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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 K jin Feb 03. 2021

6. 암병원에 갔는데 말이지 1

교수님, 저 살 수 있나요?


시간은 그대로 24시간 똑같이 흘렀다. 이런 말이 우습겠지만 나는 암환자가 됐는데 세상은 그대로였다. 원래 인생의 주인공은 '나' 아닌가요? 왜 세상이 멀쩡하게 돌아가죠?



그동안의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나는 지독한 회피형이다. 얼마나 심하냐면 암에 걸렸으니 하루빨리 병원에 가야 되는 걸 알면서도! 수술 날짜를 빨리 잡아야 이득인 걸 알면서도!
가기 싫었다.

병원에 가면 정말 암환자가 된 거 같잖아. 이 얼마나 이상한 발상인가 싶겠지만 분명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겠지.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이랬겠냐고.
 
 
병원 가기 하루 전날, 귀신같이 아침 9시에 카톡이 왔다.
 
 
[병원 진료 예약 안내]
진료과: 유방외과(A교수님)
진료장소: 암병원 5층
 

요새 병원은 이런 메시지도 보내주는구나 놀라운 반면에 병원에 가기 싫어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
그날 뭘 했더라. 목욕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교수님 처음 만나는데 멀끔하게 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 원래 그렇지 않나, 새 학기 전날에 목욕재계하는 것처럼. 그 와중에도 기분 탓인지 암에 걸려서 그런 건지 입맛도 없고 체력이 달려서 겨우 씻었다.
 


암 판정을 받은 후 식단이 완벽하게 바뀐 탓인지 살이 더 빠졌다. 내 생각인데 그때 추가로 살이 빠진 건 식단 때문인 것 같다.
 
채소, 생선만 먹을 것.

고기, 햄, 라면, 커피, 음료수, 과자, 초콜릿 금지.

기타 간식 금지.

과일도 조금만 먹을 것.
 


암에 대해 무지했던 가족들 덕분에 나는 그사이 강제 비건으로 살았다. 놀랍게도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암환자들이 기피해야 될 음식 중에 먹어도 된다고 나온 게 채소랑 생선밖에 없었다. 지금은 다르려나. 그때는 그랬다. 나도 그래야 되는 줄만 알았다.

물론 그렇게 먹으면 좋다!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그렇게 먹으면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사라진 입맛은 더더욱 멀리 떠나갔고 추가로 살은 2kg이나 빠졌다.
 
 
-
 

새벽 6시에 기상했다. 겨우 잡은 초진이라 오전 9시에 교수님을 만나야 했다. 아빠 차를 타고 서울가던 길이 얼마나 빠르게 느껴지는지. 1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인데도 1분 만에 병원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큰 병원 건물들 중에 내가 들어가야 되는 곳이 암병원이라는 것도 무섭고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까도 무섭고 오늘 교수님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도 무섭고 너무 무서워서 몸이 덜덜덜덜덜덜덜덜 떨렸다.


의연한 척했지만 타고난 쫄보 기질은 없앨 수 없었다.
 


갑자기 고1 때 담임 선생님이 개인 면담 시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데 속은 여린 거 같다나- 그때는 사춘기라 하핳, 아닌데요. 저 그런 사람 아닌데요? 했었는데 역시 어른들 시선은 못 속이는구나. 이 쫄보야.


아무튼 병원 시설이 너무 좋고 넓어서 거기서도 주눅 들었다. 이런 게 자본이구나, 여길 앞으로 자주 오게 되겠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교수님을 만나기 전 몸무게랑 혈압 등 간단한 측정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교수님을 만났다.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교수님의 냉랭한 별거 아니라는 반응. 덜덜 떨며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 건조한 반응 덕분에 아이러니하게 긴장감이 사라졌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무서웠는데 이분이라면 나를 살려주지 않을까...? 싶은 묘한 믿음이 느껴졌달까. 근데 내가 만난 사람 중 첫인상이 가장 무미건조하고 냉랭했던 건 맞다. 그건 맞다.


무심하게 젊은데 어떻게 유방외과를 가게 됐는지, 촉진으로 잘 만져지지 않는데 그래도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말을 정말 이렇게 무심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표정으로 말했다. 부모님이 몇 기인지 물어봤을 땐 대략의 크기나 상황으로 보아 1기는 아닌 거 같다고 수술 전 검사를 해보고 다음 주에 일정을 얘기해 보자고 했다.


교수님한테 "저 살 수 있나요?"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막상 만나니까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네, 넵, 네"만 하고 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병원 소속이 되어 바쁜 검사 스케줄을 다니기 시작다.


-



초음파, 맘모, 뼈 검사, CT, 펫시티, 심전도 등등.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검사했다. 병원복을 입고 여기저기 정해진 검사 시간에 맞춰 끌려다녔다. 살다 살다 이런 기구에 들어가 검사도 하는구나, 그때는 별생각 없이 웃으면서 받았다.

그런데 초음파를 하던 도중 추가 조직검사를 해야 된다는 판정을 받게 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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