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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 K jin Nov 05. 2021

8. 암환자 여행을 가다

나무야, 소원을 이뤄주겠니?


갑작스레 결정된 가족 여행! 강릉속초 두 곳을 돌았는데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꼭 갔던 강원도가 왜 이렇게 새롭게 느껴지던지.


오죽하면 날아가는 갈매기만 봐도 아련해졌다. 마침 비가 내려 안개가 낀 안목해변도 치 내 마음을 표현한 것만 같고. 하필이면 날씨까지 안 좋아서 더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암에 걸리지만 않았으면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족들과 과자를 나눠 먹으며 떠들고, 싸우고, 떠들고를 반복했을 텐데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참으로 숙연했던 2박 3일이었다. 다들 죽상을 한 채 바다만 보다가 또 장소를 옮기고 또 다른 바닷가에 가서 바다만 한참 보다가 힘없이 사진을 찍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머리털 풍성할 때 웃으면서 사진이나 많이 찍어둘 걸 후회된다. 하지만 그때의 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 이게 내 마지막 여행 사진이겠구나~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80퍼센트 정도 있었다. 혹시나 내가 떠나면 남겨진 가족들이 이 사진을 보고 날 그리워할까? 하는 먼 미래의 이야기를 벌써 확정 짓고 있던 상태랄까.


그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어느 한 관광지에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군밤을 비싸게 팔고 있었다. 누가 봐도 관광지라 더 비싸게 파는 게 티가 나지만 냄새에 홀려 하나 사고 싶어지는 그런 거. 굳이 안 먹어도 되지만 다른 사람이 사는 걸 보면 괜히 더 먹고 싶어지는.


평소라면 그런 걸 먹고 싶다고 하면 아빠가 여긴 비싸니 다른 데서 사라던가 참았다 밥을 사 먹자고 했을 텐데 군말 없이 군밤을 사주셨다. 그것도 두 봉지나. 밤은 건강에 좋다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양손에 들어주었던 거다.


-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친구들을 만났다.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며칠 뒤면 교수님을 다시 만나 향후 수술 날짜를 잡아야 됐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회사 월차를 쓰고 내가 사는 동네에 와줬다. 그날이 어버이날이어서 그랬을까, 유독 날짜가 또렷이 기억난다. 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헤어졌는데 문득 우리가 언제 이렇게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곧 수술을 하고 치료가 시작되면 내 삶이 아예 뒤바뀔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파는 카네이션을 보고 울적해졌다. 효도하는 날에 난 이미 불효자가 됐으니까. 졸지에  암 걸린 다 큰 딸 보호자가 되게 만들었으니까.



지금도 수술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기 전까지 있었던 일이 단편적으로 기억난다. 가족 여행, 어버이날에 만난 친구들, 길거리에서 내가 즐겨 드는 에코백을 똑같이 학생을 본 것까지. 몇 년 전에 친구가 생일 선물준 에코백이었는데 똑같은 제품을 메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원피스 입은 학생을 보니 갑자기 울적해졌다.



좋겠다. 그냥 부럽다.



그땐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다 부러웠을 때였다. 적어도 지금 나처럼 암에 걸리지는 않았잖아요?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부모님과 월미 공원에 간 거다. 수술 전 체력을 기르자는 생각에 갔는데 하필 그때 거기서 소원 나무 행사를 했다. 준비된 메모지에 소원을 적으면 나무에 걸어준다나.



평소였으면 셋 다 귀찮다고 지나갔을 텐데 부모님이 사람들 틈 사이에 자리 잡고 맞지 않는 테이블 높이에 허리를 숙여 종이에 소원을 적었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둘이 꽤 진지하게 쓰고 서로 뭐라고 썼나 교환해서 보던데. 그리고 좋은 자리에 걸어야 된다며 오랫동안 나뭇가지를 살펴보던데.



그때 나는 뭐했냐고? 저 멀리 100m떨어져서 두 사람을 지켜봤다. 나는 이제 그런 것 따위 믿지 않았고 그거 쓰다가 우는 게 너무 싫었다. 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체험했으니까. 그래서 아직까지도 부모님이 소원 나무에 뭐라고 썼는지 모른다.




평생 모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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