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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홍섭 Apr 23. 2024

스리랑카 여행

나이숫자만큼  돌아본 지구촌 나라들 20번째 나라

나이 숫자만큼 돌아본 지구촌 나라들

63개국 중 20번째 나라스리랑카 (12년 3)


인도 뭄바이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1년이 지날 즈음 이곳에서 번개처럼 맘먹고 주말이나 연휴를 끼고 훌쩍 다녀올 수 있는 나라들을 꼽아 봤다. 

네팔과 부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몰디브, 세이셸, 모리셔스 그리고 스리랑카 까지 의외로 많은 나라들이 인도 주변에 가까이 있었다. 물론 아라비아해 건너 UAE도 있지만 이곳은 4년씩이나 살다 왔으니 당분간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이웃 나라로 찾아간 나라는 스리랑카이다. 스리랑카는 말레이시아 반도 밑에 떨아져 있는 싱가포르처럼 인도 아래 떨어져 있는 섬나라이다. 

BBC에서 죽기 전 가 봐야 할 곳 세계 50대 명소 중 1곳으로 세계 41위에 올라 있는 스리랑카의 스기리야가 있는 나라인데 걸어서 세계 속으로 스리랑카 편을 보고, 신문에서 소개한 스리랑카의 시기리야 사진과 글들을 보고, 뭄바이에서의 지친 심신을 달랠 심사로 주말 번개여행으로 이곳 스리링카 시기리야를 다녀왔다.

 시기리야를 가기 위해서는 먼저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로 가야 한다. 스리랑카 콜롬보에 대해 웬지 인도의 뭄바이보다도 못 살 것 같고, 더욱 촌스러울 것 같은 막연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담한 규모의 도시는 잘 정돈되고 정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뭄바이 생활에 워낙 찌들어서인지 이곳 스리랑카의 콜롬보는 자주 들르고 싶은 이웃의 피난처 같은 느낌을 받았다.

콜롬보 시내에 있는 한인 맙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민박집에서 제공한 차량과 가이드와 함께 스기리야를 당일치기로 다녀 왔다. 한국 신문에 소개되기를 한국의 마이산을 닮았고, 이스라엘의 요새 마사다마와도 비슷한 모습이라고 소개한 시기리야는 세계 50대 명소에 선정될 정도의 명소에 걸맞게, 스기리야 지방의 광활한 밀림 속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 성 위에 요새처럼 지어진 궁궐의 모습을 막상 직접 눈으로 보니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났다 .

한국의 대둔산을 오를 적 겁이 나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올라가면서 무섭지는 않을까 하는 망설임도 들다가도 아니 저 높은 곳을 어떻게 올라가 궁궐을 짓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게 된다.      

이 기묘한 성채는 5세기께, 싱할라 왕조의 카샤파 1세란 왕이 지었다. 시기리야란 이름은 ‘사자 바위’란 뜻으로 사자의 모습을 한 저 높은 절벽 위에 왕은 굳이 궁전을 올려 세웠다. 해발 370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사방이 낭떠러지이고, 주변에 아무런 높은 봉우리가 없어 그야말로 전망대 같은 궁전의 탄생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자연석 암반에 다듬은 돌과 벽돌이 섞이면서 오랜 세월에 벽돌에는 연두색 이끼들이 가득했다. 돌과 이끼가 어울리는 모습과 벽돌이 만들어 내는 패턴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사람의 엉덩이처럼 생긴  쌍바위 사이를 지나면 시기리야의 입구가 나오고, 이끼 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시기리야의 거대한 사자봉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런데 정상을 오르려면 중간에 약간은 무섭고 아찔한 나선형의 수직 계단을 올라야 한다. 중간에는 1,500년 전에 바위산 암벽에 직접 그린 프레스코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 미인도인데, 1500년 전의 그림이 그대로 남아있다. 바위 벽에 22명의 여인의 그림이 마치 얼마 전에 그린 그림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 프레스코 그림은 바위벽에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판을 만들고, 바위 표면에 섬유질을 섞은 점토를 바른 뒤 그 위에 석회와 모래를 섞어 다시 바른다. 그리고 그 위에 또다시 꿀을 섞은 석회로 매끈하게 덮는 등의 3단계를 거쳐야 그림판이 완성된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각종 식물과 꽃, 잎, 나무 즙을 섞어 안료로 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1,500년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고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절벽 중간에서 내려다보는 평원의 모습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처음에 이 바위산의 계단이 대나무로 만들었던 것을 영국 식민지 시절에 철제 계단으로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시기리야에 왕궁이 지어졌던 전설같은 역사에 따르면 카샤파 왕은 다투세나 왕의 장남으로, 그 밑에 배다른 동생인 목갈라나 왕자가 있었다고 한다. 

장남 카사퍄는 어머니가 평민이었고, 목갈리나는 어머니가 왕족이었다. 출신 성분이 동생에 뒤지기 때문에 카샤파는 왕위를 동생이 물려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결심하고 만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깜짝 놀란 동생 목갈리나는 바다 건너 인도로 도망친다. 이제 확실한 왕이 되었건만, 그럼에도 카샤파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 동생이 돌아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새로운 공포가 그를 휘감았다. 그래서 그는 저 시기리야의 사자산 위로 올라갔다. 

