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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24. 2022

지겨우시겠지만 영유vs일유

영유냐 일유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로다…


영유냐 일유냐… 맘까페에서 정말 많이 보는 제목 중 하나이다.

요즘은 조금 더 세분화되어서

“학습식영유vs놀이식영유.”

“영어 레테 과외 소개 부탁드려요.”

“sr00점대인데 괜찮은가요?


요즘 영유아기의 영어교육은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보다도 더 치열해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어릴 때 영어를 빨리 잘하도록 하느냐에 많은 엄마들이 달려가고 있다.

단순히 영어유치원이 좋다, 일반유치원이 좋다, 엄마표 영어가 좋다 를 떠나, 그렇다면 이것들을 하는 목표는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기대하는 답변은 아닐 수 있지만,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달려가는 엄마들에게 오지랖을 조금 부려보겠다. 맘까페에 직접 작성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 자유롭게 내 생각을 이곳에 적어본다.




왜 모두가 영어를 위해 달리나?

지금 엄마가 된 세대,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80년대생들에게 영어실력은 무엇을 하더라도 큰 메리트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영어점수를 대입, 유학, 편입, 취업 모든 곳에 사골국 우려먹듯 우려먹었으니, 영어를 잘하면 인생이 조금 더 수월해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아이들을 영어교육을 어떤 기관에 보내서 해결할지 물어보기 이전에 영어를 어떻게 잘해서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러한 고민이 없이 모두가 하니까, 우리 아이만 뒤처질 수 없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영어교육으로 몰아넣는다면, 세상 만물에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탐색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기회들을 영어 하나에 놓지게 될 수 있다.


영어를 도대체 얼마나 잘하게 하고 싶은가?

영어는 어차피 외국어이고 절대로 모국어보다는 잘할 수 없다. 만약 그 외국어를 모국어보다 잘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외국어가 모국어나 다름없는 셈이다. 어떤 학습에 의한 언어 공부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그들의 문화 속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들이 표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역으로 모국어가 강점이 되는 것이 낫지 않는가?

단순히 모국어, 외국어로 나눌 것이 아니라 ‘언어’와 ‘소통’을 잘하는 아이가 되어야 경쟁력 있다. 그렇다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모국어로부터 ‘언어’와’ 소통’을 탄탄히 가져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해외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원서로 공부할 수 있을 정도, 소위 토플 90점 정도 목표로 하면 충분하다. 그런 정도의 영어실력을 아기 때부터 쌓을 수는 없다. 아기 때에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고, 대학생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 결국 미리부터 달린다고 해도, 다시 제 나이에 맞는 영어공부를 꾸준히 계속해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무리해서 원서 몇 권 읽히는 식의 목표를 갖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일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많은 엄마들이 영어로 영상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프랑스 영화를 좋아해서 주야장천 프랑스 영화를 본다고 해도 자주 들리는 몇 가지 표현 정도만 들리지, 절대로 프랑스어를 습득하게 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에게 영어로 영상을 들려준 들, 실생활에서 부모와, 친구와 소통해보지 않는 언어는 단순히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영유아기에 영어교육에 몰입한다고 해도, 영어를 통해 이루어내고 싶은 최종 목표에는 미리 도달할 수는 없다. 제 연령에 맞는 언어를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에서, 굳이 영유아기에 영어를 무리하게 가르치는 것에 대한 효율성을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언어는 소통의 도구일 뿐

언어를 잘한다는 것과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언어를 못해도 소통을 잘하는 경우가 있다. 영어 점수가 높으면 대학입시, 취업 등에 활용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소통의 감각을 지닌 사람이 언어를 잘하는 사람보다 글로벌하게 살 수 있다.


소통의 도구에는 언어뿐만 아니라, 제스처, 표정, 어투, 매너 등이 모두 포함된다.

