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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Nov 04. 2022

남편을 보면 두근거리세요?

20대의 두근거림이 그리운 당신에게

한해가 또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으레 잊고 있었던 감성 세포들이 꾸물꾸물 춤을 춘다. 20대 때 줄곳 빠져있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하고, 가사와 음악에 흠뻑 젖어 그때의 감정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소년 소녀의 운명적이지만 애틋한 사랑의 표현을 참 좋아한다.

비단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은 아니다. 많은 일본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할 듯 그러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분히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그들만의 문화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20대 때 일본으로 길을 떠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보냈던 20대 초반의 4년간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맛보았고, 그로 인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의 애틋한 표현은 더욱더 깊이 와닿게 되었다.  오늘따라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의 OST가 듣고 싶어졌다. 별을 쫓는 아이, 초속 5cm,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모두 '운명적인 만남', '십 대의 풋풋한 첫사랑', '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을 듯한 애틋함', '시공간을 초월하는 모험' 등이 공통적인 키워드 일 것이다.


누구나 그런 운명적인 만남, 격정적인 감정에 대한 아련한 욕구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순수해 보이는 사랑이 더욱 가슴을 울리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그러했다. 그렇기에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 아니면 그런 운명적인 만남,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을 듯한 서사를 경험해보고 싶은 나의 욕구 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사랑은 그것을 경험하는 본인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바라보는 독자에게도 중독성이 있을 때가 있다. 나의 20대도 그러했다. 분명히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는 것 같지만, 서로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런 관계에서 더 큰 애틋함이 느껴졌다. 마치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아련한 사이인 것처럼...... 뜯어보면 서로 용기를 낼 만큼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인데도 마치 그것이 더 진짜 사랑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중독성을 담고 있어서 그 사람을 바라만 봐도 마음이 아프고, 슬퍼진다. 그리고 서로 더욱 생채기를 내며 그 아픔을 즐기기까지 한다.


사실은 매우 안정적인 완전한 사랑을 하는 대상이 있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처절한 사랑이 진짜 사랑인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불륜을 미화하지는 않는 것인지.......


결혼이라는 제도는 안정적인 완전한 사랑을 보호하는 울타리이다. 이 울타리 안에서 가정이라는 성을 쌓아가며 사랑은 더욱 완전해진다. 이것이 온전한 사랑임에 틀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종종 이것을 권태기로 착각하기도 한다. 두근두근거리는 연애세포가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두근거리며 불안정했던 연애세포가 안정감을 찾는 과정인 것이다.


고백하자면, 10년이 넘게 아이와 가정을 보며 잃어버렸던 그 두근거림을 가끔은 다시 되찾고 싶을 때가 있다. 문제는 남편에게서는 두근거림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 남편은 그냥 가족이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 동지, 우애,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남편의 뱃살이 푸근하고, 남편의 얼굴에 하나 둘 보이는 주름이 짠하다. 능글맞게 던지는 시시콜콜한 농담에 까르르 웃고 있는 내 모습은 분명 행복한 모습일 터이나, 그 두근거림과는 거리가 멀다. 로맨스 드라마에 빠져도 보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 두근거림을 다시 시뮬레이션해보기도 한다. 아줌마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괜한 것은 아니다. 불안정한 연애세포를 애써 다시 되찾아 20대 때의 기억과 감정, 아름다움마저 되찾고 싶은 것인지도......


가끔은 매장의 키가 훤칠한 훈남을 봐도 두근거리기도 한다. 그냥 그 두근거림이 그리웠던 것일 뿐...그런 것을 보면 아저씨들이 예쁜 아가씨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를 돌고 돌아 20대의 두근거림이 그리운 당신에게 심심한 공감을 표해본다. 왜 우리의 남편들로부터는 그 두근거림이 생성되지 않는가. 그것은 이미 완성된 사랑이기에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결혼 전의 그 두근거림이 그리워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했던 그때 그 감정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며, 그가 그리운 것이 아니다. 단지 그때 그 두근거렸던 감정이 그리운 것이다. 불안정한 감정 그 자체를 즐겼던 20대의 감정 세포가 다시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나의 세월을 막을 수 있을 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의 두근거리지 않음에 집중 할 필요가 있다. 불안정한 연애세포를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의 안정적인 연애세포를 관리하자.

그간 아내와, 남편과 대화가 줄어들었다면 어서 맥주 한 캔을 놓고 다시 마주 앉아 대화를 하라. 아이들을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하라. 그것이 진정하고 온전한 당신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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