난공불락의 성을 만들어 왕의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었다. 사자산은 원래 수도승들이 도를 닦던 곳. 그 천혜의 요새는 그래서 갑자기 왕가의 보금자리가 된다. 

그러나 운명이란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걱정했던 대로 망명했던 동생은10여 년 뒤 마침내 세력을 규합해 형에게 복수를 하러 쳐들어온다. 요새에 있기만 해도 버틸 수 있었겠지만 카샤파는 분노에 불타 직접 동생을 물리치러 전장에 나선다. 

그리고 전세가 위기에 빠져 홀로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자신을 죽이러 오는 동생의 군대를 앞에 두고 왕은 단검으로 스스로 목을 찔러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카샤파가 죽고 난 뒤 시기리야 요새는 다시 왕실에서 수도승의 수도처로 되돌아갔다. 허망하고 부질없는 운명의 요새였다. 그 역사는 겨우 20년을 채우지 못했을 정도로 짧았다. 그리고 점점 잊혀진 곳이 되어버렸다.

오랜 세월 밀림 속에서 방치되었던 사자의 요새는 훗날 영국인들에게 발견되며 비로소 그 존재가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스리랑카는 인도의 남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로 일찍이 기원 전483년에 북인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원주민과 함께 싱할라 왕조를 세웠으며, 기원 전247년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다. 

   한때 아랍인들에 의해 ‘실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스리랑카는 세계적인 홍차 명산지다. 홍차 다음으로는 불교유적이 유명하다. 8세기 말부터 영국 식민지로 지내다 1948년 영국연방 자치령으로 독립하였고, 1972년 국명을 실론에서 스리랑카공화국으로 바꾸고 영국연방에서 완전 독립해서 1978년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으로 국명을 바꾸었다.

1985년 수도가 이전되어 콜롬보 외에 정치적 역할을 하는 수도로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의 요지를 차지하며, 인구는 섬의 남서부에 집중해 있다.     

스리랑카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2/3정도 크기인 6만5천㎢이고 인구는 약 2,100만명으로 스리랑카 전체 인구 가운데 불교계가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뭄바이에서 콜롬보까지는 제트에어 항공편이 매일 운항한다. 매일 새벽 2시 20분에 뭄바이에서 출발하고, 콜롬보에서 뭄바이로는 저녁 8시 4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1박 2일을 꽉 채워서 주말여행으로도 가능하다. 

1박 2일이면 콜롬보 시내와 시기리야 왕복이 가능하고 2박3일이념 콜롬보와 캔디를 거쳐 시기리야까지 돌아볼 수 있다.     

콜롬보 시내는 페타, 포트 지구 및 인근 해변 리조트 시설, 콜롬보 인근의 해변, 마운트레비니아 호텔 및 해변 시설, 동물원 등이 있고, 콜롬보에서 약 200km 떨어진 시기리야와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아누라다푸라가 있다.      

 1박 2일이면 콜롬보 시내와 시기리야 왕복이 가능하고 2박3일이념 콜롬보와 캔디를 거쳐 시기리야까지 돌아볼 수 있다.     

콜롬보 시내는 페타, 포트 지구 및 인근 해변 리조트 시설, 콜롬보 인근의 해변, 마운트레비니아 호텔 및 해변 시설, 동물원 등이 있고, 콜롬보에서 약 200km 떨어진 시기리야와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아누라다푸라가 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불교유적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탑과 사원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기원 전 4세기 무렵에 건설된 이 고대 도시는 1,400여 년 동안 싱할라 왕조의 수도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아누라다푸라의 최대 전성기는 두투가마니 왕이 통치하던 기원 전 167년부터137년까지 30년으로  현재 아누라다푸라 곳곳에 산재한 불교 유적의 대부분은 바로 이 시기에 세워졌다. 

하지만 아누라다푸라는10세기 이후 수백 년 동안 밀림 속에 방치돼 있었다. 잦은 외침을 견디다 못해 수도를 근처의 폴론나루와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 후 1,800년대 초에 이르러 영국의 한 젊은 관리가 우연히 발견하면서 아누라다푸라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스리랑카의 또 다른 관광할 만한 도시로는 해발 600m 지점의 분지에 있는 캔디로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고원 휴양지다. 사방이 높은 산에 둘러싸여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데다 스리랑카 고유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스리랑카에서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불린다. 

캔디는1474년에 싱할라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도시다. 싱할라 왕조는 인도의 침략을 피해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감포라 등과 같은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마침내 천혜의 자연 조건을 지닌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 

캔디의 명물인 캔디 호수는1812년에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왕이던 ‘라자싱하’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캔디 사람들이 매우 신성하게 여기는 이 호수는 오늘날까지도 잘 관리되고 있으며 여행자들에게도 좋은 사색의 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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