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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홍섭 Apr 18. 2024

스페인 여행

나이 숫자만큼 돌아본 지구촌 나라들 25번째 나라


나이 숫자만큼 돌아본 지구촌 나라들

25번째 나라스페인 (13년 10, 14년 10, 17년 4)


유럽의 최서단에 이베리아반도가 있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동서로 나뉘어 있듯이 이베리아반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동서로 차지하고 있는데 면적으로는 스페인이 훨씬 넓다.      

이베리아반도는 13년 10월 바르셀로나, 14년 10월 마드리드, 17년 4월 바르셀로나, 19년 3월에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 등 모두 4차례를 여행했지만 스페인 남부는 아직도 돌아보지 못했다. 


유럽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이베리아반도를 한 번에 둘러보지 못하고 조각조각 나누어 여행하는 게 비행기 루트나 경제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인 여행이지만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하다 보니 조금씩 나눠서 가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호텔 대신 한인 민박집인 ‘만남’에서 묵었다. 이 민박집은 반달을 작곡하신 윤극영 선생님의 장남이 운영하시는 민박집인데 바르셀로나가 좋아서 정착하셨다고 하였다. 지금은 인터넷에 찾아볼 수 없는 걸로 봐서는 민박집 운영은 중단하신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지 숙소를 정하면서 호텔, 에어 비엔비, 한인 민박 등을 고민하게 된다. 처음 가는 여행지에서 한인 민박집을 선택하면 공항 픽업 서비스, 현지 일일 투어 소개 등의 도움을 가장 쉽게 받을 수 있고, 그곳의 숨겨진 명소, 맛집 등을 소개받을 수 있다. 또한 혼자 다니면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 등에 대해서도 위안이 된다.      


한인 민박은 보통 아침을 한식으로 차려 주는 곳이 많고, 민박 사장님이 직접 운전과 가이드를 겸하는 경우에는 호젓하게 자유여행을 프리미엄급으로 즐길 수도 있다. 다만 호텔에 비해 프라이버시 에 대한 불편한 점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요르단 암만의 조창신 선교사댁, 스리랑카 콜롬보의 김병수 사장 댁, 네팔 카투만두의 이호철 사장 댁,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박 사장 댁, 브라질 리오데자네루의 한인 민박집 등에서 민박을 하였다.      


요즈음은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현지에 한국인 가이드가 운영하는 데일리 투어가 있어서 패키지 투어와 달리, 여유롭고 융통성 있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소그룹 데일리 현지 투어는 인터넷에도 잘 소개하고 있지만 보통 현지 한인 민박집과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어서 한인 민박집에 묵으면서 데일리투어를 소개받으면 된다.

그리고 한인 민박집에 머물면서 그 나라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한인들과 그들의 커뮤니티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서 자유여행을 할 때 호텔보다는 한인 민박을 이용하는 편이다.      


해외에서 직접 살아 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UAE,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는 그 나라의 한인사회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한인 민박집에 머물면서 그곳 한인사회에 대한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대략은 들어볼 수가 있어 좋다.     


바르셀로나에서도 한인 민박 ‘만남’ 사장님이 헬로 유럽의 신은아 실장과 박진아 가이드도 소개해 주셨고, 플라밍고 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할 곳도 알려줘서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특히 헬로 유럽의 신은아 실장과 박진아 가이드와 함께한 가우디 투어와 피카소 투어, 바르셀로나 교외의 몬세라트 투어는 마치 가족처럼 4~5명이 소그룹으로 오붓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박진아 가이드와 함께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 공원, 구엘 저택과 전차 사고 후 죽기 전3일 동안 묵었던 병원까지 찾아보면서 가우디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들과 그의 독실한 신앙과 천재적 건축 작품세계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 들을 상세히 보고,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하였다.     

 

바르셀로나는 BBC가 선정한 세계 50대 명소 중 37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스페인에서도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카탈루니아 지방의 중요 도시이며, 19세기 중반 무렵 카탈루냐 르네상스라 불리던 시대에 '모데르니스모'로 불리는 혁신적인 예술운동이 일어나서, 가우디를 비롯한 많은 건축가들의 작품을 수놓은 도시이다.      

지중해 바다와 온난한 기후조건과 중세 고딕 성당 등 고건축물 등의 문화유산, 가우디, 피카소 등 위대한 건축가와 미술가의 고장이며, 풀라맹코, 투우(지금은 바르셀로나는 투우경기를 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축구, 파에야 등 특색있는 음식, 람브라스 등 테마가 있는 거리 등으로 늘 관광객의 물결로 넘쳐 나는 유럽에서 가장 활력있고, 매력있는 도시이다.   

