 등 하루가 바쁜데도 꾸준히 영상을 올리는 건, 후원금을 받아 할머니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 하는 사람들의 의심을 조금이나마 꺼뜨리려는 하나의 노력처럼 느껴진다.


할머니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하시고 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많은 사람들의 후원, 봉사를 받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할머니네 집 주소가 쉽게 알려져 있기에 일부러 집 근처까지 와서 동물을 유기하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굳이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본인과 살을 맞대며 살던 동물을 유기하는 심리는 뭘까. 약간의 죄책감을 동반한 걸까. 죽든 말든 상관 없는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버리지만, 그 할머니네 집 근처에서 눈에 띄면 잘 거둬주실까봐? 잘 살아갈까 봐? 이러나 저러나 사악하고 비열하다.


내가 할머니와 연락하고 지낸 건 7년이 넘어간다. 나는 종종 후원금을 보내고, 매달 고양이 사료와 강아지 간식을 보냈다. 할머니는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으신다. 오히려 내가 늘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인데 말이다.


재롱이 희귀병을 앓는 3년 정도 되는 시간동안 고정지출이 된 병원비는 자주 버거웠다. 재롱을 아프지 않게 하고, 재롱에게 좋은 약과 간식을 사주고, 필요한 검사를 하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정도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했지만, 병원을 다녀오면 말 그대로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었다. 나의 아픈 강아지도 마음 쓰이지만, 더 열악한 상황에서 더 아픈 강아지들도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내 나름대로의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늘 미약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재롱이 떠나고 나서는 후원 하는 센터와 금액을 늘렸다. 나의 도움을 받은 많은 동물들이 나중에, 아주 나중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 간다면 재롱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재롱을 잘 돌봐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때로는 우리 재롱이 인기쟁이 강아지가 되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흘려 보내기도 한다.


결국 내가 소수의 동물들을 도울 수 있는 생각을 하고 행동하게 만든 건, 재롱이 알려준 또 하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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