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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 K jin Nov 06. 2020

5. 피한다고 달라지나

지옥의 시작, 조직 검사



유방외과 정기검진 예약 날이 다가왔다. 피하고 싶어서 예약을 일주일 미뤘는데 가긴 가야 될 거 같았다.



그냥 그래야 될 거 같았다.


그날도 역시 병원에 혼자 갔다. 엄마한테만 유방 초음파를 받으러 저번에 갔던 상수동에 갈 거라 말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굳이 6개월마다 검사를 하러 가야 되냐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도 그만둔 탓에 집인 인천에서 서울까지 거의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유방 초음파 하나 하러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땐 '굳이' 소리가 이상하지 않을 때였다.


병원 예약 시간에 맞춰 광역 버스를 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출퇴근 때문에 평일이면 매일 탔던 버스였는데 그날따라 낯설고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조차 거슬렸다. 심하게 거슬렸다. 그때의 난 예민함의 최고치를 달리고 있었다.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유방외과는 그대로였다. 예약 시간이 되자 이름이 호명됐고 가운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누웠다. 몇 분 후 등장한 원장님이 6개월 사이 새로운 혹이 만져진 적은 없냐고 물어왔다.


오른쪽에 혹이 만져지는데 예전에도 있었던 건지, 새로 생긴 건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한 자리를 촉진하더니 원장님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리곤 초음파 검사를 '일단' 해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조직검사를 해봐야 될 거 같은데......


거지 같았던 예감이 하나둘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보통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초음파에서 끝나겠지만 조직검사를 해보는 게 좋을 거 같다며 맘모그라피 검사 또한 추가로 해야 된다 그랬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 속 남자 주인공 이화신이 그 검사를 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가고 진짜 내가 암에 걸린 건가 싶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을 하며 인생 처음으로 맘모 검사를 했다.


참고로 이 검사는 유방을 꽉! 아주 꽉! 있는 힘껏 기계로 평평하게 눌러 찍는 형태다. 궁금한 사람들은 드라마 <질투의 화신> 초반 회차를 보시길. 그 검사가 유독 아픔을 동반하는데 그때는 아픈 건 뒷전이었다. 엄마랑 같이 올걸, 친구라도 한 명 데려올걸 별생각이 다 들었다. 



검사가 끝난 후 나는 다시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실 침대에 눕게 된다.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흐르려는 나에게 원장님은 모양이 안 좋긴 하나 암인지 아닌지는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다르다고, 긴급으로 분석해 달라고 대학병원에 판독 요청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3일 만에 결과가 나온 건 엄청 빨리 나온 거고, 그만큼 신경을 써주셨다는 건데 그때는 3일이고 뭐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조직검사는 간단한 부분 마취 후 혹이 있는 부분에 두꺼운 주삿바늘을 넣어 조직을 소량 꺼낸다. 그때도 아플 거라고 했지만 아픔은 역시 뒷전이었다.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파도 되니까 암만 아니게 해 주세요.


조직검사가 끝나면 붕대로 가슴을 하루 이틀 압박하고 있어야 한다. 가슴을 붕대로 감으니 속이 더 답답해졌다. 그렇게 난 3일 뒤인 금요일에 다시 병원에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조직검사를 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원래 혹이 있으면 혹시 모르니까 검사를 하는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별거 아닐 테니 집에 와 저녁이나 먹으라며.


하지만 난 자꾸만 암일 거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동안은 계속 아닐 거라고 피했지만 조직검사까지 하고 나니까 확신이 들었다.


그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이다를 하나 샀다. 참고로 그날 이후로 탄산을 끊어 그게 내 인생 마지막 사이다나 다름없었다. 속이 타밥맛 없어서 사이다 500ml 한 병3일에 거쳐 나눠 마셨다.


걱정이 되니까 밥맛도 없고, 운동도 하기 싫고, 무엇보다 잠이 안 왔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겨우 세 시간 정도 자고 다시 눈이 번쩍 떠졌다.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고 인터넷에 유방암만 검색했다.  증상이라고 나오는 것들이 다 내 얘기 같았다. 이렇게 내 얘기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 내가 겪고 있는 거였다.


그제야 이 일은 피할 수 없다고 느꼈다. 붕대로 가슴을 감은 탓인지 심리적 요인 때문인지 숨이 막혔다.


그렇게 3일 후, 나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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