그러면서도 민박집 사장님이 신신당부를 하시면서 각별히 주의를 당부하던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말은 옥에 티로 느껴졌다.   

  

13년 10월 처음 바르셀로나를 찾게 된 건 오로지 가우디와 피키소 때문이었다. 건축을 전공한 엔지니어로서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있는 바르셀로나는 줄곧 여행지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던 곳이었다. 유럽 건축사의 맨 끝부분 근대 건축사에서 빠지지 않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안토니오 가우디 건축물들과의 만남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튀르키예의 성 소피아 성당, 이탈리아 콜로세움 등을 눈으로 직접 봤을 때의 벅찬 감동을 다시 느껴 보기 위한 시도였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기대했던 또 한 사람으로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태어나서 14세에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여 그림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피카소를 그의 작품세계를 통해서 만났다.      

14세기에 건축된 아길라르 궁전을 개조하여, 1963년에 개관한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어린 시절에 그린 스케치, 습작 들을 포함한 다양한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의 어린 시절 미술에 대한 천재성을 잘 엿볼 수가 있었고, 헬로 유럽의 신은아 실장의 상세한 설명으로 피카소의 화려한 일생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나무, 하늘, 구름, 바람, 곤충 등을 관찰하여 그것을 건축 설계에 응용하여, 벽이나 천정 등을 주로 곡선으로 처리하였고, 내부 장식과 빛과 색채의 조화를 이루는 건축 설계를 추구하였던 건축가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1883년 인수해서 건축하기 시작한 가우디는 무려 40년 동안 이 성당 건축에 반평생을 바쳤다. 독신으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종교적 사명감으로 거의 수도자 같은 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성당 건축에 매진하던 어느 날 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고, 사고 후에도 남루한 옷차림으로 오랫동안 길거리에 방치되었다가 발견된 후에도 노숙자들이 가는 극빈자 병원에 옮겨졌지만, 역시 그가 그 유명한 건축가인지 몰랐고, 그의 제자들은 평소 출근 시간임에도 오지 않는 그를 이상히 여기고, 이 병원 저 병원 수소문해 봤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누추한 병원을 생각하면서도 설마라는 생각으로 지나치고, 경찰로부터 비슷한 행색에 한 노인이 누추한 병원으로 옮겨졌음을 듣게 되고, 가우디는 그곳에서 사제들과,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가우디의 장례식은 국가장으로 치러졌고 뒤 늦게서야 많은 국민들이 위대한 천재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해외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수백 번 떠 올려본 이름이다. 수많은 stake holder들과 엮여서 프로젝트와 씨름하면서 한 프로젝트에 헌신했던 가우디의 장인정신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감히 비유할 수 없지만 23년 동안 해외 8개 현장에서 가족과 떨어져 프로젝트를 책임진 현장 소장으로 온갖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열정을 따라 해 보리라 다짐했었다.      


가우디의 주요 작품들로는 그라시아 거리에 위치한 카사바트요가 있다. 조셉 바트요가 그라시아 거리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을 철거하고 새롭게 거리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로 만들어 달라고 가우디에게 요청했으나 가우디는 철거 대신 전면 복원 방식을 제안해서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피사드의 변경, 내부 구조의 재배치, 빛 침투 확장 등을 통해 건물 전체를 마치 새로운 건물처럼 만들어 냈다.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의 자유로운 창의성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 바다, 인체, 자연 등을 형상화 하였다. 


동물의 뼈를 연상시키는 벽과 기둥, 용의 비닐을 연상시키는 지붕, 공주의 발코니는 카탈루냐 지방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의 전설을 담고 있으며 내부 구조에도 가우디는 각 장소의 의미와 사용 목적에 부합하게 구성 요소들을 배치 및 설계했다.      

가우디의 또 다른 주택인 카사 밀라는 가우디가 마지막으로 설계한 바르셀로나 부자의 주택 건물이다. 이 건물은 디자인적인 면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면에서도 혁신적인 구조라는 평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지하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였다. 건물의 옥상에서 투구를 쓴 기사의 얼굴처럼 보이는 굴뚝은 실제 영화 스타워즈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자연과 곡선을 사랑했던 가우디는 이 건물을 '산'이라는 주제로 입체적인 설계를 했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용해서 건물 외관과 내부를 구조화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피사드의 돌들이 스스로 지지하는 형태로 건물을 건설하여 내부에 햇빛이 충분히 들 수 있게 하였고 용도와 편의에 맞게 내부 구조를 변경할 수 있게 설계했다.     


