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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쓸 줄 모르는 ‘프로덕트 엔지니어’가 말이 돼?

문과생이 AI로 코딩하는 엔지니어가 되기까지

by TrueBlue

나는 지금 tobl.ai에서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프로덕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코드 쓸 줄 모르는 엔지니어라니!
이게 말이 되는 문장인가?


나는 뼛속까지 문과생이었고, 기획자로 일했고, 개발은 늘 “개발자의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지금은 나도 엔지니어 타이틀을 달고 있다. 사실 이 과정은 내가 계획한 커리어라기보다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라, 나 자신에게도 꽤 흥미로운 상황이다.


그리고 더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요즘 어딜가나 화두인 AI로 인한 일자리 대체. 나는 이미 2023년에 내가 만든 AI 기능 때문에 당시 다니던 회사를 떠났던 사람이다. 그런데 2년 뒤에는 그 AI 덕분에 엔지니어가 됐다. 돌이켜보면 꽤 이상한 커리어 흐름인데, 그래도 엉뚱한 말로 바보라 놀림받던 GPT-3.5부터 AI를 업무에 활용하며 지내다 보니 이렇게 흘러왔다.





3P: 라디오 PD에서 PM을 거쳐 프로덕트 엔지니어까지


나는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를 나왔다. 언론, 광고, 영화, 뉴미디어를 두루 배우는 전공이라 자연스럽게 기획력과 글쓰기가 강점이 되었고 프로그래밍은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도, 배운 적이 없었다. 특히 뮤지컬 제작 수업을 좋아해 공연 기획사에서 인턴을 하다가 안정적으로 기획하며 돈 벌 수 있는 곳은 그래도 방송국이라는 생각에 언론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첫 명함이 나온 직업은 라디오PD였다. 그때 내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내일은 청취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흥미로운 이슈나 인물 어디 없나?' 매일의 방송 기획과 구성, 특집 방송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채웠다.


IT 스타트업 업계로 오고 나서는 콘텐츠팀 리드를 맡았고 콘텐츠를 노출할 서비스를 기획하다보니 조직 내 역할이 PM, PO가 됐다.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사용자의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할까? 무엇을 어떤 플로우로 만들어 해결할까?" 그래도 여전히 기획 중심의 고민이었다. 나는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었지만, 기술적으로 '어떻게(How)' 만드는지는 몰랐다. 개발자가 안 된다고 하면 "아니 왜 안돼요?"라고 찡찡거리거나 ㅋㅋ 개발자를 설득해 원하는 것을 만들거나, 혹은 납득당해 기획을 수정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지금은 기획·디자인·개발을 모두 하는 Product Engineer다. AI를 시켜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프로덕트를 이끌어 간다.


그런데 가만 보니, 직무명은 바뀌었지만 내가 고민해온 것의 본질은 비슷하다.


- 무엇을 만들까

- 왜 만들까
- 청취자/사용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금껏 이 세 가지 질문을 붙잡고 살아왔는데, AI가 똑똑해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스케일이 갑자기 훅 확장된 것이 요즘 나의 상태다.


그리고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호기심과 기획’, 이게 AI 시대의 핵심 역량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문송합니다 시대의 종말(?)


내가 취업을 준비하던 때는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밈처럼 사용됐다. 당시에 많이 봤던 짤을 오랜만에 찾아봤다. 다시봐도 울컥 ㅋㅋ 당시 뉴스에선 늘 기업이 이과생은 모셔가는데, 문과생은 취업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상황이 조금씩 바뀔 것 같다. 일단, 일자리 자체가 지금과 달라지겠지만 기술 영역인 디자인, 프로토타입, 간단한 개발 작업이 AI 덕분에 한결 접근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깊은 영역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생각한 것을 누구나 구현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이 앞으로 IT 직무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 같다.


근데 사실 개발 영역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예전엔 열심히 익히고 배워야 했던 영상 제작 스킬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스마트폰에서도 누구나 손쉽게 영상을 편집할 수 있고, AI로 단순 편집을 넘어선 크리에이티브 활동도 가능하게 되었으니까.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왜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은 이제 조금만 찾아보고 익히면 확보할 수 있다.


얼마 전 나노바나나가 나와서 "써보고는 싶은데… 뭐 만들지?" 싶었던 적이 있다. 딱히 뭘 만들고 싶단 생각이 없을 때 나는 노트북에 저장되어있던 사진들을 가지고 이미지 합성만 해보고 있었다.


결국 툴이 있어도 창작에는 무엇을, 왜, 어떤 임팩트로 만들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ㅋㅋ

**출처: 플레디스가 제공했던, 뉴이스트 배경화면과 황민현






솔직히 말하면, 몇 달이 지났지만 ‘엔지니어’라는 타이틀이 아직도 좀 어색하다.


그런데 AI와 함께 일할수록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앞으로는 코드를 직접 쓰느냐, 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엇(What)’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PM과 디자이너가 엔지니어링을 하고 엔지니어가 디자인을 하거나 기획을 하는 크로스오버가 이뤄질 때 제일 중요한 핵심은 ‘기획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AI가 지금도 잘하지만 앞으로 더 잘할테니까.


아마도 다음 글에서는, AI로 코딩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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