언어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제스처와 표정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고, 매너와 어투로 그 사람의 호감도를 올릴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많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초등학생들도 영어 원서를 당연하게 읽는 시대이니까……. 그런데 이 아이들 중에 대화의 매너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경청하는 자세를 갖고 서로를 배려하며 대화하는 아이들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까? 어려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성인들 중에서도 자기 말만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무매너의 대화를 종종 본다. 그런 그들이 과연 어릴 적에 제대로 된 소통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영미권에서 한국인들을 종종 만나게 되면, 그들이 외국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내가 낯이 뜨거워질 때가 종종 있다.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호흥하지 않는 태도, 남의 의견에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니라고 말하는 태도 등을 접하면 우리가 얼마나 소통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영어교육 이야기를 하다 왜 뜬금없이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바로 영어보다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영어적인 스킬에 목숨을 걸 때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급 영어 수준에 가려면 각 연령에 맞게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고학년에 수학 등 다른 과목을 하기 위해 미리부터 영어를 떼겠다 라는 생각은 정말 비효율적인 생각이다.



영어를 왜 잘하게 하고 싶은가?

아이들 교육에도 유행이 있다. 맘까페에는 주로 그때 유행하는 학원, 교재, 교육법 등에 대한 질문들로 넘친다. 그런데 왜 엄마가 아이들을 어떤 아이들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왜 맘까페에서 보기 드문가…….


보통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는 정도의 그림은 갖고 있는 듯하다. 대학에 대한 목표, 직업에 대한 목표가 대부분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목표이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리기 위해 우선 영유아기 때 학습적인 인풋을 최대한으로 높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어머니가 맘까페에 글을 올렸다.

“우리 아이가 영어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해요. 아이가 도대체 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지 물어요. 아이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해주면 좋을까요?”

이 질문에 다양한 답변들이 올라왔다. “좋은 직장 가지고 먹고살려면 해야지요.”라는 현실적인 답변도 있고, “해외여행을 가서 편해.”라는 답변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이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로 다가올까? 부모들이 자신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말도 안 되는 명분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더 잘 안다.


왜 우리 아이 영어를 잘하게 하고 싶은가? 엄마 스스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이의 교육에 대한 방향이 잡힐 수 있다. 그저 남들 하는 교재, 남들 읽는 원서 레벨을 따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영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야 그에 맞는 방향으로 교육계획을 세울 수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영유아기에는 영어를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앞에서 주장한 대로 모국어로 체득하는 유연하고 능숙한 소통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계속 영어를 못하도록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경우 아이들이 해외에서 대학을 가기를 바라는 목표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기가 되면 어느 정도 영어를 해야 한다는 계획은 갖고 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어릴 필요는 없다고 보았고, 초등 저학년에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영어능력에 대한 목표가 원어민처럼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영미권에서의 어느 정도의 소통, 원서 해독, 영어로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아이와 진지하게 많은 시간 대화했다. 설득을 하기 위한 대화라기보다는 스스로 어떤 길을 찾고 싶은지에 대한 대화였다. 아이가 납득할만한 목표와 동기가 생기니 그제야 영어 학습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에 파닉스부터 시작한 아이는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지레 겁먹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영어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우리 아이들은 현재 아직 초등학교 고학년이고, 이렇다 할 입시 실적을 낸 것이 아닌 지금, 나는 이런 글을 쓸 주제가 못된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아이들이 ‘성공’의 법칙처럼 여겨지는 직업을 갖거나,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

물론 부모이기에,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인정을 받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는 것은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것에 목표를 삼지 않고, 어떤 사람이 되는가, 어떤 삶을 살아낼 것인가를 더욱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우리 아이들에 대한 성과로 따져도 나는 여전히 이런 글을   못될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열된 영유아 교육, 특히 영어교육에 한마디 하고 싶었던 이유는 나름의 소신을 갖고,  폭주하는 교육열차에 탑승하지 않을 용기를 갖는 엄마들에게도 공감할  있는 마음의 여유를 함께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그대의 아이들을 달리게 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의 행복 아이들 스스로 찾아갈  있도록 울타리를 쳐주고 함께 고민해주고 서포트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후회하지 않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노라 고백을 해준다면, 그때는 나도 이런 글을  자격이 있다고 누군가는 인정해줄까? 그때  글을 다시 회고하며, 한번  글을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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