바르셀로나의 상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100여 년이 넘게 공사 중이다. 가우디는 사그리다 파밀리아처럼 높은 건물을 짓는데는 건축물에 작용하는 중력을 고려했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 보면 추를 거꾸로 메달아서 힘의 흐름에 대해 고심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우디는 쇠사슬을 아치 형태로 거꾸로 매달아 놓고 중력과 힘의 구조에 대해 연구하였다. 


성당의 외벽에는 성경의 내용들이 가우디의 신념에 따라 잘 표현되어 있다. 정교하면서도 상징적으로 그의 신앙심이 드러난다. 천천히 살펴보면,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현대 미술, 건축, 영화에 영감을 준 부분들도 찾을 수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한 애정과 신실했던 신앙심을 갖았던 가우디의 유해는 현재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지하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성당 외관에서 나타나는 건축물의 웅장함과 섬세함도 감동적이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마치 신비한 숲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천장을 향해 곧게 뻗은 기둥들은 마치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자연의 빛으로만 내부를 밝히는 자연성과 햇빛과 스테인드 글라스의 만남으로 따뜻함이 연출되는 성당 내부는 신성성을 더하는 것 같다. 푸른빛과 붉은빛의 비율적 조화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하고 있다.

      

구엘 공원은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자신이 소유한 대지에 가족들이 살만한 주택 단지를 건설하고자 가우디에게 설계를 의뢰해서 만들어진 공원이다. 원래 생각했던 구조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처럼 공원과 놀이터가 포함된 부자들의 주택 단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부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결국 건설을 중간에 멈추고 지금의 규모로 유지되고 있다.      

구엘 공원에서는 가우디가 즐겨 사용했던 트렌카디스 기법을 이곳 저것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트렌카디스란 깨진 세라믹 조각들을 그대로 모아 조화롭게 하나의 표면을 장식하는 건축 방식이다. 가우디의 트렌카디스 기법 작품 중에서도 도마뱀상이 가장 유명하고 현재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타일과 유리의 파편들을 모아 장식한 공원의 벤치는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바르셀로나 시내를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에서 남녀노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원.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실용성을 고려했던 가우디는 벤츠의 형태를 인간의 신체에 맞게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자세로 앉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벤치 중간중간에 뚫린 구멍들은 비가 올 것을 대비하여 뚫어놓은 것이다. 빗물이 고이지 않고 아래쪽으로 흐르게 하여 그 물을 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부자 주택 단지를 만들려고 했던 가우디는 원래 60여 채의 주택을 설계할 계획이었지만 30 채가 완성되었을 당시 부동산 매매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 30 채 중 3채 만이 팔렸는데, 그 집들의 주인은 바로 후원자 구엘, 가우디 자신, 그리고 가우디의 변호사였다. 결국 당시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 한 것이다. 3채 중 하나였던 가우디의 집은 구엘공원에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는 가우디에 관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으로 구시가지에 있는 레이알 광장에서 만날 수 있다. 바르셀로나 시의 공공사업으로 추진된 가로등 디자인 공모전에서 채택된 가우디의 가로등으로 하나의 가로등에 6개의 전구가 달렸다는 점과 투구를 쓴 모양이 혁신적이고 인상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원래는 시내 전 지역에 설치될 예정이었지만, 6개의 전구를 손으로 직접 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그 계획은 철회되고 레이알 광장에만 2개의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바르셀로나가 좋아서 계속 그곳에 머물고 계시는 만남 민박집 윤사장님 내외분, 민박집에서 함께 묵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던 젊은이들, 소그룹 투어를 이끌어 주시면서 가우디와 피카소를 한층 더 깊이 있게 알려준 헬로 유럽의 신은아 실장님과 박진아 가이드님, 그리고 함께 투어에 참가했던 분들과의 오붓했던 시간들이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13년 10월에 스페인을 처음 찾았지만 5일 내내 바르셀로나를 벋어나고 싶지 않아서 한곳에 머물렀었고, 14년 10월에는 다시 마드리드를 찾았다. 한국에서는 ‘꽃보다 할배’ 여행 프로로 더욱 유명해진 마드리드는 4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수도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역할을 담당해온 곳으로 인기 면에서 바르셀로나에 뒤지는 듯하지만, 아직도 스페인 최고의 프라도 미술관을 비롯해 볼거리들이 많이 있다.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거리 곳곳엔 유적들이 산재해 있고, 화려한 예술 작품들이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대단히 많다. 푸에르타 델 솔의 남쪽은 구 마드리드로 볼 것들의 대부분이 밀집되어 있다. 


