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리카 Aug 24. 2023

모든 것은 숲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엄마가 너희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은 거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영국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공원은 한국에서 가기로 하고, 첼튼햄 인근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코츠월드 팜 파크’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은 함께 가기가 귀찮은지 아침부터 뭉그적 거린다.

“얘들아, 여기까지 와서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서 토요일을 보낼 거야? 가기 싫으면 말자! 그냥 집에 있자!”

나도 슬슬 짜증이 났다. 아이들은 나의 눈치를 보더니 조금 속도를 내어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으이구, 왜 꼭 잔소리를 들어야 움직이는지……

무표정한 아이들을 차에 태워 오늘의 목적지를 검색한다.

‘Cotswald Farm park’

“엄마, 그래서 오늘 어디가? “

“일단 그냥 가 봐! “

어디를 가는지, 무얼 먹는지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일 텐데, 마치 내가 윗사람을 의전하면서 보고해야 하는 것 같아 대답하기가 싫다. 엄마가 어련히 좋은 데로 잘 골랐을까……


약 30분가량 운전을 하니, ’ 코츠월드 팜 파크‘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차량들이 그쪽으로 들어간다.

주말이라 그런지 제법 차량이 많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한 후 들어간다.

그다지 기대가 없는 우리 아이들이 안쪽으로 들어와 넓게 펼쳐진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많은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웃으며 달려가기 시작한다.

‘거 보라고! 엄마가 어련히 너희가 좋아할 만한 곳을 골랐을까!!’

아이들의 웃음을 보니 나도 짜증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결국 아이들의 심리상태가 나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이곳 코츠월드 팜 파크는 넓은 목장에 양, 염소, 소, 돼지, 말 등 동물들에게 먹이고 주고, 만져볼 수도 있고, 영국의 농장역사가 어떤지도 자세히 볼 수도 있다. (물론 역사따윈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아이들이 한국에서도 안성팜랜드, 대관령 목장 같은 곳을 많이 가 봤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로 기대를 안 했었는데, 아이들 놀이 공간도 충분하면서, 넓지만 힘들지 않은 코스,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상태 좋은 동물들 때문에 이곳을 영국에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했다. 동물들도 사람들의 손길이 익숙한지, 만져주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 엄마! 양을 만졌는데, 진짜 그 양털 같아!”

“엄마! 이 토끼 너무 귀여워! 피터래빗 같아! 만져도 가만히 있어, 느낌이 너무 좋아!!”


아이들이 신나게 농장을 누비며, 동물들의 밥을 주고, 동물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니 마지막 여행지로 다른 코츠월드 명소가 아니라 이곳 농장을 고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이들에게서 독립하고 싶지만, 또 아이들의 기뻐하는 모습에서 가장 큰 기쁨을 찾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이다.


농장을 한참 둘러본 후, 매표소 밖에 있는 해바라기 꽃 축제 장소로 옮겨 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옥수수밭에서의 미로 찾기도 있고, 아트워크숍도 진행 중이었다. 미로 끝에는 카트를 타고 옥수수밭을 누빌 수도 있다. 아이들도 이 대자연의 풍경 속에서 한껏 웃고, 뛰어다녔다.


달리는 아이들을 뒤따라 가고 있을 때, 문득 아이들의 아기 때 시절이 떠올랐다. 큰애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열심히 동네 공원을 데리고 다녔다. 둘째를 임신하고 한참 배가 불렀을 때도, 첫애를 공원에 풀어놓고 항상 뒤쫓아 뛰어다녔다. 어른들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는 산책로도,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호기심이었고, 새로운 세상이었다. 한참 달리다가도, 물 웅덩이가 보이면, 한참을 첨벙 대며 즐거워하기도 했고, 쓰레기 하나에도 관심을 보이며 한참을 관찰하기도 했다.

주변 엄마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문화센터, 프*벨이니, 튼*영어니 교구와 교재에 대한 정보로 넘쳐났기 일쑤였고, 그것이 너무 피곤했다. 과도한 정보 속에서 소신을 찾겠다고 엄마들과의 연락을 피한 채 어느새부터인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 유아교육의 확신은 ‘실체를 통한 배움‘이었다. 영유아기에 책 읽어주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체를 통한 자극이 훨씬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작은 동네 놀이터, 산책로, 숲길, 큰 국립공원, 역사 유적지까지 아이들을 둘러메고 열심히 다녔다. 아이들을 숲으로 들로 끌고 다니며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다. 아이 교육에 대한 나만의 소신도 이유였지만, 아이를 키우는 동안의 답답함을 아이들을 핑계로 헤쳐나가고자 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사춘기 초입의 아이들이 여전히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고, 그 아이들을 여전히 쫓아 달리고 있는 나를 보며, 문득 이 한 달간의 여행은 아이들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다녔던 ‘숲’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두 아기를 데리고 전국을 끌고 다녔던 용기가 지금 아이들과 함께하는 영국 한 달 살기의 밑거름이 되어준 것은 아닐지……아기들이었던 우리 아이들을 숲에 데리고 갔을 때도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시간을 함께 했던 내가 행복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그 힘듬도 사실은 나의 행복이었다. 지금의 이 아이들의 행복도 결국 나의 행복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여기저기 끌고 다니지만,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뒷마당 노스탤지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