푸에르타 델 솔에서 그란 비아까지는 대대로 쇼핑가. 백화점들과 유명 상점들이 많다. 그란비아 북쪽은 마드리드의 신시가지로 고층 빌딩군이 형성되어 있다. 구시가의 서쪽 끝에는 왕궁이 있고, 동쪽 끝에는 시민들의 휴식처 레티로 공원이 있다. 구시가와 신시가를 남북으로 잇는 대로가 카스테야나 거리로, 이 거리를 따라 남으로 내려오면 고고학박물관, 프라도 미술관 등이 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바르셀로나와는 약간 분위기가 다른 느낌이 든다. 마드리드를 포함한 중부 스페인은 구이 요리로 유명하다. 주로 어린양이나 새끼 돼지를 나무를 태워 오븐에 굽는 데 나무의 향이 고기에 스며들어 육질이 연하고 맛있다. 햄과 치즈, 스페인식 순대인 쵸리소도 중부 지역의 특산물이다. 

또한 수도 마드리드에는 각지역 요리들이 혼재되어 있어, 특징 있는 향토 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 스페인풍의 솥밥 파에야(Paella), 안달루시아 지방의 차가운 스프 가스파쵸(Gazpacho) 등 스페인의 이색적인 음식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특히 마드리드풍의 스튜인 코시도(Cocido)는 콩류와 여러 종류의 고기를 함께 먹는 전형적인 요리이다.


마드리드의 주요 명소로는 마드리드의 중심 광장인 푸에르타 델 솔으로 마드리드 관광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태양의 문’이라는 뜻의 이 광장에는 16세기까지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성문은 없고, 다만 시계탑이 설치되어 있는 경찰청과 그 앞 보도에 스페인 전국 도로의 기점이 되는 이정표가 있다.      

마드리드의 또 다른 광장으로는 솔 광장에서 마요르 거리를 따라 5분 정도 걷다보면 왼쪽에 마요르 광장이 나온다. 17세기의 오래된 건물들로 둘러싸인 마요르 광장은 폭 94m, 길이122m의 장방형으로 중앙에는 광장을 조성한 펠리페 3세의 동상이 서 있다. 

마요르 광장은 1619년에 만들어진 이래 국왕의 취임식과 종교의식, 투우와 교수형, 그리고 각종 이벤트 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마드리드의 중앙 광장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광장 북쪽 시계탑이 있는 건물 중앙에 ‘Plaza Mayor’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고, 그 벽에는 세르반테스 등 마드리드 대표적 문인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미술관으로 회화관으로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다

마드리드문화관광의 최고 명소로비야누에바에 의해 1819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미술관으로 소장품은 약 6,000점으로 전시되는 것은 3,000점에 이른다. 12~18C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으며 특히 16, 17C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이 중 스페인 작품이 다수를 자치하고 있으며 플랑드르,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의 작품들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1층은 스페인회화, 플랑드르 회화, 이탈리아 회화, 고야의 일부작품, 조각이 전시되어 있으며, 2층은 이탈리아 회화, 다수의 조각작품, 다수의 고야 작품, 스페인 회화가 전시되어 있고, 전시 작품의 위치는 수시로 바뀐다. 2층의 고야 전시실에 있는 '옷을 입은 마야(La Maya Vestida)'와 '나체의 마야(La Maya Meninas), 그레코와 보슈의 그리스도를 테마로 한 종교화 등이 특히 유명하다. 

마드리드 왕궁은 1738년 펠리페 5세의 지시로 이탈리아 건축가인 사케티가 파리 루브르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1764년에 완성했다. 사방의 길이가 각각 131m의 웅장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이 건물은수도로서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마드리드에서 규모가 가장 크면서도 중요한 건물이다. 

왕궁 내부의 방은2800여 개로 화려한 장식으로 되어 있다. 볼거리로는 나폴리의 예술가 마티아스 가스파리니의 이름을 딴 ‘가스파리니의 방’이 있는데 바닥, 벽, 천장이 특수 효과를 내며 보는 사람의 눈을 어지럽힌다. 145명의 손님을 한꺼번에 영접할 수 있는 대식당과 약 2,500여 개에 달하는 태피스트리가 볼 만하다.      


17년 4월에는 딸아이가 바르셀로나에서 교환학생으로 나가 있어서 다시 한번 바르셀로나를 찾게 되었다. 두 번째라 그런지 바르셀로나는 아주 익숙하였다. 구 시가지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딸과 아내와 셋이서 모처럼 함께 잠을 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서 이곳 바르셀로나에 혼자 와서 고생은 하지만 근처 유럽 여행도 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모처럼 3식구가 의기투합해서 바르셀로나와 남부 프랑스를 함께 여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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